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월 18일 오후 1시. 인천 공항에서 일행 네명이 하얼빈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오후 12시 30분발이나 30분 지연출발)
원래 이번 여행은 7박8일 일정으로 하얼빈 빙등제를 보고 수분하에 가서 러시아 국경을 넘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가 거기서 귀국할 계획이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하얼빈-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여행기를 남기겠지만,해삼위를 가지 못했으니 만주 유랑기라도 남길 수 밖에 없다.
유랑이란 일정한 거처 없이 돌아 다닌다는 뜻이니, 중국 동북 3성을 정처없이 돌아다닌 이번 여행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유랑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호텔 앞 하얼빈 뒷골목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대기.
하얼빈 기온 영하 35도란 예보를 보고 모두 옷을 엄청 껴입었다.
우리가 타고간 쬐그만 비행기. 하얼빈까지 두시간 남짓 걸린다.
하얼빈 부근 북쪽 지방으로 올라가니 낮은 평지는 모두 눈에 하얗게 덮여있고 검게 보이는 것은 나무 숲이다.
하얼빈에 내려 수속울 마치고 나온 시간은 중국 시간으로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얼빈은 겨울철에는 저녁 네시부터 어두어지기 시작한다더니 정말 그시간부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얼빈의 타이핑(太平) 국제공항은 흑룡강성의 성도(省都)인 하얼빈의 국제 관문이라기에는 너무나 작고 허름했다.
공항 건물도 작았고 내리는 탑승객도 우리 외에는 없어서 수속을 마치고, 공항버스에 올랐지만 승객이 다 차야 가는지 도무지 갈 생각을 안했다.
하얼빈은 일찍 캄캄해진다는데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다 캄캄해지면 예약한 호탤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겠다싶어 버스를 내려 택시로 바꿔 탔다.
우리가 탔다가 내린 공항버스 (허리에 차는 벨트색을 놓고 내린 버스다)
공항 버스에서 본 하얼빈 공항 주차장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벌판 한가운데 일자로 쭉 뻗은 고속도로였는데, 점점 날은 어두워 오고 황량한 느낌만 들었다.
일열로 늘어선 자작나무 가로수 길, 그너머로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 바람은 씽씽 불고... - 과연 북국에 온 실감이 났다.-
하얼빈 외곽에 들어오니 시내 길 역시 넓고 커다란 건물이 듬성듬성 서있는데 공기는 차갑고 거리를 오가는 차들도 많지 않았다.
이곳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니, 눈이 내려도 녹지 않아 시내가 온통 눈으로 덮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리에 눈 쌓인 것은 별로 보이지 얺았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 여러가지 모양의 얼음으로 조각한 조형물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얼빈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
도로가 상당히 넓고 건물들이 듬성듬성 서있어 도시가 썰렁해 보였다.
추운 곳이라 눈이 녹지 않아서 그런지 깨끗했다.
러시아풍 건물
씨트립을 통해 예약한 호텔은 시내 중심가인 하얼빈 역 부근에 있었고, 겉에서 보면 크고 근사한데 내부는 허름하고 지저분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불과 5시 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완전히 캄캄해졌고 우리는 서둘러 택시에서 짐을 내렸다.
짐을 내리고 택시를 보내려는 순간, 일행 한사람이 "앗차!" 허리에 찼던 여권과 돈을 넣은 벨트색을 공항버스 의자에 놔두고 그냥 내렸다는 걸 알았다.
다급한 마음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부리나케 다른 짐들을 뒤져 보았으나 벨트색은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속절없이 여권과 돈이 들었다는 벨트 색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권을 잃어버린 당사자는 물론 나까지 눈앞이 하애졌다.
나름 치밀하게 세워둔 여행일정은 순식간에 정처없는 유랑이 되어버렸고 매일 걱정과 한숨으로 시간을 보내는 가련한 신세가 된 것이다.
외무부 영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하얼빈에는 영사관이 없고 이 지역은 심양 영사관에서 담당하니 거기에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 하얼빈에서 심양까지 거리는 550km다.
심양 영사관에 전화하니 근무시간이 끝나서,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고 긴급 전화 받는 사람이 내일 다시 담단자와 통화하라고 알려주었다.
어쨋든 분실신고부터 해야겠다 싶어 행인들에게 여러번 물어 인근 파출소를 찾아갔다.
어두운 하얼빈 골목 안, "송화강가 파출소"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곳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정복을 입은 경찰이 나온다.
파출소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작은 철문 하나일 뿐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었고,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방들이 많았다.
파출소는 업무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근무자가 몇사람 없었는데, 당직 경찰관은 의외로 친절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분실 경위와 분실물의 크기, 색갈들을 자세히 묻고나서, 공항근처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신고된 분실물이 있는지도 알아봐 주었다.
우리는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분실물 습득한 것은 없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나중에 와서 설명을 들은 파출소장에게 분실증명을 써 달라고 했다.
파출소장은 나를 회의용 탁자가 있는 소장실로 데려가더니 직접 PC로 분실증명을 작성하여 별이 그려진 스탬프까지 찍어 바로 발행해주었다.
이후 그 분실증명은 기차표를 살 때마다 여권 사본과 함께 제시하여 여권 대용으로 잘 사용할 수 있었다 .
- 지금도 다급할 때 친절히 도와준 하얼빈 공안국 송화강가 파출소 경찰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분실신고를 한 송화강가 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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