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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색(國色)

17.결론은 교육(算账教育) - 137p

홍씨펑이 막 일어나려 할 때, 밖에서 누가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 사람이 바로 위씨 입니다. 전임 진양시 부시장이었죠." 감옥장이 소개의 말을 했다.

"위씨의 현재 직책은 감옥 교도 경비대를 도와 등기 정리 업무를 하는데 외부에 재소자들의 송금을 하고, 편지를 부치고 하능 일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등기 송금만해도 합계 89만여원을 했고, 소포 처리 9000건 하는 동안 한번도 착오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390여건의 주소가 불명확한 건도 모두 수취인을 찾아내어 정리 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감형을 받게 된 겁니다."

 

"당신은 현재 지내기가 어떻소?  역시 만족하오?" 홍씨펑이 물었다.

"당연히 좋습니다. 매일 노동하는 시간 외에는 독서를 하거나 서예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위씨가 대답했다.

"감옥에서 당신들같은 전임 성 직접 관리 지도자 간부들을 특별히 봐주는거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위씨는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자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한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사법부의 <죄수 개조행위 규범>을 업격히 지키고 있고 수인들은 모두 기상 신호에 따라 일어나며, 취침 신호가 나야 휴식 합니다.

하루의 생활, 활동, 학습들 일상 행위가 모두 분명 하고 엄격합니다.

또한 가족 면회는 매월 한차례씩만 있고 저희도 예외 없습니다."

 

"당신 여기에 들어온 후 제일 많이 생각나는게 뭐였소?

경제 문제, 가족의 정? 아니면 자유가 없는 것?

홍씨펑은 그의 소감을 듣고 싶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제일 후회하는 것은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명예로 말하자면 저는 현재 지위를 잃고 명예는 땅에 떨어졌으며, 자유로 말하자면, 온종일 감방에 앉아 있어야하니 기본적인 자유마저 잃었습니다.

거기다 마누라와 아이까지 생각하면 나때문에 고생이 심한걸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도 없으며 그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위씨는 겉으로는 평온하게 말을 했으니 마음 속으로는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가 구금된 그날부터 제 어머니께서 매일 밤 마당에 나가 무릎을 꿇고 하늘에 아들을 돌봐 주어 빨리 편안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비셨습니다.

그때가 마침 겨울이라 찬 바람이 뼈속까지 스며 들었고, 밤에는 영하 십몇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청장년이라도 최대 십여분 꿇어 앉는 것도 참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연로하시고 병치레가 많으신 제 어머니께서 그렇게 밤마다 꿇어 앉기를 삼개월 반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종아리가 팅팅 부어서 허벅다리만큼 커졌으나 아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노인네가 꿇어앉아 있을때 갑자기 뇌일혈이 와서 눈물을 흘리시며 돌아 가신 겁니다.

그로 부터 오래지 않아 제 부친께서도 이일이 한이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이 되어서 부친 모친의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은 못할만정 오히려 노인들의 수명을 줄여 놓은 겁니다.

송구스럽기가 골수에 사무치며 비통하기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철이 들고 나서 항상 어머니께서 향을 사르며 부처님께 절 하시며 끈기있고 정성스럽게 경을 외우사는 것을 자주 봐 왔습니다.

아들 딸들이 일생동안 평안하기를 부처님께 기도 하신거죠!

평생 있는 힘을 다하여 아들 딸이 평안하기를 얼마나 많이 하시고, 머리를 조아리기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스스로 모두 감수하시면서 저의 평안을 부처님께 빌면 다 해결되지 않겠나 생각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