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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색(國色)

16. 마지막 방어선(最后防线) - 127p

샤오인과 사오옌은 같이 7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보통 가까운게 아니었다.

하지만, 성 고급법원 상무 부원장 위산수이와 그들 관계 역시 상당히 특별한 관계였다.

그들이 대학 본과에 다닐때 위산수이는 법율과 주임교수였다. (당시에는 아직 법학대학이 없어서 학교 직속 법율과 였다)

그들이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되어 그는 부교장이 되었다.

그들 두사람은 같이 응시 하여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는 그는 벌써 교장이 되어 있었다.

대학원 졸업후 샤오인은 성 기위로 갔고, 샤오옌은 시 중급법원으로 되돌아 갔다.

 

때 마침, 당시 전국 각지 법원에서 법관 인력의 전문화를 추진하고 있었던 때였다.

주요 목표는 법관 인력의 업무를 비전문가가 수행하고 있는 문제를 개선코자 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영서성 고급법원의 원장 부원장 삼인은 모두 외부계통에서 임명된 사람들로 그 이전에는 법율 업무를 전혀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최고 인민법원의 요청에 의거, 성 위원회 조직부에서는 영서대학교장 위산수이를 성 고급법원 상무 부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직급의 정청 급이었다.

그런데, 위산수이는 교장 시절에 이미 중점 고들교육기관장의 예비간부였기 때문에 성 고급법원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는 자연히 지방의 부성급 예비 간부가 되었다.

 

최근 2년동안, 소문이 끊이지 않고 전해져 왔다.

성고급법원 원장 양다오쩐(阳道真)은 원래 자기의 전문분야가 있으니, 아마 부성장이나 성 인민대회 상무 부주석으로 가게 될거고,원장 자리는 곧바로 위산수이에게 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위산수이가 사람들 입에 점점 뜨겁게 오르 내리던 바로 그 시점에 갑자기 그는 낙마하게 되는 것으로 진상이 드러났다.

 

샤오인과 샤오옌은 모두 자기 부서의 지도자에게 적극적으로 그들과 위산수이의 관계를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위산수이가 그들의 담임선생도 아니고 직속 상관도 아이었고 기껏 몇번 만난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별로 씨가 먹히지 않았다.

그렇기는해도, 샤오인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성 기위의 사건 배정을 담당상무위원은 그후 그에게 외곽의 조사나 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직접 위산수이와 대면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진양시 중급 법원의 지도자는 결코 샤오옌이 당연히 이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치 않았고, 그를 위산수이 수뢰사건의 주심법관으로 임명했다.

 

말로 하자면 성 기위의 위세는 대단했고, 그만큼 외부에서 일을 하기도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현행 사법부문이 독립되어있고, 법원이 결코 당 위원회나 정부의 하부기관이 아니더보니  기위에서 작은 일이라도 알아보려면 신경이 적지않게 쓰였다.

예를 들어 사람을 보내  취재보도를 하거나, 녹화 촬연을 하려해도 법원은 제멋대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막기 일쑤였다.

비록 진양시 중급 인민법원 일지라도 기위의 요청에 따르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그래서 마주임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 샤온인에게 농담조로 말하곤 했다.

"진양중급법원 놈들은 우리 기위를 우습게 보는 것같아.  그 친구들이 몇년동안 일 없ㅅ이 잠잠하도니 목에 힘을 너무 주는구먼.

만약 기위에서 걔네들 몇개 꼬투리만 잡히면 원장이든 부원장이든 모두 본때를 보여주는건데... 우리 기위를 감히 우습게 보다니! "

 

요즘 몇년간 성 기위는 매년 몇몇 성 직할 간부들과 성 직속 기관 각 부문, 소속 사업부서의 정 뷰직들을  조사해왔고, 진양시 몇몇 지도자 구룹의 부직들을 조사해 왔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성 기위가 검찰원에 넘기게 되고, 최종적으로 대부분 중급 법원 심리로 넘어갰다.

성 기위의 사건 담당 부서와 선전 교육부사에서는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필요 인원을 법정에 파견하고자 했다.

하지만 쌍방은 여러가지 문제가 맞물려 있었다.

 

처음 몇차례는 사건 심리를 모두 마칠때 까지도 성 기위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성 고급법원과 시 기위가 서로 대면하여 합의 했는데도 중급법원은 매우 못마땅해 했다.

 법정 심리 관람인 구를 종종 제한했으며, 신문기자, 특히 촬영기자는 제함하는 일이 더 많았다.

사청각 교육센터가 파견한 인력이 꽤 여러차례 법정 인구를 배회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기가 꺾여 되돌아 온 예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성 기위에서 중급법원 법정에 몇가지 수를 썼는데 매우 매끄럽지 않은 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