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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봄비 속에서 흐느껴 우는 사람은 없다 (没有人在春雨里哭泣) : 鲍尔吉,原野

 

빗방울은 푸른 풀포기 하나하나를 겨냥해서 떨어지지만 바람이 불기 때문에 다른 풀 위로 떨어진다. 다른 빗방울도 또 다른 풀 위로 떨어진다. 봄비가 전혀 성장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려고만 하는 땅 위에 떨어지면, 땅은 비로소 소생하기 시작한다.
작년의 일이 떠오른다. 빗물은 제비가 나는 대형으로 줄을 서서, 제비의 나긋나긋함으로 대지로 뚫고 들어간다. 이때, 솨솨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나뭇잎이 너무 작아서 연주하는 솨쇠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봄비는 금년 제일 처음 내리는 비인지라, 떨어지면서 회상한다. 어떤 곳에 내렸고, 어떤 곳에 내려야 할지를. 봄비는 바람을 일으키는 투명한 돛을 끌어당겨서, 빗물이 뿌려져야 할 모든 곳에 내리게 한다.

봄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은 옛사람들이다. 그들은 겨울의 표정을 지으면서 구식 의복을 입고, 거리를 걸어간다. 봄은 본래 진귀한 것을 바라지 않으니 가장 새로운 비는 이런 옛사람의 신상에 떨어진다. 그들은 꽃을 피우지 않고, 푸른 풀로 자라나지 않으니 구름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를 리 없다. 빗물은 그들에게서 물러서지 않는다 ---- 빗물은 그들의 어깨 위, 구두와 우산 위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비를 원망하지만, 이것은, 사실, 그들이 꽃을 피우지 않고 푸른 풀로 길게 자라지 않고, 사과가 달리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쉽게 당하는 것이다.

봄비는 정성스럽게 복사꽃과 살구꽃을 깨끗이 씻어 준다. 꽃송이들은 봄비가 참 다정하다고 느낀다. 꽃이 어머니 배에서 밖으로 나오면, 세상 어떤 것보다 신선하다. 깨끗이 씻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니다! 이것은 봄비가 하는 말인데, 꽃송이들은 빗물이 깨끗이 씻어주기를 바라서 복사꽃도 이렇게 아름다운 미모를 깆게된 것이다. 세상 일은 이렇다. 누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만, 당신만이 그걸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봄날의 빗물이 한바탕 쏬아지면, 표정이 드러난다. 그들은 비록 비로 떨어지지만 결코 여기가 어디인지 모른다.

수목들은 어떤 것은 연두색이고, 어떤 것은 짙은 녹색이다. 나뭇닢은 둥그런 싹도 있고 뾰족한 싹도 있다. 설령 지상의 푸른 풀일지라도 푸르름은 서로 다르다. 어떤 푸르름은 이미 부추 같아졌고 어떤 것은 방금 파란 싹이 돋기 시작했다. 관목의 푸르름은 한 장 한 장의 담요 같이, 어떤 것은 키 큰 나무에 연한 싹이 돋아난다. 성급한 복사꽃은 우수수 떨어지고, 살구꽃은 드믄드믄 지속적으로 떨어잔다. 마치 계속 꽃이 피는 것 같다. 봄비는 이런 정경을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것 같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봄비는 지나 온 곳이 너무 많아, 어느 성, 어느 현, 어느 마을이었는지 근본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성장, 현장, 촌장은 기억할 것이다.

봄비는 계속 내리기 시작하지만, 쿵쿵 우레 소리를 낼 필요는 없고 그저 전처럼 내리면 된다. 봄비는 이런 겉치레 늘 꾸미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것일 뿐, 먹구름이 새까맣게 몰려오지도 않는다. 그런 것은 모두 여름철이 꾸미는 일이다. 봄비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번개를 누구는 못 치겠나? 번개 한번 쳐 볼까? 봄비는 조용하게, 잔잔하게, 시원하게, 밝고 환하게 흩뿌려지며 땅 위로 내려온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그들은 유리창 위에 엎드려 집안을 들여다본다. 빗물이 집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보이는 사람은 앉아있거나 혹은 누워 있있으며, 그들이 생활이라고 부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봄비의 물방울들이 들여다본 집안에는 물이 없다. 꽃송이와 푸른 풀, 역시 없다.

