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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

2018 겨울, 만주 유랑기 - 용정(龍井) 나들이 (1,27)

석양 무렵 일송정 (소나무도 새로 심은 것이고, 정자도 새로 지은 것이다)



용정(龍井)은 연길 남서쪽 24km 지점에 있다.

이곳은 1800년 아후 홤경북도 회련에서 넘어 온 조선농민들이 개척한 땅이다.

조선농민들은 두만강을 넘어와 두만강 지류인 해란강변의 황량한 삼림지대를 개척하여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었다.

용정이란 이름의 유래는 1880년 조선 이민 장인석, 박인언이 우물을 발견하여 우물가에 용두레를 세우로 우물이른을 용정이라 부른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용두레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는 장치로 모양이 용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레라고 불렀다고 한다.

용정이란 이름을 낳게 한 용두레 우물은 현재 용정 시내 용정중학교 부근 거룡우호공원에 있다고 한다.

용정시는 1913년 연변현(延边县)이 설치되었다가 1983년 용정현으로 개칭되었고,1988년 시(龙井市:-룽징)로 승격되었으며 인구 26만명이라고 한다.


나는 용정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이 도문에서 연길로 돌아와 바로 버스를 타고 오후 3시경 용정에 왔다.(버스비 5元)

윤동주 시인이 요즘 한참 매스컴을 타니까 용정 하면 윤동주의 고향 마을이겠구나 하는 정도의 상식 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성중학 (지금 용정중학)에 가보았고 내친김에 왕복 60元에 택시를 대절하여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윤동주 생가와 일송정에 가보았다.

젊은 중국인 택시기사는 워낙  한국인들이 많아 찾아서 그런지 인동주(윤동주의 중국 발음) 생가 하니가 금새 알아 들었고, 이쑹팅(一松亭:일송정)도 척척 알아들었다.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이 중국 일반 중학교인 용정중학으로 바뀌었다.


윤동주의 시비 "서시"가 새겨있다.


중국 중학교 교육이념을 새긴 교문앞 표지 (학생 하나하나 자신있게 자기 길을 가도록 만들겠다)


윤동주가 다녔던 옛 대성학교 (현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윤동주 시인 생가로 가는 길 - 상당히 먼 인적없는 시골 길이었다.


해질 무렵 도착한 윤동주 생가가 있는 조용한 시골마을은 동네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부드러운 황혼녘의 금빛 햇살아래 아늑한 고향의 느낌을 주었다.

또 윤동주 생가에서 돌아오는 길 20元을 더 주기로 하고 들른 비암산 공원 일송정은 어두워질까봐 나무계단을 단숨에 숨가쁘게 올라 겨우 볼 수 있었다.

이곳이 워낙 평야지대라 별로 높지 않은 일송정 정자에서도 조용히 흐르는 해란강과 용정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풍경이 정말 평화롭고 정겨웠다.

정말 용정을 이렇게 스쳐 지나갈 게 아니라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시간을 갖고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 말고 또하나 용정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조두남 작곡 윤해영 작사의 가곡  "선구자" 다.

원래 알려진 사연은 1932년 조두남이 하얼빈에서 윤해영을 우연히 조우했는데 용정의 노래라는 제목의 꼬깃꼬깃 종이에 적은 글을 불쑥 내밀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오겠다고 했지만 윤해영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고, 조두남은 불운한 독립은동가려니 하고 그 가사에 맞는 작곡을 했고 그것이 유명한 가곡 선구자라고 한다.

헌데, 작곡가, 작사가 두사람 모두 친일파로 몰려 2003년 용정시가 일송정에 있는 노래비에서 노랫말을 삭제했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들린다.

또 중국의 동북공정에 놀아나 근거도 없이 모함을 당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선구자가 유명해지니까 조두남 곁에 있던 사람이 시기심에서 모함했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알면 알수록 서글프기만 하다.


하지만, 일송정에서 어두워가는 용정시내를 보고 있으니 용정의 노래 - 선구자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고 그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찡하게 다가왔다.

석양에 비친 해란강 줄기, 거기엔 말 달리며 활을 쏘던 선구자가 꼭 있었을 것 같다.  -  작곡가, 작사가가 친일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용정 시내에서 이런 외진 길을 30분쯤 달렸다.



생가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처럼 우뚝 솟은 바위 - 생가 근처








일송정 -  잘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일송정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정 시내와 해란강




일송정은 원래 정자처럼 그늘이 넓은 소나무라고 하며 저녁종 소리가 들렸다는 용주사는 주택가로 변해 터마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일송정 아래에 있는 비암산 식당



해 질 무렵, 용정 시내


연길로 돌아오니 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