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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위성

86p (전종서의 위성)

"어떻게 그걸"

홍지엔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신 내가 사촌언니에게 보낸 편지를 본 거예요?"

 

"사촌언니는 내게 그것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귀국선에서 부터 그날 밤 있었던 일까지 내게 모두 알려주었어요."

탕아가씨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홍지엔은 감히 그녀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언니가 어떻게 말했죠?"

홍지엔은 감히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는 듯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는 쑤원완이 틀림 없이 과장하고 보태어 자기가 그녀를 유혹했고, 키스까지 했다고 말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하여 사실대로 반박할 말을 준비했다.

"당신이 저지른 일이니 모른다고는 못하겠죠?"

 

"탕아가씨, 내가 설명 할께요."

"당신이 변명할 방법이 있다면 먼저 우리 사촌언니에게 가서 말해 보세요."

황홍지엔은 평소에는 그녀의 총명함을 사랑 했지만 지금은 그녀가 말 주변도 없고, 조목조목 따지고 사람을 다그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사촌언니가 황선생님에 대하여 몇가지 알려 주었는데 정확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어요.

황선생님은 지금 저우씨 댁에 살고 있는데 들어보니 보통 친척이 아니라 장인 댁이라면서요?

황선생님 전에 결혼 했었어요?"

 

홍지엔은 이말에 끼어들어 변명을 해야 했으나 탕아가씨는 법율가의 딸 답게 법정에서의 증인을 심문하는 요령을 잘 안다는 듯 그가 변명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변명은 필요 없어요. 장인 댁이요, 아니요? 그것만 말하세요."

또 당신이 몇년동안 외국에 있을때 연애를 했었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귀국선에서 당신은 바오 아가씨라는 사람에게 홀딱 빠져서 한사도 한발자국 이상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녔다는데 맞나요?"

홍지엔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못했다.

게다가 당신은 바오 아가씨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사촌언니를 쫏아 다니다가, 지금에 이르기까지...내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네요.

또, 내가 듣기로는 당신이 구라파에서 공부를 했다면서 미국 학위를 땄다고 하는데..."

 

홍지엔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원망스럽게 말했다.

"내가 언제 당신에게 내가 학위가 있느니 없느니 허풍을 친적이 있나요?

그건 시끄러운 장난이었을 뿐이오"

 

"황선생님처럼 총명한 사람은 그럴듯한 무대만 있으면 연극을 해대는지 몰라도, 우리같이 멍청한 사람들은 당신의 장난을 곧이 곧대로 믿는단 말입니다"

탕아가씨는 홍지엔의 목구멍이 경직되는 소리를 듣자 일면 마음이 약해졌으나, 이왕 하는 김에 그를 호되게 혼내주고 싶었다.

"황선생님은 과거가 너무 화려해요!

내가 사랑할 사람은 내가 그의 전 생명을 점령해야 하니까 나를 만나기 이전에라도 과거가 없어야하고 텅빈 공백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홍지엔은 고개를 숙인채 아무 소리도 못했다.

"황선생님의 앞날이 창창하기 바래요."

 

홍지엔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마비 되었다.

그는 탕아가씨가 무어라고 말하는 중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무슨 뜻인지 도무지 뜻인지 의미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한겹 기름종이가 덮여 있는데 그녀의 말이 빗줄기 같이 쏫아져 내리지만 젖어 들어오지는 않고 다만 기름종이 위로 무겁게 비가 때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마지막 말 한마디를 들었는데 절망적으로 확실히 알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번쩍 드는데 두눈이 눈물로, 마치 큰 아이가 욕과 매질을 당하고 눈물을 삼킨 얼굴 같았다.

탕아가씨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사기꾼이예요.

더이상 변명할 필요도 없어요.

앞으로는 절대 다시 와서 귀찮게 하지 않을께요."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바로 갔다.

 

탕아가씨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당신 왜 변명을 하지 않나요? 나는 당신을 믿고 싶은데."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시 보기로 해요."

그녀는 홍지엔을 배웅하면서 그가 무슨 말이든지 해주기 바랬다.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까지 따라 나가며 비가 조금 약해질 때 까지라도 그를 잡아 놓았다가 보내고 싶었다.

홍지엔은 우비를 걸치고 있었는데 탕아가씨를 보았으나 주눅이 들어 감히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지 못했다.

탕아가씨가 그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는데 눈물이 나서 눈을 내리 깔고 차마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계적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다시 만나요."

어떤때 "다시 는 자리를 같이 할 수 없겠지요?" 한다면 사람을 쫏아내는 것이고, 어떤때 "다시 만나요."하면 사람을 만류하는 것이 된다.

탕아가씨는 황홍지엔을 만류하지 못하고 한마디 덧 붙혔다.

"당신 멀리 가는길 부디 잘 가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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