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를 당한 관리 중에는 유능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죽이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중벌을 안 주면 군주의 위엄을 표현할 방법도 없었다. 관리들이 말을 잘 듣고, 굽신굽신 하게 만들기 위해서, 또 듣는 사람이 경계하도록, 통치자는 유배라는 방식의 중벌로, 불유쾌하게 간언을 하는 자들을 위협했다. 조정은 유배지를 선택하느라 골머리를 썩혔고, 대단히 고심하였다. 서북지방은 단절된 지역이고, 서남지역은 풍토병과 말리아가 창궐하는 곳이고, 동북지방은 엄청 추운 곳이고, 그리고 외딴섬들, 이들이 모두 진작부터 유배지가 된 곳이다.
청조의 유배지는 명대의 유배지를 물려받았는데, <대명률>의 기초 위에서 <대청율집해부례>가 수정 완성되었으며, 일부 창의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청나라 초기, 통치자들은 아직 입지가 안정되지 않아서 토착민의 반항, 적의와 불만을 모질게 탄압했다. 그리고, 과거장의 답안지를 빌미 삼아 문자옥(文字狱 : 글 쓴 것을 문제삼아 탄압하는 일)을 수단으로 사납게 내리쳤으며, 토착민에 대한 압제와 박해를 그치지 않았다. 함부로 그들의 의지를 끊으려 시도했으며, 그들을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고, 굽신 굽신하는 노예로 만들었다.
과거시험장 답안지 가운데서 오도건 같은 사람,. <명 역사> 답안지의 장 씨 일족, 哭廟(절에서 울다) 답안지의 김성 탄 일가족과 <남산집(南山集)>답안지의 여씨 일족 등, 전가족이 추운 동북 지방에 유배를 가기도 했는데, 한 번에 수백 명씩 갔다. 육체적으로 고달프게 하고 괴롭히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모멸과 수치를 안겨주었는데, 유배 가는 여정이 멀고도 힘들어서,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다고 할 정도였다. 설령 유배지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중원(中原) 강남 사람들이 보기에는 동북지역은 아직 개발이 안된, 들짐승이 출몰하는 야만의 땅이라 생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으로 잔뜩 겁을 먹었다. 특히 간담을 써늘하게 한 것은 유배지 ---- 닝 구타(宁古塔 :흑룡강성 소재)였는데 지옥의 대명사로 불렸다. <길림 통지>에 실려있기를 닝구 타는 인적이 드믈었다고 한다. "두 단강 요새를 나서서, 궁령을 넘으면 빽빽하게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어서 하늘이 안보였다. 삭풍은 미친 듯 불어대고, 눈꽃은 손바닥만 한데, 이상한 새와 괴상한 짐승들이 떼 지어 소리쳐 울고, 숲은 하얗게 눈에 덮여서, 걸어가던 사람이 잎으로 쓰러지거나, 금세 뻣뻣해졌다."
근년 들어, 우리들이 청조 황궁 드라마를 보면, 황제는 자주 노여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앞으로 닝 구타에 기서 살라, 영원히 사람을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라고 말한다. 유배당한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다. 설령 이지경까지 왔더라도, 그는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황은이 망극하다고 아뢴다.
청대 전체를 통해서, 파견과 유형, 군역 충당, 이주 이런 것이 모두 함께 완전한 유배체계를 만들었다.
순치 년간 으로부터 시작되어 닝구타는 청 조정의 유배자들을 받아들이는 땅이 되었다.
청, 중기에 이르러, 건륭제는 앞서거니 뒷 서거니, 준거얼부와 신강 남부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어서 이리에 장군부를 설립하였다. 그래서 이리는 황제에게 징벌을 당하거나, 파면된 신하가 가는 첫 번째로 꼽히는 유배지가 되었는데, 목적은 죄를 지은 신하를 괴롭힘을 당하게 함으로써, 엄히 징계하기 위함이었다.
신장으로 보내진 유명한 유배자는 기효람, 등정정, 임측서, 홍양길, 기운사, 서송, 장인환, 배경복, 유효, 온세림 등이다.
이런 유배자들 중에서 이름이 제일 빛나는 사람은 기효람과 임측서이다. 한 명은 재능이 풍부하고, 책을 널리 읽어 학식이 풍부한, 대학사이고, 한 명은 대의를 위해 늠름히 일어서, 호문에서 아편을 소각한 흠차대신이다.
당신이 이전에 얼마나 높은 관직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든, 일단 유배자가 되어서, 좁은 집에 도착하게 되면, 과거는 모두 버리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매사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신중해야 한다.
춥고 힘든 땅,--- 닝고타에 비하면, 신장 이리로 유배를 왔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환경면에서, 좋은 점이 매우 많았다. 최소한 오는 도중에 호랑이나 사나운 짐승에게 집혀 먹히거나, 추위와 배고픔으로 길에서 죽는 일은 없었다. 이리 장군을 역임한 사림들도 유배자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용을 베풀었고, 그들을 못살게 괴롭히거나 모욕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들을 푸른 하늘에 번쩍 들어 올린 사람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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