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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채씨댁 둘째 도령(蔡二少爷)

채씨댁 둘째 도령의 능력은 특별했다  ----- 가산을 팔아먹는 부문에서.

채씨집 가산은 얼마나 많은가? 또 얼마나 두터운가? - 그걸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어쨋든 그 집안은 천진에서 유명한 부호였고, 소금 생산을 하던 집안이며, 돈 많고 벼슬을 한 집안이었으며, 몇대째 골동품을 좋아했다.


경자사변(19c 말 의화단 사건) 때, 영감님과 마나님이 피난을 갔다가 외지에서 죽었다.

큰 도령은 상해에서 장사를 했으며, 자기 가업이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물건들은 오롯이 둘째 도령에게 남겨졌다.

둘째 도령은 능력도 없고 그저 집안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청년 때부터 얼굴 가득 수염 털보가 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먹고 살았지만 계속 놀고 먹어도 거덜이 나지 않았다

(원문 : 坐吃山空 : 놀고 먹으면 아무리 많은 재산도 거덜 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채씨 집안의 가산은 삼대가 먹어도 될만큼 넉넉하다고 했다.


경고재(敬古斋) 주인 황사장은 매번 이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몰래 웃었다.

그는 오랫동안 채씨네서 나온 물건을 전문적으로 팔아왔던 것이다.

명가의 물건들은 일반인들의 물건보다 잘 팔렸다.

또한 황사장은 예리한 안목으로 둘째 도령 윗대의 정통 골동 취향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모조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져 오는 것마다 확실한 좋은 물건들이었고 손에 넣자마자 팔려 나갔다.

채씨집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갔기 때문에 그는 채씨 집안의 물건 층이 얼마나 깊은줄 알고 있었다.

15년 전 채씨네서 나온 물건은 보석류와 옥제 물건들 그리고 글씨와 그림등 진귀한 골동품들이었다.

10년전에는 도자기와 항아리, 석불, 단단한 목제 가구로 바뀌더니 5년전 부터는 한 보따리 씩의 오래된 의복류로 바뀌었다.

물건은 좋았으나 점점 하천물이 말라 강 바닥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황사장이 채씨 둘째 도령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점점 변해갔다.

15년전에는 그가 둘째 도령의 물건을 살 때, 언제나 자기가 직접 채씨네 집으로 갔다.

10년전에는  둘째 도령이 물건을 팔려고 할 때, 사람을 보내 황사장을 불렀는데, 바쁜 일이 있으면 까맣게 잊기도 했다.

5년전 부터는 이미 둘째 도령이 낡은 옷 보따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자기발로 경고재로 가져왔다.

이 때, 황사장은 눈을 내리 깔고 말했다. "둘째 도령, 미안하지만 보따리 좀 풀어 봐!"

그럴 때는 종업원들 마저 달려들어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황사장은 자로 보따리 안의 의복을 하나하나 재고, 주변에 던지면서 입으로 값을 말했는데, 그것은 마치 헌 옷가게에서 헝겊 자투리를 파는 것이나 같았다.

마지막으로 계산이 끝나면, 나머지는 종업원들의 일, 황사장은 뒤켠으로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러 갔다.

황사장은 제딴에는 채씨 집안의 명맥을 훤히 꿰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요즘 2년, 그 맥이 약간 괴상해졌다.


체씨 둘째 도령이 갑자기 낡은 옷가지들을 팔지 않았고, 오히려,  며칠에 한번씩 사람을 보내 그를 채씨 집으로 오라고 부른 것이다.

그는 바다는 넓고 하늘은 높다는 식의 쓸데 없는 얘기를 한참 늘어놓으며, 몸을 일으켜 궤짝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하나하나 뜯어 볼수록 높은 품질의 뛰어난 골동품들이었다.

강희제 시절의 오채 큰 접시가 아니던가?  바로 심석전(沈石田:명나라의 문인화가)의 세필로 그린 부채이고...

둘째 도령은 물건을 탁자 위에 놓고는 호기를 부렸는데, 마치 십여년전 그 때와 똑 같았다.

