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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이야기

100km 울트라마라톤 - 인체 내구성 테스트에 참여.(2006년)

100km 울트라마라톤 - 인체 내구성 테스트에 참여.

2006.11.22 23:51 | 마라톤(marathon) | 겨울산

http://kr.blog.yahoo.com/traveler200801/42 주소복사

새벽 네시.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올림픽 공원을 향했다.
캄캄한 도심을 쏜살같이 달리며 묻는다. “무슨 마라톤대회가 꼭두새벽에 열린답니까?”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있는데 일찍 끝내려면 일찍 시작해야 하는 모양이라고 얼버무렸다. 솔직하게 100km 그것도 12시간이상 온종일 뛰어야 한다고 했다간 자나깨나 남편 교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있는 와이프로 부터무슨 장황한 설교가 되돌아올지 모르니까. “에구 무서라.”

평화의 문에서 차를 내리니 무슨 커다란 창고같은 건물에 울트라 참가자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모두들 왁자지껄하며 주최측이 마련한 토스트,순두부, 커피등을 먹는데 일본 아줌마, 서양 색시, 한국 젊은이, 한국 늙수그레 아저씨...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화려한 복장으로 잔뜩 긴장한 가운데서도 잔치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다리던 친구 조사장을 만나 “너는 늑골이 골절되었다니 아쉬워도 30km정도만 걷는걸로 하고 절대 뛰지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다치는 순간 동아마라톤 훈련을 어떻게하나 걱정부터 나더라는 마라톤 중독자인 그가 그냥 걷기만 하리라고는 말하는 나도 대답하는 그도 믿지 않는 그저그런 공허한 소리였다. 마치 형사가 범인을 체포할 때 중얼중얼 미란다 원칙을 지껄이는 것 처럼 쓸데 없으면서도 필요한. 와글와글한 와중에서도 같이 뛰기로한 LG건설 명차장을 만나 조촐하게 셋이 “화이팅”을 외치고 100km와 63.5km 를 뛰려고 모인 600명이 와글와글한 출발선 후미에 섰다.

새벽 5시.
여전히 캄캄한 가운데 선두 출발.
많은 사람이 어둡고 복잡한 주로에서 안내자의 후랫쉬 신호에 의지해서 철제 장애물등을 피해 우르르 모였다가 또 조금 넓은곳이 나오면 뛰고 하는 것이 꼭 길 잃은 양떼들 같다. 자원봉사 목자가 멍청한 울트라 양떼들을 몰고 잔잔한 한강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거다.

뚝방길을 지나 어둠속을 천천히 달리니 5km 표시. 시간은 34분15초. 1km에 약 7분정도 속도다.
이윽고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울트라 마라톤에 오긴 왔구나.” 과연 내가 100km를 완주할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만 우선 당장은 춥거나 덥지 않은 쾌적한 기온이 맘에 든다.

6.9km 반환점을 돌아 양재천에 접어들었다. 어슴프레 동이 터오며 공기는 약간 쌀쌀한게 상쾌한 기분이다. 아직 초반이라 기운이 넘치는 것일 테지... 여전히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며 훤하게 밝아오는 집값 비싼 강남 시멘트길을 달렸다. 대치동, 양재동 타워팰리스.....
15km 지점 1시간 42분 4초. 여전히 1km당 6분30초에서 7분 페이스로 달렸다.
이전에 연습할땐 아무리 늦어도 1km에 6분 이내 였는데 이처럼 천천히 뛰니 편안하고 좋다. 어떤 친구는 울트라 마라톤 주법을 익힌다고 일부러 천천히 뛰는 연습도 했다던데 나는 아무 연습이 없었어도 천성적으로 거북이 체질이라 천천히 뛰는 것이 체질에 맞는가보다.

20.5km반환점을 뒤로하고 다시 한강을 향해 왔던길을 달렸다. 여전히 1km당 페이스는 6분30초정도를 유지했는데 5km에 32분내지 33분 정도 속도다. 달리면서 문득 걱정된 것은 천천히 달리니 편안하고 좋기는한데 시간이 길어지면 거리상으로는 얼마 못가서 그대로 기진맥진 주저앉는게 아닌가 걱정 되었다.

다시 한강변에 나오니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고 밝은 태양을 등에지고 달리는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아침이 되니 새로운 힘이 솟는듯 전혀 피로를 모르고 30km 지점에 도착했다.
출발점에서 3시간 22분 경과.

한강은 너무 익숙한 우리들의 안마당 아닌가. 대부분위 연습을 평일엔 남산, 토 일요일은 한강에서 연습해 왔던터라 잠시 100km를 달려야 한다는 긴장감도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45km를 지나 여의도 42.195km표지 있는 곳까지 왔다. 도착시간 4시간 43분.

거기 마련된 급수대에서 간단히 음료와 바나나를 들고 출발했는데 그지점부터 약간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며 다음 급수대가 기다려 지는 것이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했단 신호다.
이윽고 한강변에서 목동교를 향하여 안양천으로 접어들었다.
페이스는 여전히 유지했지만 처음처럼 상쾌한 가운데 달린것이 아니고 1km가 무지 멀어보이고 다음 급수대를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리워하며 힘들게 달렸다.
45km지점에서 54.1km 신정1교까지 9.1km를 30초 모자라는 1시간에 달렸다. 1km에 대략 6분40초정도인 셈인데 힘이 빠지기는 했어도 스피드는 계속 유지했던 셈이다.

