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 년을 끄집어내면, 모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여기서 어두워졌다는 것은 컴컴해졌다는 게 아니라 기억 깊은 곳에 감추고 있던 일종의 떨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날의 격류가 세월의 지하 강물에 부딪힌 후 나타나는 흥분의 떨림이다. 모친은 바로 이렇게 생활의 무대에서 갑자기 뛰어 내려왔다. 그녀는 두 손을 매번 무의식적으로 들어 올렸는데 마치 교향악단 지휘자가 되어 '오랜만이다 홍수야'라는 곡을 지휘하는 것 같았다.
그해 봄철, 하늘은 마치 깨진 독에서 물이 쏬아져 나오는 것 같이 막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는 그치지않고 내렸다. 초봄부터 늦은 봄까지 밭에 있는 볍씨 모두 물만 들이켰을 뿐 태양빛은 도무지 쬐어보지 못한 채 잎과 줄기가 드믄드믄 길게 자랐고 조는 오히려 뭉뚝해져서 결국 풍성해지지 않았다. 금강(金江)의 물은 갑자기 수위가 높아져, 한 마리의 길고 난폭한 거룡같아졌고, 이 거룡은 혀 끝으로 이미 문씨네 넓은 정원의 섬돌을 핥고 있었다.
임신한 외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천을 짜고 있었다. 그녀는 느긋한 자세였다. 바깥의 비는 하늘색이 매우 험상궂어, 쉽게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았고, 지표면에는 진흙 웅덩이가 어지럽게 깔렸는데, 마치 침략군이 철수하고 남아있는 폐허 같아 보였다. 외할머니는 15세의 이모와 11세의 모친을 소리처 불러 놓고, 두 자매에게 빨리 밭에 가서 좁쌀을 훑어다가 떡을 만들라고 시켰다. 모친이 '조는 아직 안 익었어요'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이런 망할 놈의 날씨, 조가 안 익었으니 어쩔꼬! 더 이상 비를 피할 수 없으면 조금만 훑고 돌아오려무나."
홍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고 하는데도, 모친과 이모는 밭으로 갔다. 제방과 밭이 가까운 곳에 있다보니 그 밭을 모두 "언덕 밭"이라고 불렀다. 모친이 조를 훑다가 뾰족한 조의 가시에 베이자 급히 손가락을 입에 대고 호호 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는 깜짝 놀랐다. 눈 앞에 일렁이는 파도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마치 하늘에서 뛰어내려온 것 같았다. 그것은 무리를 이루고, 대오를 지어 마을을 향해 부딪혀오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이모를 돌아보았다. 놀란 두 사람은 마치 활에 놀 란 새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급히 뛰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물건을 옮기러 나갔고, 외할머니는 여전히 느긋하게 방에 앉아 천을 짜고 있었다, 모친이 "홍수야!" 하고 고함을 질렀다. 외할머니는 바로 며칠 전에도 큰 물이 났지만, 물이 섬돌 아래까지만 왔고 집안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니 오늘도 들어올 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늘은 진짜 큰 물로 바뀌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것은 흉폭하고 지독한 큰 물로 자매 두 사람의 발뒤꿈치를 따라와 쏬아져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외할머니의 말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집안에서는 이미 파도가 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황급히 손에 있던 실을 던져버리고 집에 있던 왕할머니(모친의 외할머니)를 부축하고, 어린 아들(나의 외삼촌) 손을 잡고 마당 뒤쪽에 있는 높은 곳, 주마(驻马) 언덕을 향하여 달렸다. 반쯤 갔을 때 자기 집을 돌아보니 벌써 창틀까지 물에 잠겨버렸다.
모친은 맹렬하게 외할머니의 손을 뿌리치 고 파도를 헤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은 모두 물에 잠겨있었고 오직, 한 개의 그릇 궤짝 허리 부분이 꿋꿋이 담 옆에 솟아 있었다. 모친이 있는 힘을 다하여 그릇 궤짝을 옆으로 밀어 쓰러뜨리자 우르르 자기 그릇들이 물속으로 쏟아졌다. 그녀는 물의 부력을 이용해서 빈 그릇 궤짝을 집에서 끌어냈다. 밖으로 끌어내자마자 뒤켠에서 쿵 소리가 났다. 집이 무너진 것이다. 이때, 주마 언덕에서 외할머니 가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내 딸!" 그녀는 모친이 틀림없이 물에 빠져 죽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여겼다.
오 분 후, 모친의 작은 머리와 그릇 궤짝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 외할머니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오, 하나님!" 외할어니는 급히 모친을 끌어안았다. 그들은 백여 미터 앞, 주마 언덕에 서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이 온통 누런 물로 가득했다. 파도가 치면서 주변의 집들은 목재를 쌓아놓은 듯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백 년도 넘은 멋진 담장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마치 의를 위해 죽으면서 장열한 구호를 웨치는 것 같았다.
이 대홍수는 1954년 봄장마로 100년이 넘는 문씨 가문의 큰집을 무너뜨렸다. 모친 말에 의하면, 그 큰집에는 문 씨 성, 6-7가구가 살았는데 천정이 둘 있고 회랑도 있으며, 우리가 현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고적에 못지않았다. 물이 빠진 후에 보니 외할머니 집이 가장 심한 손실을 보았다. 기껏 가져 나온 것이 그릇 궤짝 하나였으니 말이다. 이불, 옷가지들을 모두 진흙탕에서 끌어내었지만, 도무지 깨끗이 씻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몸에 뚱뚱 껴입고 있으니 마치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삼나무 목재를 이용해서 주마언덕에 초막을 한채 지었고, 한집안 여섯 식구가 삼 개월 동안 이 초막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농업보험 같은 게 없어서 정부는 이재민마다 두 사람에 하나씩 질긴 단풍나무 하나를 주었다. 이 단풍나무로 판자를 만들어 자기 집 산에서 구한 삼목을 더하여 외할아버지는 다시 금강(金江) 하구에 벽돌집을 한채 지었는데 지붕 위에 볏짚을 덮었다. 나는 한 살부터 여섯 살 반이 될 때까지 천진했던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집을 지을 때, 이모와 모친은 모두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했다. 특히 15세 였던 이모는 성년 남자들과 함께 벽돌을 운반하고 진흙을 날랐다. 벽돌 한 개의 무게는 10~15kg이 나가는데, 매일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일했고, 너무 힘들어서 자주 기진맥진했다.
10월, 외할머니가 새 집 침대에 눕자 두눈에 지붕 위의 볏짚이 보였다. 그녀가 본 것은 온통 황금빛 벼의 물결이었고, 그것은 하늘 높이 나부끼는 금빛 깃발이었다. 한 황금 어린아이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눈을 감자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때 막내 이모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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