황사장이 말했다. "정말 낙타가 아무리 말라 죽었어도 말보다 크다더니, 둘째 도령의 상자 밑은 그야말로 끝이 없습니다그려!

물건들 팔기를 거의 20년 째인데 아직도 물건이 또나오고, 또 나오다니!"

채씨집 둘째 도령이 웃으면서, 담담히 한마디 했다.

"나도 조상님들이 남겨놓은 것들을 깡그리 팔아먹으면 안되죠. 그렇개하면 집안을 망친 자식이 되는거 아닌가요?"

하지만 가격을 말할 때는 심난했다. 물건마다 요구하는 금액이 황사장이 마음 속으로 팔 가격이라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다.

이것은 골동품 업계에서 부르는 값 : 발경가, 즉 다른 사람을 목 매달아 죽게한다는 가격이었다.  

( 발경가 : 脖梗价 : 골동품 업계에서 말하는 난처한 가격. 그 가격에 사면 이익을 남길 수 없는 가격)


채 도령 같은 인간들이 물건을 팔 때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가난뱅이가 파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부자가 파는 것이다.

소위 가난뱅이가 파는 것은 바로 사람이 돈이 급해서 파는 것이니, 급히 손에서 놓아버린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마치 대박을 만나는 것이나 같다.

소위 부자가 파는 것이란 바로 돈이 아쉬울게 없는 사람이 파는 것이라 그는 큰 돈을 받을 수 있어야 파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슨 짓을 해도 방법이 없다.

채씨 둘째 도령은 정말로 가난뱅이가 파는 축에 속했는데, 언제부터 부자가 파는 것으로 바뀌었을까?


하루는 북경 유리창(인사동 같은 골동품 거리) 대야헌(大雅轩) 주인 모사장이 경고재에 왔다.

이 북경과 천진 두집의 골동품상은 평소 자주 왕래가 있었는데, 피차 물건을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 물건을 사기도 하여, 매우 친숙했다.


모사장은 문을 들어오면서, 버로 골동품 진열대에 있는 몇가지 물건들을 보니 매우 눈에 익었다.

가까이 가서 다시 보니, 정교한 자단목 받침대 위에 놓여있는 한첩, 여덟편의 새하얗게 빛나는 옥에 새긴 <금강경>인데, 관각체의 아주 작은 글씨는 극도로 정교했고, 진짜 금으로 덧칠해 있었다.

그는 얼굴을 돌려 황사장에게 물었다. "이 물건 어디서 구했어요?" - 얼굴 표정은 의혹에 가득찼다.

황사장이 말했다. "보름전에 들여온 건데, 왜 그러세요?"

모사장이 다시 캐어물었다. "누가 팔았어요?"

황사장이 눈알을 굴리며  속으로생각했다.  '북경사람들은 상 관습도 모르나?'

골동품 업계에서는 물건을 산 사람 혹은 판 사람 모두 함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웃기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모사장도 문득 자기 물음이 부적절했다는 걸 깨닿고 말을 바꾸었다.

"혹시 당신네 천진 사람 채씨 둘째 도령이 준 것 아니오? 이 물건을 나에게 사갔거든."

황사장은 정신이 아찔해져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 "맞아, 그사람이 판 거요! 얼마에 사간 물건이오?"

모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나는 계속 그를 물건을 사가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어떻게 팔기까지 했을까?  내가 그래서 방금 당신에게 물은 거요."

두사람은 서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해 했다.

모사장은 갑자기 궤짝에 있는 명나라 때 만든 청화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병도 내가 그에게 판 거요! 그가 얼마에 팔았소? 난 거저 주다시피 그에게 주었는데."


모사장은 여전히 자기만 모르고 있었고, 황사장은 이미 속으로 모든 진상을 다 알았다.

그는 모사장에게 차마 모든 것을 다 밝힐 수 없었다.

모사장이 간 후에, 그는 바로 종업원들을 불러서 멀했다.


"너희들, 이건 알고 있어야한다. 채가네 둘째 도령은 더이상 상대하지 마라.

그 개자식이 팔아먹는 물건, 파는 솜싸가 갈 데까지 갔어. 이젠 능구렁이가 다 되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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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冯骥才(펑지차이)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