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9일 아침, 아침 햇살이 밝게 비치고,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
오늘은 훼이라이쓰 가는 날.
우리는 영어에 물들어 있어 '훼이라이쓰' 라고 하면 무슨 카레 라이스나 오무라이스 같은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훼이라이쓰는 매리설산(梅里雪山)에 있는 비래사(飞来寺 : 직역하자면 날아서 와야하는 절)의 중국 발음일 뿐이다.
박사장에게 매리설산 트래킹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훼이라이쓰로 가야 한다고 했다.
훼이라이쓰가 뭐냐고 반문했더니 비래사라고 대답했을 때 나에게 떠올랐던 생각도 바로 그거였다.
나는 이번 여정의 다른 트래킹 코스는 미리 연구를 해서 교통편이나 소요시간, 꼭 필요한 정보를 챙기고 있었는데 매리설산에 대해서는 별로 준비가 없었다.
자희랑 객잔에 가서 잘테니, 거기 주인에게 물어보면 매리설산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행 코스나 일정은 자기가 미리 알고 가야지 절대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묻는 범위 내에서만 알려줄 뿐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해주지는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현지에 살면서도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일행중 휴대폰 분실, 샹그릴라 인민 병원 방문, 이런 어수선한 사건들로 차분하게 물어볼 정신도 없었다.
나는 비래사까지만 가면 더이상 갈 곳이 없고 거기서 하루 자면서 매리설산의 일몰과 일출을 보는 것이 전부 인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에 돌아와 E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메콩강 관련 프로에 비래사를 지나 설산 바로 밑 마을까지 가서 서너시간 빙하 트래킹을 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우리는 애써 비래사까지 가서 펑펑 시간이 남아 놀면서도 추가로 서너시간 밖에 안걸리는 빙하 트레킹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도 한참 뒤 서울에 와서 TV를 보다가 안 것이다.
- 누구를 탓하랴! 전부 준비에 철저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지.
객잔에서 ,나는 우리와 너무 다른 문화의 장족 기사들에 넌덜머리가 나서, 박사장에게 믿을 만한 빵차 기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였고 아침 여덟시에 기사가 왔다.
그는 키가 크고 깡 마른 체격의 특이한 인상을 주는 장족 기사였다.
복만해도 빨간 셔츠에 몸에 착 달라 붙는 청바지를 입고 카우보이식 모자를 썼을 뿐 아니라 치렁치렁한 머리 꽁지를 뒤로 매고 있었다.
서부 영화에서 서양인의 복장을 한 인디언이 느닷없이 내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았으며, 동티벳 오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훼리라이쓰 까지 바오처 비용은 일박 이일 왕복에 숙박비 포함 1300원을 주기로 하고 식사는 우리와 같이 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사근사근한 성격에 붙임성이 있었고, 어찌나 신심이 깊은지 자동차에 부처님을 모신것은 물론이고 운전을 하고 가면서도 계속 소리내어 불경을 암송했다.
비래사 가는 길은 진사강을 옆으로 끼고 호도협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가 왼쪽, 라싸 가는 길로 갈라져 가는데 도로는 넓고 잘 포장이 되어있어 아무 불편이 없었다.
이윽고 4270m 표지석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여 우리는 차를 세우고 사진응 찍었는데 운령 선맥 안내판이 있었고 설산이 바로 앞에 있어 풍경이 기가 막혔다.
언덕을 차로 오르면서 보니 도로를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향하는 일행도 한팀 있었고, 중국 젊은이들 한떼가 자전거를 타고 고산지대를 가는 것도 보았다.
다시 출발하여, 멋진 설산을 보면서 아래로 내달려 커다란 협곡을 지나 두어시간 정도 더 가니 갑자기 제법 큰 도시가 나타났는데 바로 더친(德钦)현이었다.
거기서 10km 더 가니 눈 앞에 거대한 메리 설산이 보이는 높은 언덕에 가지러니 백탑이 도열해 있는 작고 아름다운 비래사가 나타났다.
우리는 비래사 바로 앞 매리설산이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전망 좋은 여관 3층에 방을 얻었다.
박사장 말로는 매리설산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은 200원, 반대편을 향한 방은 100원일거라고 했는데 실제는 전망 좋은 3층 방이 100원밖에 안했다.
우리는 방에 짐을 풀고 카메라를 메고 설산 구경을 갔다.
우리가 온 길이 계속 이어지는 산허리에 난 넓은 도로를 따라 걸었는데 내내 멋진 매리설산이 마주 보여 천국 같은 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얼마 걷다가 곧 돌아갔지만 나는 딱이 할일도 없고, 풍광이 너무 좋아 혼자 세시간 정도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숙소로 되돌아왔다.
숙소에 돌아 왔어도 아직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가지런히 서있는 하얀 석탑 때문에 비래사는 눈부시게 빛났고, 그너머로 멀리 구름에 쌓인 매리설산이 나를 미소 지으며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 어떤 호텔도 여기 여관보다 아름다운 전망은 없을 것이다.
이런 곳이 표준방 하나에 100원밖에 안하다니... 거기다 음식도 싸고 맛있다.
여긴 나같이 가난한 여행자가 지내기에 너무 행복한 곳이다.
하지만 빔 12시, 어제 병원에 갔던 친구에게 또 바라지 않는 복통이 찾아왔다.
우리는 부랴부랴 기사가 자는 곳을 찾아 그를 깨워서 더친 시내에 들어가 물어물어 더친현 인민병원을 찾아갔다.
기사는 자다가 깨어 나왔지만 귀찮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병원을 묻기도 하면서 성실히 우리를 더친 인민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이곳 더친도 현급 도시라 6층 건물의 커다란 인민병원이 있었고, 응급실에 가서 꾀죄죄한 가은을 입은 의사에게 대충 음급 처치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친구는 통증이 다 나았다지만, 샹그릴라 병원보다 훨씬 외진 이곳 의료 수준으로는 응급 처치 정도는 모르지만 제대로된 치료는 안 될 것 같아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 내일 아침 샹그릴라로 돌아가니까, 그래도 안심이 된다. - 거긴 비행장이 있으니까.
석양 무렵의 매리설산
신심 깊고 착한 맘보 스타일 장족 빵차 기사
광동성에서 부터 자전거로 오고 있다는 중국 젊은이들
4292m 표지석
높은데서 보면 약간 더 높은데는 별 것 아니다. - 설산이 아담해 보인다.
밑에서 보면 엄청 높은 산일테지만 이 산은 푸른 하늘, 구름과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알프스를 못 가봤는데, 여기는 스위스 알프스라고 속여도 될것 같다.
설산 - 더친 가는 길에 있는 이름 모를 설산.
더친 시내
매리설산
비래사에서 보이는 설산 풍경. 산정에서 아랫마을 까지 다 보인다.
매리설산 아랫마을.
비래사와 바로 옆 우리가 머물렀던 빈관
빈관 식당. - 세계 어느 일류호텔 식당도 이보다 멋진 경치는 없을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생활이 바로 종교인것 같다.
이길을 한시간정도 내려갔다 왔다. - 계속 설산을 바라보며 걸으니 매리설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타르초가 걸린 길.
비래사의 백탑
석양 무렵.
황혼녁의 비래사.
석양은 아름다우나 어둠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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