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 ---- 맞은편 언덕 같은 것은 없었고, 온통 짙푸른 하늘이 그대로 지평선으로 떨어져 있었다. 하늘은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했으며, 지평선 가까이에서 감청색으로 변했고, 땅은 회녹색, 언덕은 청록색이었다. 강물 속에는 앞으로 뒤로 들쑥날쑥, 튀어나오고 쑥 들어가고 여러 겁으로 겹쳐진 물에 비친 그림자가 원 모습처럼 확실하게 보였고, 원 모습 그대로 굳어져 마치 넓은 양탄자를 거꾸로 걸어 놓은 듯...
ㅡ 목심(木心) 선생의 <콜롬비아의 물에 비친 그림자>에서 전재 ㅡ
그때는 허드슨 강변이 아니다. 우진(烏鎭)의 서쪽 편 풍경이다.
맞은편 언덕 같은 것은 없다: 물의 고향, 옛 도시, 석교, 긴 거리, 오래 된 집, 목선. 오래된 석교와 거리. 거기엔 한 덩이 한 덩이의 청석판이 쌓아 올려져 있는데, 혹은 매끄럽거나 혹은 울퉁불퉁했고, 지나간 세월을 감추어, 새겨 넣고 있었다.
집들은 검은 기와와 흰 담장, 부채꼴 옛날 창문은 강과 맞닿아 열려있고, 미풍은 살랑살랑 불고, 몰결은 잔잔하게 일었다. 물은 청록색인데, 박달나무, 여진 계수나무처럼 무겁고 진중한 검푸른 빛깔이었다. 여러 경로로 항구에 다다른 물은 큰 호수에 모여, 운하에 들어와서, 왔다 갔다 했는데, 강물은 석교에 가로막혀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지평선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우쩐(烏鎭) 대극장은 옅은 갈색인데, 길게 늘어선 접이식 유리가 정면에 보였다. 극장은 어듬침침한 하늘 아래, 반이상 잡아당긴 커다란 아코디언이 되었고, 소리가 잠시 멈춘 정적의 순간, 하늘색은 고르게 응고되어....
홀연히, 맞은편 언덕 같은 것들이 것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 베이지색 건축물은 원바오(元宝) 호수로 모여든 물 위로 떠올라 솟구쳤다. 멀리서 보니, 하나하나 돛을 단 네모난 나룻배 같은 것들이 강을 건네주는 데 지쳤는지 물 한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그 배들은 먼 맞은편 언덕에서 왔는지 뱃전에 파도에 침식된 금이 그어져 있고, 선창에는 태평양의 숨결을 머금고 있었다. 배들은 우쩐 항구에 들어와 다시는 떠날 것 같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수면 위 가파른 벼랑길을 거쳐 온, 넓고 깊은 선창은 바로 "목심 미술관"이다.
다리엔 바람 불고 물결이 쳤디. 네모 상자 하나 하나 ... 그건 당연히 목심 선생이 생전에 기대했던 모양이다.
미술관의 외형은 지극히 간단하여 네다섯 개의 현대 기하학적인 조형물이 거리에 면하며 변화를 주고 있었다. 가로로 누워있는 불규칙한 정면 표층은 맑은 물이 콘크리트와 섞여 고르게 굳어진 본래 색갈이다. 이처럼 똑바르고 힘센 선(線)의 윤곽은 우쩐의 양안 물길의 부드러운 풍경 속에서 약간 어 튀어 보였다. 관내의 각 전시실은 벽이나 천장이나 전열 케이스나, 각종 미묘하고 깊은 부드러운 회색 기조로 구성되어 어두컴컴한 전등불 아래 약간 차갑게 보였는데 친절하다기보다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쑤저우(苏州) 강에서 항저우(杭州)로, 상해로, 거기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둘아다녔는데, 더는 우쩐 촌뜨기가 아니었다. 그의 문자 풍격은 국경 없는 한자 세계에서 모호성을 띠었고 사상과 언어의 이단아가 되었으며, 국제 현대미술관의 규모와 짜임새가 필요했고, 그러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술괸 안에 모찰트 음악이라도 있었을까? 음악은 없었고, 맞아주는 것은 <린 펑미앤(林风眠)과 목심>, <니체와 목심>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목심은 린펑미앤에게 배웠기 때문에 미학의 지향하는 바가 서로 맞았다. 미술관 내에는 십여건의 린펑미앤 원작이 전시되어 있었고, 단순 소박하고 산뜻한 목심 회화와 서로 잘 대비되는 관계가 이루어졌다.
니체에 관해서, 목심은 이미 <문학 회상록>에서 말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서, 만약 니체를 경시한다면 그 사람은 가치가 있을 리 없다 ---- 나와 니체의 관계는 장주와 호접의 관계 같은 것이다.(庄子의 호랑나비의 꿈에서 인용한 말로 자기가 호랑나비(니체)와 일심동체라는 의미) 니체는 나의 정신적 애인이다. 현재 이런 애인은 노자(老子)다.
딱, 오십 년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다른 말을 했으나, 니체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사상가다. 니는 기껏 사상을 잘 실행할 수 있는 예술가지만, 사상 자체는 잘하지 못하는 예술가다. 앞으로 그 사상이 예술을 해칠 수도.... 니체는 인류가 스스로를 초월하기 바랐으나....
미술관 설계자는 목심을 이해하고 니체의 육필 원고 네 편과 19세기 원판 저작물 21점 그리고 니체의 초상 8점을 전시했는데 그것은 독일 니체 재단과 니체 아카데미 등 몇 개 단체에서 협조 제공한 아시아 최초의 전시물이었다. ----- 말하자면, 한 개인이 니체에 미친 다음, 우쩐에 숨은 것이다. 목심은 이때부터 옛 애인의 신변에 의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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