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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영하 회족자치주 은천(银川)- 서하 유적(박물관과 왕릉)-8/27 : - 하서주랑을 거쳐간 중앙아시아, 러시아 여행


서하 왕릉



호화호특에서 오후 8시에 탄 가차는 새벽 6시에 영하회족자치주의 수도인 은천에 도착했다.

은천의 첫인상은 넓고 탁트인 공간 이란 느낌이 들었다. 시내 중심가인 기차역에 내리니 높은 아파트가 보였으나 밀집해있지 않았고 넉넉한 하늘이 보였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을 찾아갔는데 구시가지로 보이는 얕으막한 낡은 건물들만 있는 옛스런 동네로 우리를 데려 갔다.

헌데 우리가 준 주소에는 아무리 찾아도 호텔이 없다고 한다. 기사가 여러번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에 주소에 써있는 위치에 그냥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내린 네거리 바로 맞은편에 우리가 찾는 호텔이 있었다. 호텔도 새로 생긴 호텔이 아니라 크고 오래된 호텔이었다.

아마, 은천이 낙후된 변방지역이라 인터넷정보가 발달하지 않아  내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호텔에 짐을 풀고 뱌로  앞 구시장 구경을 갔는데 아침부터 사람들로 왁자지껄 했다. 시장에서 파는  각종 괴일이며 간식거리가 무척 값이 쌌다.


아침을 먹고 서하(西夏) 박물관과 왕릉을 보러갔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놀랄만큼 우리 문화와 흡사했고 마치 우리의 예 유물을 보는 듯 친근감이 느껴졌다.

각종, 와당이며 조각들, 불상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옛 서하와 우리나라는 민족도 다르고 수천 km나 떨어져 있는데 어찌 이렇게 문화가 비슷할까?

박물관을 나와 셔를버스를 타고 서하 왕릉을 향했다. 넓고 황량한 벌판에 커다란 황토 무덤이 우뚝우뚝 서있다.

천년의 세월을 변치않고 우뚝 서있는 거대한 진흙 무더기같은 서하 왕릉은 정말 독특했다.

건조한 지역이니 잔디로 떼를 입히지도 않았고, 돌도 아닌 진흙으로 쌓았는데 아무리 건조한 지역이라 해도 흙으로 쌓은 무덤이 어찌 천년의 세원을 견뎠을까?

여기 와서 서하 왕름을 거닐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좁은 세상에서 아옹다옹 살아온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영하 회족자치구宁夏回族自治区)의 수도인 은천(银川)은 옛 서하(西夏)의 수도이다. 

서하는 티벳 변벙 부족인 탕구트족장의 직계 후손인 이원호가 1038년에 새운 나라다.

서하는 중국 하(夏) 나라를 계승한다하여 스스로 대하라고 칭했으며 송(宋), 요와 더불어  서북지역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다가 1227년 몽골군에게 멸망당한다.

이곳을 하서 주랑이라고 하는 이유는 황하의 서쪽, 만리장선 안쪽의 고대 실크로드의 통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천은 그 하서주랑의 중심도시로 실크로드 무역 이익을 독점함으로 부강해졌다고 한다.


서하는 만연한 부패와 몽골군을 도와 금과 오랜 전쟁을 하다가 급격히 국력이 쇠퇴하였다.

결국 징기스칸의 서정(西征0) 참가를 거부하였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여러 차례 몽골군의 침략을 받았고 190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징기스칸은 서하와의 전쟁 중 말에서 떨어져 병을 얻어 죽었으며 유언으로 서하인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 CCTV에서 서하인 후손의 DNA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몽골의 살육 때문이라고 방송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서하인이 모두 몽골군에게 살육당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고,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으나 다른 민족에 흡수되어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서하는 송의 관제를 모방하고, 활발히 교역함으로 중국 한족  문화와 여 탕구트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다.

서하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사용했는데 문자는 한문과 같은 표의문자이며 탕구트어라고 부르는 서하어는 티베트 버마어에 속한다고 한다.

또한 불교를 국교로 하여 많은 불상이 유물로 남아있으며 서하어로 논어, 불경등 서적을 번역한 것이 남아있어 현재 서하문자는 완전 해독된다고 한다.


하린산贺兰山) 기슭에는 9개의 서하 왕릉과 250개의 묘지들이 분포한다.

서하 왕릉의 능탑은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웅장하고 독특한 건축양식이며, 서하 문화의 특징을 알려주는 유물과 부장품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머리와 팔은 사람의 형상을 한 상상의 새 가릉빈가. (범어 kalavinka)- 서역과 중국을 거쳐 한국 불교유적에도 전래되었다고 함.



























몽골군의 여섯번에 걸친 서하 침략 설명도


박물관에 전시된 왕릉 죽조 설명도


왕릉으로 가는 셔틀버스




서하 왕릉








서하 문자와 한문의 비교




은천 회족 전통 소고기 국수집 벽에 그려있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