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竹)를 사랑하는 손님이 말하다(爱竹客说)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각양 각색의 대나무를 보았다. 그것들 이름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마치 초록의 옛 친구처럼 느낀다.
어떤 집들은 앞이나 뒤에 공터가 있어, 거기에 몇 구루의 대를 심어서, 몇 기덕 신선한 바람을 끌어들였고, 가난함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 당시, 대로 만든 죽제품이 확산되고 있었고, 한동안 우리 생활에 중요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대나무 의자, 대나무 삿대, 대나무 바구니, 대나무 광주리, 대나무 쓰레기통, 대나무 침대 등, 대부분을 대로 안 들었으며, 플라스틱을 가공해 만든 물건은 극히 적었다.
여름에 대나무 침대에서 자면, 전신이 시원해진다. 대나무 침대에 살이 끼이면, 그저 허리를 돌리고 투덜대고 나서, 전처럼 잠을 자면 된다.
우리 민족의 삼공(三公)은 일찍부터 고기잡이를 생계로 삼았다. 그는 강 한가운데 어살을 일렬로 설치해 놓고, 물 위에 둥실둥실 뜨는 대나무 집을 세웠다. 그때,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되면, 강 안에 대나무 집을 한 채 짓는 몽상을 했다. 흐르는 물 위에서 베개를 벼고 있으면, 내 몸 아래로 물고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것이라고 상상했다. 사실, 물 위에 있는 대나무 집은 결코 견고하지 않아서, 8월에 한차례 태풍이 불면 쉽게 뒤집혔다.
나는 강에서 수영을 하면서, 산에서 끌어내린 대나무 뗏목을, 통통배가 끌고, 산 쪽 모퉁이를 돌아 구불구불 내려오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언덕 위에 밝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갔다.
우리는 가끔 대나무 뗏목에 기어 올라가 언덕 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나는 언제 죽제품이 우리 생활에서 퇴출되었는지 모른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류에서, 작은 도시 하나가 퇴출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요즘은, 만일 장식용 죽제 품을 산다면 그걸 방 어디에 둘지 알 수 없다. 내가 늘 접촉하는 죽제 품을 꼽으라면 대나무 젓가락이 있는데, 소위 할 저(割箸)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나무 젓가락은 일회용 아닌 것이 없다. 쓰고 나면,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폐물 신세가 된다.
그것의 이전 신분은 산(山) 속의 푸른 대나무다. 대는 수시로 바람에 흔들리며,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도시에 들어와, 식탁에 놓인 다음, 신세가 급전직하,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사라진다.
대는 젓가락으로 진화하였고, "대는 음식물을 가리킨다". 대나무의 실용 기능이 확대된 것이다.
눈으로 보던 대나무가 마음속의 대나무가 되면서, 대나무의 심미 기능이 확대되었다.
겨울 죽순, 봄 죽순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도 다 안다.
죽엽이 감상할만하다는 것은 무료한 독서인이 능히 생각할 수 있다.
산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대나무로 많은 물건들을 만들 수 있으니 대는 확실히 실용적이다. 그들은 언덕에 가득 우거진 대나무만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오며, 시(詩)라도 한수 읊게 되고, 달 밝은 밤 거문고 소리가 들린다면 자기도 모르게 그리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죽림에서 몇 사람의 현인(贤人)이 나왔는데, 용모부터 대단히 출중했다. 그들은 인간의 불로 익힌 것을 먹지 않으며, 또 무료한 독서인이, 제멋대로 시 의(詩意)를 상상토록 만들기도 하였다.
나는 안길로 돌아왔다. 조금 열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우리 집 옥상에 대나무 집을 짓고 싶어졌다. 굵은 대나무를 엮어 틀을 세우고, 사방에 세 죽(細竹)을 심는다. 그건 죽림이기도 하고, 또 대나무 집이기도 하며, 잎 뒤가 트였으니, 먼산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내 구상을 듣고, 한 친구가 말했다."그래도 통나무집이 훨씬 견고하고 내구성이 있어." 하지만 여전히 나는 고집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대나무 집이야. 내가 상상하는 것은 대나무를 주 재료로 하는 지극히 간단한 건축물이고, 그게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거야."
보다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몇 줄기, 대나무 중간에 앉아, 설령 죽림의 정적은 완전히 느끼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확 트인 공간의 자유라도 즐겨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거침없이 나의 거의 천진스러운 생각을 반박했다.
그 이유는 우리 집이 있는 곳은 시끄러운 도시이니, 대나무가 훨씬 많이 있다고 해도, 거리의 시끄러운 소리에 가로막힐 것이라 했다.
거기다 태풍이라도 불면 엄청 골치 아플 것이라 했다. 비록 대나무의 얕은 뿌리가 뽑혀버리지 않는다 해도, 바람에 대나무 가지가 부러질 것이고, 댓잎은 사방으로 날릴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나의 구상은 머릿속에서만 한바탕 맴돌다가 결국 포기했다.
청명절(24절기 중 하나. 4월 5일 전후) 전에 간원(简园) 주인이 일곱 뿌리의 오죽을 보내왔다. 나는 원래 생각했던 대로, 옥상 평지붕에 심었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쳤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댓잎이 몽땅 떨어져, 바닥에 수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뚱딴지같이, 산중의 한 현자가 떠올랐다.
오후에 날이 개자, 나는 아내와 함께 진흙이 그대로 붙어있는 일곱 뿌리의 오죽을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어떤 돌비석 옆에 심었다.
일본의 원정(元政) 화상은 임종 직전에 주위 사람에게, 그를 위해 석탑을 쌓지 말고, 오직 몇 뿌리의 대를 심어달라고 당부하였다. 그의 대를 노래하는 시가 한 수 있다.
"집 앞에 대 잎이 드리워있고, 집 뒤는 댓잎으로 막혀있다. 옥상도 댓잎으로 덮여있는데, 그 가운데 대를 사랑하는 손님이 있다."
주작인(周作人: 중국 현대 작가 1885~1907)은 이 시를 읽고, 이시는 묘비명으로 쓴 시라고 했다. 틀림없이 그 노인이 "대를 사랑하는 손님(爱竹客)"이라고 했다.
이전에 나는 옛 거문고 악보에서 역시, 대를 노래하는 시 한 수를 읽은 적이 있다.
"집 위에 있는, 한 줄기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언제나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그 아래에는 100세 노인이 있는데, 오랜 잠 때문에 새벽이 된 줄도 모른다."
시의 작자는 성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시와 원정화상의 시를 함께 놓고 읽으면, 바람에 대가 부르르 떠는 것을 느낀다.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차는 빨리 달린다(火车快跑): 우주의 중심 9, 东君 (0) | 2022.12.10 |
---|---|
먹어, 먹어(吃, 吃, 吃): 우주의 중심 - 8: 东君 (1) | 2022.12.05 |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6 : 东君 (1) | 2022.11.27 |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5 : 东君 (2) | 2022.11.23 |
우주의 중심(宇宙的中心) - 4 : 东君 (1)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