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탕아가씨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 속으로 그녀가 몇자라도 적어 보냈으면 했다.
어쩌면 그녀거 단호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빌어 애정을 더욱 다양하고 길게 끌고가려고 하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서둘러 종이 백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지 자신이 보냈던 편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풀이죽어 의기소침해졌고, 탕아가씨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원래 종이백에 싸서 운전기사에게 주어 보냈다.
탕아가씨가 종이백에 있는 작은 상자를 보고 궁금해서 뜯어보니 바로 자신이 홍지엔 먹으라고 보냈던 금종이로 싼 쵸콜렛상자였다.
그녀는 그 상자안에 자기가 보낸 편지가 들었으리라 짐작하고 열어보고 싶지 않았는데 괜스레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야 자기와 그와의 관계가 완전 파탄나지 않을 거고 ,일단 열어보면 바로 확실하게 그와 결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 있던 시간이 얼마나 오래 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 기껏해야 몇초간 - 그녀는 상자 뚜껑을 열었는데 자기가 그에게 보낸 일곱 통의 편지가 보였다.
편지 봉투는 모두 짲어져 있었지만 셀로판지를 덧대어 수선되어 있었다,
추측컨대 그가 편지를 얼른 보고 싶어 급하게 편지봉투를 찢고, 손으로 마련하게 다시 보완해 놓은 것 같았다.
탕아가씨는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 상자 아래에서 종이 한장을 발견했는데 거가에는 그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써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것은 그와 처음 만나서 식사를 하던날 자기가 그의 수첩 뒷면 공난에 써준 것을 그가 가위로 오려내어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정신이 멍했졌는데 갑자기 어제 저녁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결코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닐 것이다.
한달 전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저우씨 댁 사람은 그녀를 쑤 아가씨로 오해했었고, 어제도 두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상대방은 한번 듣고는 바로 홍지엔을 찾는 전화라고 알고 조금도 이름을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피차 서로 헤어지게된 이 판국에 이런 추측을 해보었자 도대체 무엇에 쓴단 말인가?
황홍지엔을 잊어버리면 되는 것일 뿐인데.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를 잊을 수 없었는데, 비유하자면 잇발을 펜치로 뽑고나면 치강이 텅 비면서 통증이 오는 것과 같고, 다른 비유를 들자면 화분애 작은 나무를 심었다가 그것을 뿌리채 뽑아버리게 되면 화분도 금이 가 깨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탕아가씨는 성격상 오만하여, 통증을 참느니 아예 병이 나는 체질이었다.
며칠 앓아 누웠는데 쑤 아가씨가 매일같이 와서 그녀와 같이 있어 주었을 뿐만아니라, 그녀가 차오웬랑(조원랑 曹元朗)과 벌써 약혼했다고 하면서 신바람이 니서 비밀스럽게 그가 구혼할때의 일을 말해 주었다.
들어보니 차오웬랑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앞으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데, 쑤 아가씨를 한번 보게되자 십오년의 인생관이 마치 대지진때 일본 가옥들 처럼 붕괴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말하기를 그는 나를 원망하고, 무서워해서, 나를 피하고 싶었다는거야, 하지만 -"
쑤 아가씨는 웃으며 몸을 비틀면서 그말을 끝까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구혼은 이렇게 했다고 한다.
차오웬랑을 만났는데 너무 측은한 표정을 지으면서 갑자기 비단천으로 만든 조그만 상자를 쑤 아가씨의 손에 쥐여주고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가 버렸다고 했다.
쑤 아가씨가 열어보니 상자안에는 금목걸이가 하나 둘둘 말려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커다란 비취가 달려 있었고, 그아래는 편지 한장이 깔려 있었다고 했다.
탕아가씨가 편지에 뭐라고 쓰여있더냐고 물었더니 쑤 아가씨가 말했다.
"그가 말하기를 처음엔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했대,하지만 이제는 -
야, 너 꼬맹아, 장난꾸러기 같으니, 나 너한테 안 이르켜 줄꺼야."
탕아가씨는 병이 낫자 언니 형부의 요청으로 북경에 가서 여름을 보냈다.
양력 팔월 말, 그녀는 상해로 돌아왔는데 쑤 아가씨가 자기 결혼식때 들러리로 서 달라고 부탁했다.
남자 들러리는 바로 차오웬랑이 유학 갔을때 친구가 섰다.
그는 탕아가씨를 보고 매우 알랑거렸지만 그녀는 귀찮아 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영국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차오웬랑을 향해 말했다.
"Dash it! That girl is forget - me - not and touch - me - not in one, a red rose which has somehow terned imto the blue flower."
(정말이야, 그녀는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와 날 만지지 말라는 붉은 장미가 합해져서 짙은 남색의 꽃으로 피어난 것 같아 - 짙은 남색의 꽃은 당시 낭만주의자들의 상징이었다고 함))
차오웬랑은 그를 천하에 둘도 없는 오묘한 말이라고 칭찬하였고, 그는 이 말이 탕아가씨의 귀에 들어 갔다고 여겼다.
하지만 탕아가씨는 결혼식이 끝난후 나흘 만에 그녀의 부친을 따라 홍콩에 갔다가 거기서 충칭(중경)으로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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