54.1km 신정1교 반환점을 뒤로한 시간은 평화의 문을 출발한지 6시간 1분이 경과. 머리털 나고 한번도 이렇게 오래 뛰어본 적이 없는 긴 시간이다. 피로가 누적되어 이때부터는 65.3km 방화대교에 얼른 도착해서 전복죽을 먹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평소 연습주때는 여의도를 출발해서 방화대교를 왕복하면 되는 거 였으나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방화대교까지 갔다가 다시 잠실....어이쿠 . 점점 절망스런 기분이 든다. 어쨋거나 반환점까지는 가자. 회송차를 타더라도 거기 밖에 없다니까.

다시 한강으로 나오니 시원한 강바람이 맞아준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야.” 시원한 강바람 덕분인지 어느정도 원기가 회복되어 계속 비슷한 스피드를 유지하며 7시간 18분만에 방화대교 반환점에 도착했다.

사막의 오아시스. 기분도 그랬지만 실제로도 사막의 부족들처럼 흰 텐트를 여기저기 치고 한쪽에선 전복죽을 끓이고 퍼주고, 끌고온 낙타들을 물을 먹이기도하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서 담소도하며 진짜 오아시스 분위기다. 나도 전복죽을 한그릇 얻어먹고 출발점에서 미리 맡겨둔 짐을 찾아 양말을 갈아신고 파워젤을 꺼내서 벨트에 찼다. 뛰지 않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그곳 분위기가 너무 안온하고 좋아서 맘같아선 며칠 묵고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눈 깜빡하는새에 금방 12분56초가 지나갔다. 어차피 가야만 한다면 미련없이 떠나자.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 카츄사를 두고오는 기분으로 아쉬움 속에 출발.

이제 35km만 가면 천국이 저희것이라고하는 강력한 믿음속에 방화대교를 출발했다.
한발작 두발작... 처음엔 몰랐는데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때마다 통증이 온다.
인어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바다를 버리고 육지에 올라 발을 디딜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아팟다더니 나는 인어왕자도 아닌데 발바닥을 디딜때마다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자. 안간다고 떼쓴들 누가 데려다줄 것도 아니고.” 억지로 달리기 시작하니 그런대로 통증을 잊을만 하다. 65km를 출발 70km를 지나 75km까지. 10km를 1시간6분에 달렸다. 8시간 38분 경과.

75km를 지나서도 계속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 하기는 했는데 매 1km가는 것이 끔직히 힘들어 아예 시간체크도 않고 처연한 기분으로 잠실쪽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달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이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어서 완주를 끝내는 것 밖에 없다고 되뇌이면서 아픈 발바닥과 타협해가며 뛰고 또 뛰었다. 가끔 나타나는 급수대에서잠간 쉬는 즐거움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잠간 1-2분 정도 서서 물을 마시고 다시 발걸음을 디딜때는 계속 달릴때보다 훨씬 큰 고통이 찾아왔다. 한가지 희한한 것은 발바닥을 제외하면 다른 신체부위는 크게 아픈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문득 “이건 운동이라기보다 인체의 내구성 테스트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건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려고 강력한 기계에 연결해서 반복적으로 구부렸다 폈다 계속하다가 드디어 그놈의 물건이 결단나야 20만번째 망가졌습니다 어쩌구 하는 테스트.
100km는 10만m. 내 보폭이 50cm이라면 계속 20만번 발바닥이 닿고 다리 역시 그 숫자만큼 구부렸다 폈다 해야하는 내구성 테스트다. “몹시 비인간적인 운동이지.”

어느덧 탄천교 밑에 급수대까지 왔다. 규모가 제법크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았는데 50대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더니 안마까지 해주며 격려한다. “울트라 처음 뛰세요? 결승점에 도착하시거든 펑펑 우세요.” 나는 속으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벽에 마누라에게 어물어물하며 무려 11시간을 달리고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결승점에서 그아저씨 말처럼 펑펑 울었다간 죄들 맛이 갔다고 그러겠지. 아서라. 아서.” 그곳이 아마 93km지점이었는것 같다.

95km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11시간 5분50초.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11시간대에 들어가자. 완주 기념패에 11시간대에 완주를 기록하자.” 하는 마음(욕심)으로 지긋지긋한 5km를 또 달렸다. 마지막 뚝방길 우레탄 포장해 놓은곳은 일부러 아스팔트 부분으로만 달렸다. 우레탄이 쿠션이 있어 더 힘이 드는것 같았다.
마지막 5km.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는게 누군가가 나를 골탕먹이려고 자꾸 거리를 늘여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였다. 마지막 5km는 35분38초 걸렸다. 1km에 7분7초다.

11시간 40분 59초. 100km. 크게 망가진데 없이 견뎌냈으니 내 신체도 KS 품질 테스트는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