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엔은 문밖으로 나왔는데 신경이 마비되었는지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되는 것은 오직 왼쪽 광대뼈가 불에 덴듯 열이 난다는 것 뿐이었다.
머리 속으로 종잡을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마구 스쳐가는 것이 마치 북풍 불때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송이 같았다.
그는 발걸음 가는대로 걸었는데 밤새 잠들지 않는 수 많은 가로등에 비친 그의 그림자들이 너울너울 서로 뒤로 넘겨 주는 것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또 하나의 다른 자기가 옆에 있는듯 말했다.
"끝났어! 끝났다고!" 순간 흩어졌던 생각들이 즉각 한데 모아지는 듯 집중되며 슬픔이 몰려 들었다.
왼쪽 광대뼈가 뜨끔뜨끔 아파와, 만져보니 축축하고 미끈미끈한 것이 만져졌다.
그는 그것이 피라고 생각했고 겁이 덜컥 났지만 이내 마음이 진정 되며 다리 힘이 풀렸다.
등불아래 다가가 만져 보았던 손가락을 보니 아무 흔적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고 배가 무척 고팠다.
홍지엔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주머니에 넣으며, 소리치며 물건을 팔러다니는 행상을 기다려 빵을 사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자기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화를 내는 법이지만,이번 화는 종이를 홀랑 태우는 것 같이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갈데가 없었고,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는 정말 루씨 부인을 만난다해도 두렵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손찌검을 하기는 했지만 로우쟈의 보복이 이처럼 지독했던 만큼 서로 비긴것이라 생각했다.
시계를 보았는데 벌써 열시가 지니있었다.
자기가 나온 시간이 몇시였는지 분명치 않았지만 아마 그녀는 벌써 갔을 것이다.
집 앞 골목에 고모네 차가 보이지 않아서 우선 안심이 되었다.
그가 문을 들어가니 집주인 마누라가 인기척을 듣고 얼른 쫏아나오면서 말했다.
""황선생이군요! 새색씨가 어디 아픈가봐요. 리씨 아줌마를 데리고 루씨 댁으로 갔는데 오늘 안 올거예요.
여기 방 열쇠가 있는데 황선생 오면 주라고 했어요. 그리고 내일 아침은 우리 집에 와서 먹어요. 리씨 아줌마가 부탁하고 갔어요."
홍지엔은 착 가라 앉은 마음이 다시 전환 되지도 않았고 그저 기계적으로 열쇠를 받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집주인 마누라는 무언가 더 할말이 있는듯 했지만 그는 서둘러 도망치듯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문을 열고 불을 켜니 깨진 컵과 동강난 빗이 그대로 그자리에 나딩굴고 있었고 쌓아 올려진 상자가 한칸 줄어 있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서있었는데 심신이 느리고 둔해져서 급하지 않았으며 화도 나지 않았다.
로우쟈는 비록 가고 없지만 이 방에는 그녀의 화난 얼굴, 그녀의 울음소리, 그녀의 말하는 소리 이런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탁자위에 있는 메모쪽지를 보고 가까이 가서 그것을 보았더니 루씨 마나님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그것을 짝짝 찢으며 거칠게 말했다.
"그래 좋아, 당신은 뭐든 자유지만, 팽개쳐진 나는 바로 떠나야 해! ! 씨발, 꺼져. 날 위해 좀 꺼져 줘! 당신들 전부 꺼져 버려!"
이렇게 간단히 화를 냈는데도 남아 있던 모든 힘이 다 소모되었다.
그는 힘이 죽 빠지며 바보같이 펑펑울고 싶어졌는데, 잠시도 이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옷을 입은채 침대위에 쓰러졌다.
방이 빙빙 도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절대, 내가 병이 난 것은 아니야!
내일은 운송회사 사장을 만나러 가서 여비를 알아봐야 겠어. 음력 설때는 충칭(중경)에 있게 되겠지.
마음 속으로 다시 희망이 살아났다.
그것은 마치 생나무에 불은 안붙지만 연기는 나기 시작하는 것과 같았고, 마치 모든것은 다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땅과 어슴푸레한 하늘이 한데 합해져 분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단단히 싸매서 한점 불빛도 사라진 캄캄한 밤 같았고, 그는 잠에 빠졌다.
처음에는 잠이 설 들어서 배 고픈 것 때문에 쏫아지는 잠을 핀셋으로 뽑아내는 듯 했으나 그의 잠재의식이 그것을 막아냈다.
홍지엔은 이 핀셋을 느슨하게하고 둔하게 해서 잠이 깊이 들었고 더는 이런 핀셋에 방해받지 않게 되었다.
꿈도 없고, 아무런 감각도 없으며 인생의 가장 원시적인 잠. 그것은 동시에 죽음의 견본품 이기도 했다.
그때 조상때부터 물려 내려온 낡아빠지 괘종시계가 한가하고,편안하게 종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반나절 동안의 시간을 쌓아 놓았다가 밤이 깊어지고 인적이 드믈어 고요해 질 때를 기다려 하나 하나 수를 세어가며 풀어 놓는 것 같았다.
"뎅, 뎅, 뎅, 뎅, 뎅, 뎅" 여섯번 울렸다.
이시계로 여섯시는 다섯시 이전이고 그 시간은 홍지엔이 집으로 오는 길위에 있을 때다.
로우쟈에게 잘해 줘야지 마음 먹고, 그녀에게 다시는 어제같은 일은 부부사이에 안 좋으니 저지르지 말라고 할 것이다.
또 그 시간은 로우쟈가 집에서 홍지엔이 저녁 먹으러 돌아오기를 기다릴 때다.
그가 고모와 화해해서 그녀의 공장에서 일도 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 뒤늦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는 무의식중에 인생을 풍자하고 감상에 젖게 했다.
세상 어떤 말 보다 깊게, 또 어떤 눈믈과 웃음보다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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