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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三) - 2/3

임측서가 탄 마차가 천하제일관문 가욕관(嘉峪关)에 도착했다. 가욕관은 웅장한 만리장성 서쪽 끝, 종점에  우뚝 솟은 가욕산(嘉峪山) 산록에, 웅장하고 기세 등등하게 서있다. 이곳은 고대 만리장성 방어선 상의 중요한 군사요새이며, 하서(河西) 제일의 요충지로, 고대 "실크로드"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관문이었다.

임측서 일행의 마차가 막 관문을 지나자 얼룩덜룩한 육중한 문이 우릉우릉 소리 내며 닫혔다. 임측서가 뒤돌아 보니, 벌써 문은 꽉 닫혀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며 슬퍼졌다. 그는 마치 퇴로가 끊겨버리고, 생사가 막막해진 것같이 느꼈고, 슬픔과 처량함에 시를 읊었다.

말 탄 사람 하나 들어오자마자 문이 닫히는 구나,
중원을 돌아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

부인마저 내버리고  가는 내 마음을, 그 누가 알리요?
이제 붓을 던지고 잘 지내면, 늙어서는 돌아가려나.

연지를 지워버리니 얼굴빛이 파리하네,
남은 머리 희끗희끗해진 것이나 노래해야지.

나는 일부러 여행의 느낌을 갖으려 하네
쇠약하고 나이 들어 내쳐진 신하라는 생각을 안 하려고.

마차는 황량한 고비사막에 들어서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갔다. 임측서는 흔들거리는 마차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사색에 잠겼다. 서쪽으로 향해 갈수록 황량해졌고, 가면 갈수록 추워졌다. 옥문관 밖은 황무지 천리, 황량한 사막이 하늘에 닿아있고, 기후는 건조하고 한랭하다.
임측서가 신강성 경내에 들어섰을 때, 요새 밖은 이미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추운 겨울이었다. 복건성, 남방인 출신으로서, 임측서는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이런 열악하고 잔혹한 자연환경에 내던져졌다.
여정 중, 사람들이 밥 짓는 연기도 보기 힘들었고, 주변은 온통 황량한 고비사막뿐이었다. 앞길에는 마을도 없고, 인적 없는 외딴곳이라 묵을 곳도 없는 상황, 하는 수 없이 마차 위에서 야숙을 했다.
고비사막에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 같아 보이는 길도 거의 없었다. 임측서의 마차는 어쩔 수 없이 울퉁불퉁한 돌이 가득한 대지위로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차 바퀴가 돌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어떤 때는 대설로 길이 막혀, 임측서의 마차는 자주 눈 구덩이, 얼음 구덩이에 빠졌고, 그 때마다 놀란 말이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시를 두 수 지었다.

 

"사막의 돌멩이 길이 너무나 평탄치 않고나. 고생이 너무 심해 하루하루가 전쟁같다. 마차 칸이 마치 키질할 때 좁쌀처럼 흔들리는구나. 걱정스레 쿵쿵 돌 튀는 소리를 듣네."

"천 산 만 홀(골짜기)이 옥처럼 아름답게 솟아서, 나를 서쪽으로 조용히 동반해주네. 나는 산 영(靈)과 상대하며 웃네, 머리 속에 가득한 하얀 눈은 그대나 나나 공히 없어지지 않는다네."

10개월이 지나서, 고생스러웠던 장거리 여행이 끝났다. 임측서 부자 3인은 1842년 12월 10일, 혜원(惠遠) 성에 도착했다. 이리하 계곡의 겨울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찬바람이 쌩생  불고, 물을 떨어 뜨리면 바로 얼었으며, 몇 차례 대설이 내리자 혜원성은 바로 눈에 덮여버렸다. 적설은 때로는 1미터가 넘었다.

먼저 유배되어  이리에 온 전직 양광(兩廣: 광동성, 광서성) 총독 등정정(邓廷祯)은 혜원성 밖에서 임측서를 영접했다. 두사람은 마주 보고 손을 부여잡으며 말 없이, 그저 늙은이의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그들은 광동에서 의기투합하여,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함께 호문(虎門)에서 아편을 불태우지 않았던가? 영군(英軍)의 침략에 같이 대항하지 않았던가?
생각지도 못하게 지금 이 꼴로  모두 "천애의 떠돌이"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곳 이리까지 유배를 온 것이다.
얼굴은 깡마르고, 초췌하기 그지없으니, 어찌 슬픔을 견딜 수 있겠는가!


※ 임측서는 아편 소각 사건 당시 흠차대신(특정 사건에 대한 처리를 위해 임시로 임명된 고위 관리) 으로 광동에 파견되어 구미 제국과 교섭할 것을 위임받았고, 당지 총독과 함께 아편 2만 상자를 20일이나 걸려서 소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