봄비가 흩날려 떨어질 때 노랫소리, 합창, 민요 형식의 악곡, 6/8 박자, 꼭 타지크 음악 같다. 애석하게도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봄비의 노랫소리는 20 헤르츠보다 낮다. 선율은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뱃노래"와 같고, 이어지는 선율은 새로 함께 만나게 되는 사이를 벌여놓는다. 두 발자국 걸으면 바로 시작 마디가 있다. 시작하고, 발전하고, 종결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뱃노래는 나폴리 선원들이 부르는 연가 민요로, 출렁출렁, 리듬이 계속 출렁댄다. 이 뱃사람들은 뭍에 올 라 오면 제대로 걷지 못한다. 땅은 출렁대지 않기 때문이다. 봄비는 벌써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데 이건 별거 아니다. 봄비는 때로는 질풍같이, 때로는 느리게, 혹은 빠르거나 혹은 천천히 공기 중에서 출렁댄다. 그것은 결코 급하게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빨리 내려와서 뭐하나? 6/8 박자로 출렁대는 게 낫다. 타지크 인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지만, 노랫소리가 출렁대는 것을 이해한다. 6/8 박자는 다리의 리듬이 아니라 허리의 리듬인 것이다. 들어가고 나가고자 할 때는, 갑자기 몸을 돌리는데, 다리가 아니라 허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허리 동작은 어깨로 표현한다. 만약 춤추는 사람이 머리에 검은 양피 모자를 쓰고 있다면, 윗입술에 남아있는 짙을 검은색 뾰족한 수염이 더욱 멋질 것이다.

봄비가 갑자기 내리는 것은 푸른 풀과 꽃에게는 도무지 의외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의외다. 사람들은 황급히 뛰어 처마 밑이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한다. 비가 계속 내리면 사람들은 처마 밑이나 나무 밑에서 걸어 나온다. 비는 이 사람들을 씼겨서, 복사꽃처럼 새빨갛고, 살구꽃처럼 밝고 환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비는 사람의 옷을 때리면서, 방직물에 스며들어 물에 젖어 무겁계 만든다. 얼굴색은 복사꽃처럼 그렇게 산뜻하고 아름답지도 않고 허약하게만 보인다. 그들의 얼굴에는 물방울이 가득하다. 이것과 유리창 위에서 집안을 들여다보는 물방울은 저로 같은 패거리 들이다. 물방울은 온순하게 사람의 얼굴 위에서 온기를 받으려고 얼굴에 온 것 같다. 이런 얼굴은 수목보다 훨씬 단단하다. 얼굴 위에 인생의 모든 소식을 감추어 놓거나 노출한다. 빗물은 그들의 콧등을 만지고, 그들의 뺨을 만지지만, 그들은 눈동자는 만지지 못하게 눈을 가늘게 뜬다. 이 사람들은 황급히 뛰어가는데 마치 산꼭대기에서 돌이 굴러내리는 것처럼 사방으로 내리꽂는다.

봄비 속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의 몸에는 대략 4000에서 5000 cc의 혈액이 있고, 대략 20~30 cc의 눈물이 있다. 눈물의 진짜 용도는 눈동자를 씻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플 때 눈물이 흐르는 것은 의외이다. 그들의 마음은 눈물의 작은 저수지를 찢어 놓는다. 봄비는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불허한다. 빗물은 사람의 이마와 콧등, 뺨을 깨끗이 씻어주고 여러 해 전의 눈물 흔적도 깨끗이 씻어준다. 봄비는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지만 만약 빗물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들에게 빗물을 주고, 시원함이 필요하면 시원하게 해 주고 따듯함이 필요하면 따듯하게 해 준다. 봄비가 어깨, 행인의 어깨와 등을 두드릴 때, 그들이 팔을 휘두르르면 두 손으로 비를 쥐게 된다. 비가 제일 바라는 것은 사람의 눈을 씼겨주는 것인데, 그들이 복사꽃이 핀 것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한구루 한구루의 복숭아나무가 길가에 서면 가지가 서로 겹쳐져서 빽빽하게 꽃이 핀다. 복사꽃은 빗물 속에서도 의연하게 만개해 있고, 젖어서 더욱 새빨갛다. 어떤 꽃잎은 진흙에 떨어지는데, 찢어진 엽서 같다. 거문고 줄 같은 푸른 풀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빽빽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고, 마치 어린아이 머리카락처럼 빨리 자란다. 여러분은 새가 많아진 것을 알았는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큰 소리로 울면, 큰비가 내리거나 바로 멈춘다. 만일 행인이 발아래로 진흙을 밟으면 새들이 당연히 좋아하는데, 이것은 봄이 왔다는 증거이다. 동토가 뜻밖에 진창으로 바뀌면, 모든 나무에서 꽃봉오리가 맺힌다. 꽃이 피지 않는 버드나무까지도 꽃봉오리가 맺힌다. 새들이 온 세상에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당신은 들어보았나? 춘톈 춘톈(春天: 봄의 중국어 발음). 새들을 매일같이 이 두 마디를 말한다.


원재 <10월> 2016. 제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