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결혼 반지를 낀다는 것은 올가미에 걸렸다는 상징과 같은 것인데 단추를 빼안고 그냥 내버려 두지않는 것이 그 조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은 정신을 똑똑이 차리고 있어야한다!
다행히 모레는 상해에 도착할테니 그때부터는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기회를 만들지 않는다면 위험이 감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하루 이틀 사이 그와 쑤 아가씨가 함께 있게 될텐데 신고있는 양말이 구멍날 것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의 단추가 떨어질까 겁이 나는 것이다.
그는 쑤 아가씨의 헌신을 아무때나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매번 단추를 꿰매 주거나, 구멍을 기워주거나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양심상 그녀에게 구혼할 책임이 증가하는 것이다.
중 일(中 日)관계는 날마다 악화 되었고 선상 무선 통신 뉴스는 그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8월 9일 오후, 배는 상해에 도착했다.
다행히 전쟁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다.
쑤 아가씨는 주소를 황홍지엔에게 주고 그에게 놀러오라고 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그러겠노라 하고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나서, 꼭 상해에 가서 그녀를 찾겠노라고 했다.
쑤 아가씨의 오빠가 배에 올라 그녀를 맞으러 왔다.
황홍지엔은 피할 수가 없었고 쑤 아가씨는 그를 그녀의 오빠에게 소개했다.
그녀의 오빠는 그를 쓱 훑어보고나서 매우 정중하게 악수를 하며 말했다.
"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황홍지엔은 마음 속으로 큰일 났다, 큰일났어! 지금 이 소개는 바로 그녀의 가정 대표로서 그가 사위감 후보로 적합한지 심사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동시에 이상한 것은 그녀의 오빠가 말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말이었는데 틀림 없이 쑤 아가씨가 전부터 자주 그녀의 가족들에게 자기 말을 해왔으리라, 생각되었고 얼마간은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가 쑤씨 자매가 짐을 들어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몇 발자국 가다가 뒤돌아보니 오빠가 여동생을 보고 웃고 있었다.
여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좋아하는 것 같기도하고 또 화난 것 같기도 했으며 자기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쑥스러웠다.
갑자기 그의 형제 훵투(鵬圖)를 맏닥드렸렸는데 원래 2등 선실에 올라가서 그를 찾으려 했던 중이었다.
쑤 아가씨네는 세관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짐 검사를 면제 받았다.
황씨 형제는 아직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쑤 아가씨가 일부러 와서 황홍지엔에게 악수하며 신신당부하듯 "다시 봐요(再見)" 인사했다.
훵투는 누구냐고 물었고 홍지엔은 쑤씨라고 대답했다.
훵투는 말했다. "야, 바로 불란서 박사구나. 신문에서 보았던."
홍지엔은 피식 냉소하며 여인들의 허영이라고 무시하는 듯 말했다.
대충대충 검사가 끝난 상자들을 정리하고 차를 불러 저우(周) 사장에게 가서 하루 자고 내일은 고향에 가려고 준비했다.
훵투는 무슨무슨 은행에 행원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최근 이틀간 풍문(일본과의 전쟁으로 추측됨)이 안 좋아 서둘러 금고를 옮겨야 한다며 가던 도중 차를 내려 가버렸다.
홍지엔은 그에게 집으로 전보를 쳐서 내일 몇번 기차를 타고 간다고 알리라고 했다.
훵투는 이 것을 쓸데 없는 돈 낭비로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그의 장인 장모는 그를 보자 반가워서 어쩔줄 몰랐다.
그는 장인에게 세일론에서 산 상아 손잡이가 있는 등나무 지팡이를 드렸고, 마작도 좋아하지만 불심이 깊은 장모에게는 불란서산 핸드백과 두장의 다리수 잎(贝叶: 불경을 새긴다는 나무잎)을 드렸고, 15-6세인 그의 처남에게는 독일제 만년필을 하나 선물했다.
장모는 다시금 죽은지 5년 되는 딸이 생각나서 상심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숙영이가 만일 살아있다면 자네가 오늘 이렇게 유학 가서 박사가 되어 돌아온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저우 사장은 고집스레 목소리를 높여 그의 마누라가 늙어서 흐리멍텅해 졌다며 오늘같이 기쁜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나무랐다.
홍지엔도 얼굴에 엄숙하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는데 송구스런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4년간 그는 한번도 이 약혼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유학을 떠날때 장인이 그에게 준 커다란 약혼녀의 사진도 상자 바닥에 쳐박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 안색을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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