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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영화, 독후감. 나의 생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보고.

한가한 일요일 오전.
모처럼 와이프와 영화를 보러 갔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라고 신문에 소개된 영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보았다.
신문에 난 평에 따르면 그 영화는 기존 영화의 여러가지 요소를 철저히 무시한 새로운 영화로 권선징악이니 기승전결 또는 관객이 무언가 느끼고 "아하 ! 그렇구나. " 이런 것들을 모두 무시한 새로운 스타일이란다. 신문평을 보니 무거운 내용일 것같아서 그리 재미는 없겠지만 꼭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갔었는데 별로 상영관이 많지 않아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 압구정동 CGV까지 가서 영화를 보았다.

의외.
정말 여러가지로 생가치도 못한 의외가 있었다.
신문 평으로 표현할 수 없는 - 영화를 봐야만 느낄 수있는 그런 느낌.
거기다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 전개가 정말 실감이 난다.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별볼일 없는 가난한 미국 중년 사내가 멕시코국경 사막에서 사냥을 나섰다가 우연히 피투성이가되어 남아있는 마약 거래현장을 발견했는데 거기서 무려 200만달러 현찰이 든 가방을 발견해서 그걸 갖고 도망친다.
살인청부업자가 그를 쫒고...또 정년퇴직 직전의 늙어빠진 보안관이 무기력하게 계속 헛방을 치며 그뒤를 쫏고...
그러다가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무지 재밋는데 주요 인물 세사람이 등장한다.
돈가방을 든 도망자, 이를 뒤쫏는 킬러, 또 이를 혹시 잡아볼까해서 따라다니는 보안관 이렇게 셋이다.

우선 냉혹한 킬러 - 연기 정말 죽인다.
무표정. 아무 과장된 연기 없이 슬그머니 방아쇠를 당기면 또 한명이 저세상에 가고...
치밀한 추적에 돈가방을 들고 달아니는 자는 노심초사하는데 킬러는 정말 하느님같다.

누군가 죄없는 사람을 죽여야할때 그는 공평하게(?) 신이 에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심었던 것처럼 반드시 한번 기회를 준다.
즉 동전을 던져서 앞뒤면을 맞추게해서 맞으면 그냥 살려준다.
우연히 게임에 걸려든 늙은 구멍가게 주인은 벌벌 떨면서 동전 앞면을 맞춰서 겨우 살아났고 순진한 시골 아줌마인 도망자의 처는 왜 그런 강요를 하느냐고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호소하지만 게임을 거부하자 킬러는 아무런 구질구질한 설명없이 간단히 저세상으로 보낸다.
그는 희로 애락에 물들지않았고 그저 덤덤하게 살인을 행하면서 세상사 모두를 자기 의지대로 결정한다.
킬러는 마치 신 같다

도망자는 전전 긍긍.
팔자에도 없는 거금 200만달러를 부둥켜 안고 정신없이 헤매다가 결국 킬러의 총에 생을 마감하는데 도대체 왜 욕심을 내다가 그리되었나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구라도 그럴수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에게 갑자기 200만달러라는 거액이 생겼을때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재앙이 었다.

200만달러가 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 그 순간부터 목숨을 구하고자 필사적인 도망이 시작 된다.
우선 아내에게 도망비로 백달러 지폐 몇장 - 돈도 써본사람이 쓴다고 어차피 남의 돈인데 몇뭉치(몇만불) 척척 집어주지 못하고 꾀죄죄하게 그저 한다발에서 몇장만 꺼내준다 - 쥐어주고 친정에 보낸다.
그리고 자신은 한마리의 사냥감이되어 죽을 때까지 달아나는 일밖에 한 것이 없다. 돈을 써볼 시간도 없었지만 200만 달러중 그가 써본 것은 도망할때 쓴 싸구려 모텔비와 구멍가게서 쓴 푼돈 밖에 없고 너무 달아나기 바쁜 나머지 매일 차나 얻어타고 다니다가 결국 죽었다.
냉혹한 킬러는 그보다 몇수 위의 프로라 한번도 변변한 대항조차 해 본적이 없다. 기껏 잔꾀를 내어 안전을 지키려 해 보지만 프로의 눈으로 볼때는 어설프기 그지없다. 궁하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쫏기고 쫏기다가 총을 한방 갈긴것이 어쩌다가 킬러를 맞췄는데 맞춘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시간을 벌었다며 냅다 다시 도망을 친다. 애시당초 킬러에 대항해볼 생각은 없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큰 재앙을 선물한 탓에 여기저기 달아나다가 죽는데 죽기전 킬러에게 하는 하소연이 진짜 현실적이다.
"푼돈 몇푼만 갖고 도망다니느라 오히려 빚만 많이 졌는데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이나쁜 놈아 !"
세상 어디서도 팔자에 없는 돈은 재앙으로 되돌아 올텐데 그것도 하물며 주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마약상들, 잔인한 킬러들 돈을 촌 백수가 갖고 튀었으니 애시당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 볼일 없는 서민에게 갑자기 주인도 없는 큰 돈이 손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곧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수십단계 업그레이드할 확실한 찬스인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등잔불로 날아드는 부나비처럼 서민들은 그저 실현되지도 않을 욕심에 자기가 갖고있는 소박한 가정, 가난한 살림등 모든 것을 망친다. 우리는 갑자기 생긴 큰돈 또는 행운때문에 결국 거덜난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그렇더라도 만일 우리에게 그런 찬스가 온다면 우리들 대부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것이 뻔하다.

마지막으로 진짜 주인공.
보안관 생활이 정년을 맞게되어 늙어서 힘도 없고, 머리도 잘 안돌고 거기다 의욕마저 없는데 그저그렇게 뒷북만 치고다니다가 - 난 정말 별볼일 없는 노인이구나 - 탄식하며 정년퇴직신청을 한다.
그는 이 사건이 시작되면서 그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생활에서 갑자기 소외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아무도 그를 왕따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 무대에서 역할이 점점 줄고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판단력으로 이리저리 수사를 해보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킬러를 위협한적도 없고, 도망자 가족을 보호하지도 못했고, 그저 뒷북만 치면서 쫏아다닌다. 주위 사람이 보기에는 그가 그저 고집세고 잘난척 하는 노인일 뿐이다.

그는 범죄 현실을 마주하면서 문득 범죄도 예전 범죄가 아니고 부하도 예전 부하가 아니고 피해자도 예전 피해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닿는다. 그래서 은퇴를 결심하는데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은퇴후 남아있는 것은 그저 무지 지루한 시간 뿐이라는 걸 깨닿는다. 정말 노인에게 무대를 펴 주는 곳은 세상 아무데도 없다.
세상 어느나라 은퇴자도 모두 똑 같다.

또하나.
영화의 의외성이 어찌나 강한지 나를 포함한 기존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 모두 영화가 끝났는지를 몰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킬러가 경찰을 따돌리고 슬그머니 차를 타자마자 갑자기 자막에 수고한 사람들이름들이 주욱 나열되었는데 관객 모두 영화가 끝났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그냥 앉아있다가 불이 들어오고나서야 영화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 ! 어 !
이거 결론이 없지않아? 범인을 잡은 것도 아니고...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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