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나는 다시 지공 거사 나들이에 나섰다.
내가 매주 월요일에 지공 거사 나들이를 떠나는 이유는 그날은 도서관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김유정역.
오래전에 한번 가본 적은 있으나 그때는 승용차로 갔었다.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다.
우선 인터넷에서 김유정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찾아보았고 늘 고마운 공짜 지하철에 올랐다.
총신대역 - 상봉역 - 김유정역 (남춘천 역 바로 전 정거장)
매번 춘천마라톤 뛰러 가던 춘천길을 이번에는 그냥 어슬렁어슬렁 갔다.
김유정 역은 아담한 한옥으로 정감이 갔고, 역 앞은 무척 조용하고 시야가 탁 트인 경치 좋은 곳이다.
역에서 500m 쯤 떨어진 곳에 김유정 기념관과, 생가 마을이 있었는데 모두 코로나로 휴관 중이었다.
휴관 중이라 들어가진 못했지만, 오면서 좋은 경치를 보았고 역에 내려 탁 트인 공간 속,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보았으니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 기념관이라야 29세의 짧은 생애를 보낸 작가의 유물 몇 점 있을 테고 새로 번듯하게 잘 지어놓은 생가는 야트막한 담 밖에서 보아도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
그러니 휴관으로 내 여행이 지장을 받은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사람이 없어 한적하고 좋았다.
사실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국어책에 실려있는)와 김유정의 소낙비가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이런 무식 상태에서 김유정을 찾아가면 안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약간의 공부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인간적으로 연민이 가는 29세의 짧고 기구한 삶을 산 작가였다.
그는 춘천의 상당한 부잣집 둘째 아들로 1908년 춘천 살래마을에서 태어나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을 다니다 중퇴했다.
중퇴한 이유는 그의 형이 주색잡기에 빠져 부찬이 남긴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는 바람에 김유정이 월셋집을 전전하느라 등록금 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는 그도 남도창을 하는 명월관 기생 박녹주에게 빠져 매일같이 연애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요새로 치면 스토킹을 했는데 기생 박녹주는 그 편지들을 보지도 않고 찢어버렸다. 나중에는 김유정이 혈서까지 써 보냈고 기생과 연희전문학생의 유명한 스캔들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와 금병의숙을 차려 농촌 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35년 그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로 동시에 당선되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고 짧은 생애지만 소설 30편, 수필 12편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30세에 요절한 작가 이상과 절친한 사이였는데 20일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폐병이 심해졌으나 가난으로 변변히 치료 받지도 못하고 1937년 경기도 광주 누나의 집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나는 매번 여행을 갔다 오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번 김유정역 여행도 탁 트인 경치 속을 걸은 것뿐만 아니라 개화기 우리나라 문학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작가 김유정에 대해 짧은 지식이나마 얻게 된데 만족한다.
그것도 공짜 지하철을 타고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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