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학지이자 보천국(宝泉局 ; 淸代 화폐 제조국) 감독이었던 기운사(祁韵士 : 1751~1815)는 보천국 동(銅) 부족 사건에 연루되어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하급관리로 이리(伊犁)에 강등, 유배되었다. 그는 과일 계곡을 지나다가 문득, 시심이 일어 시(詩) 를 짓고, 경탄하며 말했다.
"높이 솟은 만개의 봉우리가 하늘에 닿아있고, 푸른 계곡은 구비구비 돌아 흐르네. 72개의 다리를 아직 지나지 못했는데, 유천(流泉)은 벌써 석양아래 점점 사라지고 있데."
문인 관리들이 유배를 당하게되먼, 계속 가슴을 졸이다가, 제일 처음 느끼는 것은 황공하고 불안함이다. 이렇게 걱정과 두려움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으로 상심과 절망, 이어서 슬픔과 애탄을 느끼게 되고, 그런 다음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하늘에 운명을 맡기게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어떤 경우라도 잘 적응하게 되는데, 그들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요동치는 유배 길에서도 생명의 본질과 인생의 의의를 사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시집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시를 읊게 되고, 자기의 소망을 노래하게 된다. 이것은 수천 년 계속되어온 중화 전통문화의 혈액과 같은 것이다. 이 혈액은 그들의 혈관 속에 콸콸 흐르는데, 한마디 시작만 하면, 그들은 시를 읊으며, 글을 짓게 된다.
이리로 유배온 죄인 중, 섰을 때 키가 크지 않고, 문약해 보이며 수척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하여 권력에 아첨하지 않았고, 한 몸, 굳세고 바른 기개를 보였는데, 그는 하늘을 떠 받히고 땅 위에 우뚝 선, 모범적이며 걸출한 남자였다.
그는 다섯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한 암흑, 타락하고 퇴폐적인 어두운 밤중에 찬란하게 비치는 샛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던 청 조정에 한줄기 미약한 광명을 가져왔다.
그는 "중국은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아야 한다 라고 첫번째로 외친 인물"로 명예롭게 불니우는 임측서(林則徐)였다.
임측서가 이리의 병졸로 배치받기 전날 밤, 근심 걱정으로 애가 탔던 것은 자기의 작은 집 때문이 아니었고, 박정하고 의리 없는 조정 때문이었다. 그는 이전에 오기로 약속했던 동료, 위원(魏源 : 1794-1857. 청대 사상가, 역사 지리학자)과 촛불 아래 밤새 얘기를 다 누다가 앞으로 자기가 편찬을 완성시키지 못하게 될, <사주지(四洲志: 4대륙지)> 등, 자료를 그에게 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라"라는 걸출한 책을 완성시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낙후되고 몽매한 국민들의 마음과 지혜를 계몽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것은 고독하고 적막한, 누구도 잘될 것으로 예측하지 못하며, 또한 갈채받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위원은 임측서가 끝없는 유배 여정을 걸어가고 있을 때, 번역에 착수하고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범죄자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난관을 이겨내며, 장장 11년 만에, 임측서의 무거운 부탁을 저버리지 않고, 끝내 <해국도지.(海国图志 :해외 여러 나라의 실상)>이라는 책을 완성시켰다. 이 책의 핵심사상은 오랑캐의 장기(长技)를 배워, 이로서 오랑캐를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체계를 확실히 잡아, 각국의 정치제도와 경제운용방식을 명백히 논술하였다. 책의 서문을 쓴 인물은 양무운동 때 군대를 지휘했던 "중흥 지신(重兴之臣)" 좌종당(左宗棠)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출판 후 중국에서 냉대받있는데, 수년간 팔린 책이 몇 권 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책은 일본으로 흘러들어 간 후, 즉시 중국 엘리트가 쓴 "치국의 보전(寶典)"으로 알려지면서 민간 주도의 구매 열풍이 불었다. <해국 도지>는 봉쇄되고 낙후된 섬나라를 계몽시킨 하나의 창구였으며, 하나의 호롱불을 밝힌 것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 생기발랄한 신세계를 보았고, 서방 열강의 선진 사상과 문화를 본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사상가 요코이 쇼난(橫井小楠)은 감개하기 그지 없이 말했다. 일본 근대 대외개방의 사상은 제일 저음 <해국도지>의 지원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30년 후, <해국도지>를 읽으며 성장한 일본인은, 이후 갑오전쟁(청일전쟁)에서 청 정부의 북양해군을 괴멸시키고, 전쟁 배상금으로 국토를 할양받았다.
일본 수상을 역임한 이등박문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청 조정의 관원이 겸손하게 부국강병의 길을 물었다. 이등박문은 거짓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부국 강병의 길은 위원의 저서 <해국도지> 책 안에 다 있다.
말 한마디가 국가를 안정시카고, 책 한권이 국가를 흥하게 한다.
청조가 헌신짝처럼 내던진 적국을 보는 기준 때문에 앙국의 운명은 놀랄만한 역전이 발생했다.
구천에서 임측서는 어떤 생각에 짐길까?
※ 해국도지는 임측서의 사주지를 근본으로 하여, 중국인이 서양자료를 최초로 직접 번역하여 각국의 실상를 소개한 책으로 1842년 출간되었고. 1847년 60권으로 증간되었으며, 1852년 100권으로 다시 증간되었다.
박지원의 손자인 개화파 박규수가 이 책을 발견하고 조선으로 가져와 이책을 토대로 지구의를 만들었다고 하며, 역관 오경석이 이를 연구,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또한 박규수는 고종의 윤허를 받아, 신미양요 때 침몰한 제네랄 셔먼호의 잔해를 수거하여 해국도지에 수록된 증기선의 원리를 참조, 조선 최초의 철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 중국 황제에게 이 책을 보여주자, 당상 아무도 못보게 금서로 지정하게 했다는 야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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