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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위성

93p (전종서의 위성)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장실이 너무 좁다보니 두어 걸음을 채 가지 못하고 거만한 뒷모습을 저우 사장에게 더는 보여줄 수 없었다.

게다가 홧김에 주위를 잘 살피지 않은 탓에 구둣발로 문 밖에 있던 있던 급사의 발을 밟았고 홍지엔은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했다.

급사는 일어나면서 얼굴 가득 쓴 웃음을 지으며 마지 못해 말했다.

"괜 찮아요."

 

저우 사장은 고개를 저으면서 여자들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다.

여자들은 그저 집에서 신경질이나 부리고 있으면서 남편이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모르고 산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경영에 고심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말할까 궁리해야 했다.

그는 원래 생각에는 홍지엔의 여행경비에 대해 그의 부친과 의논하고, 그의 부친이 하자는대로 따를 생각이었으나 그는 말투를 갑자기 마꾸면서 말했다.

"자네 귀국후 자네 춘부장과 모친을 별로 가까이 모시고 지내지 않았는데 지금 자네가 멀리 떠나게 되었으니 당연히 집에 가서 한달 반만이라도 두 노인네를 돌보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나와 집사람은 자네가 누추한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있기를 바라고 또 샤오청 역시 자네가 간다면 섭섭해 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자네를 억지로 잠아놓을 수도 없네.

자네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하고 가까운 친척들과 허물없이 회포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

 

여기까지 말하고 당연히 하하하 웃어야 되는 대목이라 생각하고 그는 홍지엔의 손, 가슴, 혹은 등어리까지 눈에 보이는대로 그의 신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두드릴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두드렸다.

"어쨋든 자네는 아무때나 우리집에 놀러 와야 맞는거야. 암 맞고 말고.

만약 자네가 한참동안 안온다면 그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이 일장 연설이 자기 생각에 너무 완곡하게 딱 들어 맞는 말이라고 자신했고 마지막 부분은 정말 천의무봉(天衣無縫) 처럼 하나도 흠잡을데 없이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기교가 뛰어난 문서과 왕주임이 말하는 소위 "물길에 따라 배를 민다 (顺水推舟 : 순풍에 돛을 단다는 뜻)와 같은 기교인데, 왕주임도 편지 초고를 쓸때 많이 염려하긴 하지만 그저 이런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아쉬운게 있다면 이 멋진 말을 꺼낼때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을 뿐만아니라 자신이 먼저 당황해서 태도가 안절부절 못했고 홍지엔 이녀석은 마치 귀싸대기라도 한대 맞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그래도 좋게좋게 그만두라는 말을 했는데도 체면을 구겼다는 듯이 자신에게 대들었던 점이다.

정말 호의를 걷어차는 놈이고 마누라가 그를 혐오하는 것도 하나도 이살할게 없었다.

 

제일 어렵게 단어를 골라가면서 만든 말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답답하게 남아서 기침이 안나와서 목구멍 속에 남아있는 끈끈한 가래처럼 근질근질하여 긁어버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저우 사장은 괜히 헛기침을 하여 목구멍을 시원하게 했다.

홍지엔 이녀석은 자기가 괜히 헛돈을 들여 공부시키고 키워 놓았지만 보기에도 별로 장래성이 없어보였다.

 

방금 전, 마누라에게 들은 말인데 최근에 사람을 시켜 그의 명운을 점쳐 보았더니 그의 운세가 너무 세서 혼인은 아무하고도 못할 거라면서 숙영이가 시집도 못가고 죽은 것도 결국은 그의 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 하지 않던가!

거기다 지금 그는 도화살이 끼어서 무슨 사고를 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 그를 집에 보내서 황영감님의 엄한 단속을 받게 하는게 좋을 거라면서 그래야 자기도 윗사람으로서 책임을 벗을 수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느닷없이 그를 쫒아 보낸다는 것은 어쨋든 마음 안내키는 일이기는 했지만 - 그렇다고 마누라의 병적인 성깔도 견뎌낼 도리가 없지 않는가!

저우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일은 한쪽에 내벼려 두기로 하고 탁자 위에 있는 편지, 문서들을 집어들며 벨을 눌렀다.

 

황홍지엔은 얼굴에 남은 창파함과 분노를 동료들이 볼까봐 단숨에 은행을 뛰어 나갔다.

마음속으로 저우 마나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오늘 일은 틀림없이 그녀가 충동질하여 꾸민 일일테고, 또 여자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저우 사장은 얼마나 비루한 졸장부인가!

더 웃기는 일은 지금까지도 무엇때문에 저우 마나님이 갑자기 찻잔 속의 평지 풍파를 일으켰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에게 그렇게 밉보일 일은 없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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