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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소통

제3장 비지니스유머 <6>도도한 웅변을 받쳐주는 유머 -68 p

비지니스 활동 중에, 누구나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 의견이 어긋나는 수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다 보면 알던 모르던 말이 나오게 되고 심중 팔구는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어 결국 갈등으로 격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소통은 의심할 것 없이 실패한 것인데, 이유는 말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유머의 언어를 쓰는 것은, 다른 것보다 뛰어난 방법이며 자주 허를 찌르는 승리를 가져다 준다.



메이루아오(梅汝璈1904~1973 청화대 출신 동경 전범 국제재판소 심판관) 는 서남 연합대학 교수이며 법학 이론에 정통한 학자이다.

1946년 일본 전쟁범죄 극동 군사법정이 동경에서 열릴 때, 메이루아오는 중국 법관으로서 재판에 참여하라는 어려운 임무를 받았다.

미, 중, 소, 불 등 11개국 법관이 동경에 모였는데 각 법관들의 법정 내 좌석 배치 순서가 모두의 가장 관심을 끄는 문제였다.

재판장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좌석 중앙에 앉아야하고, 재판장 우측의 첫번째 의자는 거의 미국 법관 자리로 굳어졌다.

그럼 재판장 좌측의 첫번째 의자에는 누구를 앉혀야 하나? 이 때문에 법관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법관이 소속한 국가의 재판상의 지위와도 연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제의하기를, 법관 좌석의 순서는 당연히 유엔의 안전보장 이사회의 관례에 따라 미, 영, 소, 중, 불로 나가는 순서로 안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법관은 바로 지적하기를 마땅히 참전시기의 선후에 따라 정해야 한다고 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국가 명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메이루아오는 미소를 지으며 한참 동안 경청을 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개인의 자리 순서에 대해서라면 저는 전혀 개의치 않지만, 우리들 각자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각자 국가를 대표하여 왔으니 각국정부의 훈령을 받아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이 말이 나오자, 법정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럈다.

각국정부의 훈령을 받으려면 공문이 왔다 갔다 해야하고 극동 국제법정 개정 시기가 한 두번 연기되어어야 할 것이 뻔했다.   

바라보던 .각국 법관들이 아연실색하고있는 가운데, 메이루아오는 계속 말했다.

"만약 모든 분들이 방금 제가 말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법정의 좌석 배치는 항복문서에 서명한 순서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중국은 일본의 침략이 제일 심했고, 항일 기간이 제일 길었으며, 제일 큰 희생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재판이 일본 전범재판인 만큼 중국은 두번째 자리에 앉는 것이 맞습니다.

둘째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없었다면 당연히 오늘의 재판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더이상 싸우지 말고  법관 의자 배열을 미국, 중국, 영국, 소련 ... 이런 순서로 합시다.


속된 말로 "약한 나라는 외교 할 것도 없다"는 말이 있드시, 메이루아오의 제안을 듣자 몇몇 서방국가 대표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잘 알고있는 메이루아오는 일부러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예 체중 순으로 정합시다.

체중이 무거운 사람은 가운데 앉고, 체중이 가벼운 사람은 가생이에 앉기로..

그 결과 제가 만약 말석 자리에 않게 되더라도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본국에서 제를 교체시킬 수도 있지만, 그건 여러분도 당연히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 그들이 제가 가장자리에 앉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저보다 더 뚱뚱한 사람으로 교체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메이루아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당에 폭소가 터졌다.

웃음 소리가 가라앉고나서 다시 한번 조정 작업이 있었고 재판장은 어쩔 수 없이 메이루아오가 처음 건의한 좌석배치를 받아들여 중국을 대표한 그에게 재판장 우측 첫째 자리를 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