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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이야기

2014.11.15. 국민건강 마라톤대회 - 획기적인 막판 스퍼트를 기록한 날.

 

 

11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민건강 마라톤대회.

날씨는 시베리아에서 몰려온 한랭한 고기압으로 날씨는 영하 1도~영상 10도의 약간 쌀쌀한 날씨였고 하늘은 쾌청했다.

코스는 여의도 - 안양천 - 목동 신정교에서 돌아나와 - 다시 한강변 - 방화대교가지 갔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10시, 환하게 태양이 비추는 가운데 스타트 라인을 출발했다.

풀코스 주자는 별로 많지 않아서 대충 2~300면정도 남짓했다.

 

이 대회는 우리 마라톤 모임의 납회 대회이고 또 바로 전주에 중앙마라톤 풀코스를 뛰었기 때문에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그저 즐런(즐겆게 달린다는 속어) 하러 갔을 뿐이다.

오늘은 적당히 대충 뛰고 나서,마포에 가서 족발에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기록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고 너무 늦지만 않게 완주하고 돌아오면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엉뚱했다.

시계에 기록된 랩타임 : 30;58, 30;48 , 30;34, 31;30, 7;19, 24;37, 32;40, 33;42, 29;55, 13;13 (총 소요시간 : 4시간 25분 12초)

처음 20km까지 갈때는 1km당 6분이 약간 초과된 스피드로 달려서 하프 21.0975km지점 통과시간이 2시간 11분 9초였고 이것은 평균 km당 속도 6분15초 정도의 스피드이다.

이후 스피드가 더욱 떨어져 5km 당 속도가 20~25km 구간 31분58초,25~30km 구간 32분 40초, 30~35km구간은 33분 42초 였으니 1km 주파에 6분 44초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날, 획기적인 기록은 인간의 한계라고도 하고 마(魔)의 구간이라고도 불리우는 35km에서 나타났다.

느닷없이 35km에서 40km까지 5km를 29분 55초(km당 5분 59초)에 주파하고 나머지 2.195km 역시 정확히 같은 페이스로 주파해낸 것이다.

이런 예상치도 못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은 엉뚱한 경쟁심이 발동한 탓이다.

 

33km에서 나는 천천히 안양천변 억새밭을 둘러보며 달리고 있었다.

풀코스 네시간 반 정도 수준의  기록자들이라면 대개 30km에서 힘이 다 빠져서 35km 지점쯤 가면 기진맥진해 져서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레이스를 마치게마련이다.

나역시 그중 하나로서 나는 그나마 걷지않고 뛰어가니 그 시간대 주자들은 다들 지쳐서 그 지점에서 나를 추월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60대가 뒤에서 불쑥 나를 추월했다.

내가 놀라서 "아이구, 막판 스퍼트가 좋습니다." 하고 말하자 그는 "먼저 가겠습니다."하며 앞서 나갔다.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여전히 천천히 달리다가 문득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95km 지점에서도 막판 스퍼트도 했었는데 이렇게 주저 앉으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난 것이다.

 

35km 지점에서 이제부터라도 스퍼트해서 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스피드를 올렸다.

급수대에서 물도 먹지않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니 38km에서 그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역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더욱 스피드를 올려 그에게 접근하니 나를 금새 알아보고 한마디 한다."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짐짓 모르는체하며 "뭐가요?" 하고 물었다.

그는 "이제까지 어떤 대회서든 후반 하프에서 나를 추월한 사람은 없었거든요."라고 했다.

나는 "나도 막판 스퍼트는 조금 하지요." 하는 말을 남기고 그를 추월해 달려 나갔다.

 

이후부터는 지옥이었다.

그에게 다시 따라 잡히면 무슨 망신인가, 겁이나서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내가 생각해도 -  이런 쓸데 없는 경쟁심이 어이없다 -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직 나는 뛰어야만 했다.

그가 바로 뒤따라 오는 기색은 없었지만 40km 넘어 마지막 구간에 여의도에 들어서서도 모든 주자들이 지쳐서 천천히 가고있는데 나만 쫏기듯 달려갔다.

간신히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이젠 더이상 추월당할 위험이 없어진 것이다.

 

그바람에  35km~ 42.195km  마라톤 마지막 제일 힘든 구간을 1km 당 6분이 채 못되는스피드로 달린, 나로서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