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모종을 심을 때, 소가 발로 밟은 후, 소가 섰던 자리가 쑥 들어가면 그 자리에 생긴 틈이 옥수수 모종 심을 위치가 된다.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을 보고 있었는데, 한 옥수수 모종은 너무 지면에 바짝붙어 서있어, 거기 서있을 의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찌 그렇 수가 있나 도 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나의 옥수수 모종이라 해서 어찌 죽을 테면 죽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손톱이 자라서 깎아주면 또 자라고, 부추도 베고나면 며칠 후에 다시 그 자리에 생겨나고, 나뭇잎이 노래졌다 다시 파래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빈자리가 되면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다. 생각하면 할 수록 상실감만 더 커지고 일종의 큰 깨달음이 생긴다.
그때가 되어서야 새상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고 마치 소가 밟은 자리에 심긴 옥수수 모종처럼 결국 어느 날엔가 갑자기 빈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이런 빈자리는 어느 누구나 만나게 되고 심지어는 일생 내내 동반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빈자리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가져온 재미와 쓰라림을 기억한다.
나는 어렸을 때 말수가 적었다. 사람들 많은 데 가기를 겁냈고, 길에서 우연히 마을 사람을 만나면 그저 헤헤 웃었고 멀리서 친척이 오는 것을 보면 몰래 숨었다.
학교애 들어가 선생남의 거무튀튀한 얼굴을 보고 만약 교실에서 나를 선택해주면 오히려 집으로 가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처방법은 역시 온종일 답답하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의 말을 빌면 나는 나무토막처럼 걸상에 앉아 있으면서 쳐다보기만 해도 부끄러워하는 아이였다.
이런 조용하고 부끄럼 잘 타던 나는 투이진(堆金)을 만나면서부터 많이 달라졌다.
그와 나는 완전히 반대였다. 수업을 시작하면 말을 하고 싶어 안달해서, 어떤 차례 짝도 그를 견뎌내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가 말을 안 하니 투이진을 내 옆에 앉히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잘해보려다 오히려 망친다고, 투 이진은 의외로 나의 단단한 자물쇠 입을 열었다.
그는 뜻밖에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 중 첫 번째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질 낮은 백주(白酒) 한 병을 12살밖에 안된 몸에 털어 넣은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이때부터 교실 안의 긴 책상 한구 퉁이에 열두 살 아이의 빈자리가 생겼고, 나는 거대한 공허함을 지켜내야랬다.
투이진과의 이별은 나에게 사람은 어느 날엔가는 빈자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모친과의 이별은 나에게 빈자리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슬픔의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내가 방학을 맞아 집에 가는 도중에 나를 영접 나온 사람이 아무런 예고 없이 모친에게 일이 생겼다고 한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서둘러 보러 갔다. 사실 나는 일이 생겼다는 말에 대해서 전혀 개념이 없어서 그저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가는 도중 아무 말이 없었다.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을 때, 감자 수레가 길에 엎어져 있었고 엄마는 아버지의 품에 누워 있었다.
엄마의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물을 참으려고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병원으로 실려가기 전에는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으나, 되돌아왔을 때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그날 저녁 무렵, 친지들은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이때부터 집안 마당, 온돌방, 식탁 위에는 엄마의 자리가 텅 비게 되었다.
아버지가 몇 아이들과 더불어 엄마가 남겨놓은 빈자리를 지켰는데 마치 하루가 일 년 같았다.
3년 전 조부가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사합원(중국 고유의 사각형 구조의 가옥)에 다시 빈자리가 우리를 슬프게 했다.
눈 감고 태어나 일생을 보내고 난 조부를 우리는 모친이 묻힌 땅 부근에 묻었다.
이때부터, 조부는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사람의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조부의 신분으로 영원히 빈자리가 되신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슬퍼했지만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백지에 그의 이름을 썼고, 그의 사진을 현상하여 액자에 넣어 단정하게 제상 중앙에 놓았다.
설날이나 명절이 되면 제일 좋은 것들을 늘어놓고, 향을 피우고 담뱃불을 붙여 마치 조부가 살아계신 것처럼 건넨다.
사실상, 우리는 그와 한 번도 이별한 적이 없었다. 우리 모두 말할 때는 될수록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했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가장했다.
밥을 먹을 때는 먼저 할아버지에게 한 숟가락 퍼서 제상에 올려놓고 그가 젓가락질하는 것으로 간주했고, 그리고 나서야 우리도 음식을 들었다.
조부는 평소 절약이 습관화되어 땅에 떨어진 쌀 한 톨도 주워서 호호 불고는 입속에 넣으셨다.
그래서 우리도 밥을 먹을 때, 조부께서 아까워하실까 봐 감히 밥을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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