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역 개찰구에서 줄을 서있을때 우리 나이와 비슷한 연배의 혼자 여행하는 한국사람을 만났다.
그는 같은 열차로 백하를 지나 화룡역까지 간다며 초면인 우리에게 일정을 묻더니 주위사람이 놀랄정도의 큰소리로 당장 꾸짖었다. "왜 심양으로 바로 오지 대련을 거쳐서 오느냐? 심양까지 비행기 값이나 대련까지 비행기 값이나 비슷한데 잘못 생각하고 아까운 시간을 왜 낭비하냐?". - 사실 우리는 대련과 심양간 비행기표 값이 10만원 정도 차이 나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 경비절약도 할겸, 대련이라는 유명한 중국항구도 둘러보고 거기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여순감옥도 가보려는 계획으로 대련행을 결정했었다. -
하도 큰소리로 꾸짖어 우리는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가만히 전문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자기는 이제까지 60개국을 돌아다녔다느니... 중국도 열몇번째 오는데 ...하면서 열심히 무어라도 한수 지도해주려고 애쓰는 존경스런 모습으로 쉴새 없이 자기자랑에,후배들에 대한 사랑스런 한수 지도에 바빳는데 초보 배낭여행자인 친구들은 뭔지 불안하던 차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나듯 혹해서 열심히 경청했다.
우리 좌석은 같은 차량이긴 하지만 둘이 6명 침대칸중 같은 칸이고 하나가 바로 옆 칸이인데 나머지 하나는 멀리 떨어져있는 표라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중국어라곤 먹통이고 또 배낭여행이 첨인 친구들이라 우두커니 혼자 떼놓기도 그렇고 또 내가 거기 가있자니 세명이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지루하게 보낼 것도 그렇고... 마침 그사람 좌석도 우리 셋과 같은 칸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안은듯 "그냥 옆사람에게 바꿔 달래면 되요." 한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차에 올랐는데 막상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보기에 대부분 일행들이었고 행선지도 각각 다른데 과연 자리를 바꿔 줄지도 의문이었고 무었보다도 어떻게 말을 걸지도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서 여행전문가 선생의 도움을 은근히 기다렸지만 종내 감감 무소식이다. 말로만 그냥 바꿔달라면 된다고 하면서 계속 딴청이었는데 곧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을 알았다. 친구가 화장싱에 대해 묻자 그가 화장실안에 사람이 있으면 "유인"이라 표시가 되고 없으면 "하늘 천자"가 나온다는 말을 했다. 아차! 그렇구나. 그는 중국어를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거다. 없을 무자는 간자체로 쓰면 하늘 천자와 비슷하게 보인다. 실제 화장실에 가보니 사용중인때는 손잡이 밑에"유인" 아무도 없을 때는 "무인" 이렇게 표시가 변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어느정도 분위기가 익숙해졌을때 우리칸중간 침대에 마침 혼자가는 젊은이를 발견하고 말을 붙였더니 통화까지 간다는 그는 두말없이 혼자 멀리떨어져서 하품하고있던 친구와 자리를 바꿔 주었다. 고마워서 맥주 한캔과 안주를 가져다 주니 술은 못한다며 사양한다.
동틀무렵 무료하기도 하고 아침 겸해서 컵라면을 먹으려하니 열차에 비치된 보온병에 물이 없다. 전문가선생 말이 아까 중국사람들이 승무원에게 물을 달라니까 없다고 해서 그냥들 왔다고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중국인이 문가에와서 묻는다."아침(짜오 찬)을 어떻게 하려느가?" 나는 그때 그가 무슨 삐끼나 물건을 팔려고 하는줄 오해하고 그저 시큰둥 라면을 먹으려는데 물이 없다.하지만 "메이관시"다. 그러나 그는 여러번 되묻더니 말이 안통해 그러는 줄 알고 웬 조선족 아주머니까지 데리고 와서 이번에는 한국말로 다시똑같은 말로 다시 묻는다. 역시 같은 말로 대답했더니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때까지 왜 그가 그렇게 집요하게 말을 거는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기 더운물을 나눠 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삐끼 취급을 했으니 참으로 미인한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여승무원이 지나가기에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니 따라오라며 우리 잉워칸을 둘, 잉쭤 칸을 하나 건너 멀리까지 데리고 가서 남자 승무원에게 물을 부탁해주고, 남자승무원은 열쇠 꾸러미로 기계실같은 곳 문을 열고 더운 물을 가득 담아 주었다. 의기 양양하게 돌아와 넷이 라면을 끓이는데 약간 물이 부족했다. 다시 물을 구하러 가려고 나서는데 여기저기서 중국인들이 보온병을 들이 민다. 우리가 물이 부족하단걸 눈치로 알고 서로 도움을 주려고 서너 명이 각기 보온병을 들고 자기 것을 따루라고 내밀어서 -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하고..." 하여간 중국 승객 모두가 우리에게 조용하게 호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여행전문가 선생에게 어느 기회에 "도대체 59개국을 돌았든 60개국을 돌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더구나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 아닙니까?" 대놓고 되물었더니 그가 묵묵 부답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잉워 13시간 .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침 8시30분. 드뎌 백하역에 도착했다.
차창 밖으로 송강하 역 이 보인다. 이 열차를 터면 송강하도 훤한 새벽녘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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