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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一) - 1/2

 

이리(伊犁)의 봄은 늦게 오고, 가을은 일찍 가버린다.
우리는 차를 몰아 이리의 강과 계곡이 있는 산길과 벌판을 달렸다. 화려한 색채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떼지어 모여있는 소와 양의 대군 말고는 초원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희소했고, 온 천지는 광활하면서 고요했다. 현지인이 말하기를 초원에 놀러 오려면, 제일 좋은 때가 5~6월이다. 짙푸른 초록 대지에 꽃들은 모두 피어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한다.

봄에는 들꽃이 만개하고, 벌,나비가 날아다니며, 초원은 초록빛 양탄자 같고, 유객들은 희희낙락, 좋기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런 것들이 지나치게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이리의 가을을 좋아한다.
이리의 가을은 편안하고, 조용하다. 하늘은 높고, 멀고, 깨끗하며, 또한 상쾌하다. 도시든 야외든 모두 가을 햇살의 따뜻함과 가을바람의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 이리의 강과 계곡은 일종의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 소박하게 쉬는 만족감 그리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가득하다.

카라준( 喀拉峻 ) 초원을 걸으면, 하늘은 높고 땅은 끝없이 멀다. 설산 봉우리들은 새하얗고, 협곡은 어둡고 깊다. 문득, "노인이라도 잠시 소년처럼 정신을 놓겠구나"하는 기분이 든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싶어 지는데, 여기서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야성을 발산하지 않으면, 가슴속에 오랜 세월 쌓인 분노를 없애기는 힘들다.

피곤하여 뒤척이다 시들어버린 풀 위에 누워, 풀 줄기를 씹으며, 멀리 깊고깊은 푸른 하늘을 응시하면, 집중하기만 해도 온정을 느낀다. 마음은 짙푸른 맑게 갠 하늘과 하나 되어, 나부끼면서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친구가 지프차 트렁크에서 수박을 꺼내다 좍 가르니, 껍데기는 얇고 물은 많으며, 사각사각하니 달다. 우리는 바위 위에 앉아, 먼 곳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속에서 수박을 한입 먹고, 수낭을 씹으니, 별미다.
이리에 초가을이 오면, 눈돌릴 새도 없이 한 달이 지나가고, 만추(晩秋)가 익어간다.
이리는 산이 이름답고, 물이 아름다운데, 정말 물은 멀리 흐르고, 산맥은 길어 한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리는 강남의 물의 고향으로,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또 서북 변경 요새의 웅장하고 기이한 아름다운 장관이 있다. 또 복숭아의 붉은색과 버들가지의 푸르름이 요염하며 눈 덮인 고원의 냉혹함이 있다. 이곳은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있는 신비한 땅으로 각지의 유람객을 끌어들이는데, 맘껏 말을 달려볼 수도 있고 고적을 답사하며 깊이 연구할 수도 있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200여년 전, 이리는 청조에서 죄를 짓고 벌을 기다리는 관원들이 쳐다보기만 해도 벌벌 떠는 유배지였다는 것을!
유배는 옛날 중국에서 누구나 익숙한 정치현상으로, 수천년 동안 독특한 유배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문화의 어두움, 냉혹함, 잔인함은 무딘 칼로 사람을 살해하는 것 같이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지식 분자 내지는 정직한 관리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고, 중국 전통문화 가운데 퇴적된 가장 깊은 층이며, 제일 언급하기 싫은 남다른 문화다.

중국의 형률은 매우 많은데, 유배는 통치자가 비교적 인자한 것이라고 큰소리 치는 형벌이다. 쿨한 사랑으로 이 "문자옥(文字獄)"을 만든 청 조정은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낸다"라고 했다. 이것은 유가에서 제창하는 어진 정치, 신중한 형벌을 실현한 것이다. 당나라 조정 정치환경은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느긋했지만, 정객 문인의 다치는 정도 역시 양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명 재상, 양담(杨炎 : 당나라 정치가)은 애주(崖州)로 유배 가면서 슬피 탄식했다. "한번 가면 만리인데, 천명이 가면 천명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주가 어드메뇨? 살아서 생사의 갈림길로 넘어가네."

문학가 한유(韩愈 : 당의 문장가, 정치가)는 관직을 강등당하고 조주(潮州)로 유배 가다가, 친링산맥을 넘어가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칠언율시 <남전관에 이르다>를 남겼다.

一封朝奏九重天, 夕贬潮阳路八千。
欲为圣明除弊事,肯将衰朽惜残年。
云横秦岭家何在,雪拥蓝关马不前。
知汝远来应有意,好收吾骨瘴江边。 

 * 중국 고전 중에서도 詩 번역은 또 다른 어려운 분야입니다. 정확한 전달은 힘에 부치고,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습니다.

아침에 황상에게 상소를 했더니, 저녁 때 바로 강등과 8천 리 귀양길에 나서게 되었네.
폐단을 없애고자 했던 것 뿐인데, 쇠약해져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구먼.
구름은 친링산맥에  걸려 있는데 우리 집은 어디 인고? 남전관에 눈이 덮여있으니 말도 앞으로 가려하지 않네.
너는 멀리서 왔으니 당연히 생각이 있을터? 내 유골이나마  강변에서 잘 수습하여 주었으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