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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이야기

2012.1.1. 새해 첫 아침을 달리다.

여늬때와 마찬가지로 일요일 아침 8시. 허선생의 차를 얻어타고 여의도 6.3빌딩 앞 주차장으로 갔다.

일요일에는 주차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일요일 아침 8시에 모여 뛰는데 (해가 조금 길어지면 7시에 모인다.) 코스는 대개 21.km를 목표삼아 행주대교 쪽으로 뛴다.

 

오늘 해뜨는 시각은 7시30분쯤 된다고 하며 오전에 눈이 조금 온다는 예보를 듣고 나왔는데 과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여의도 넓은 벌판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차가 가득차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거닐고 있었다.

오늘이 새해 첫날이라 정동진 같이 먼 곳은 못가지만 아쉬운대로 한강변에서 나마 해돋이 구경을 나왔는가보다.

 

해돋이 구경 나온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우리는 늘 모이는 원효대교 밑에 주차했다.

벌써 샤오리, 고부장, 김선생등 세명이나 나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나서 7시20분 우리의 목표인 여의도 기점 10km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여전히 부옇게 흐렸고 기온은 영하 1도의 약간 쌀쌀한 날씨다.

내가 입은 옷은 약간 두꺼운 폴리 셔츠와 폴리 추리닝바지가 전부였다.

보나마나 몇km 달리고 나면 몸이 더워 질테니 옷을 더이상 입으면 나중에 거추장 스러워 질게 뻔했다.

우리가 출발한 원효대교는 여의도 기점 0km지점에서 500m 조금 넘는 곳이라 여기서 왕복 10km를  갔다오면 21km가 넘으니 하프 코스 거리(21.0975km)와 거의 같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우리는 열을 지어 출발했다.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포대교와 서강대교를 지나 2km정도 가면 여의도 경계인 국회의사당 근처까지 가게된다.

이때쯤부터 몸이 풀리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오며 몸도 마음도 편안한 기분이 된다.

조금 더 달려서 지금은 허허 벌판이지만 여름에는 장미 향이 은은히 퍼지는 화원을 지나면 양화대교, 선유도 공원이 나오는데 여기가 여의도 기점 3.5km 지점이다.

 

이때부터 약간 지루해 지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하늘나라로 간 손녀 생각도 자주 하는편이고 폐암 말기라는 친구 생각...중국 오지로 여행갈  생각 등 그때그때 다르다.

어느때 정 생각 나는게 없으면 중국어로 말하기 연습도 한다.

예를들어 티벳의 푸른 하늘아래 은빛 번쩍이는 대지,

 - 자이 투번더 란란 티엔씨아 인찬찬더 따디....

 

5km 지점은 선유도가 끝나고 성산대교를 약간 자난 지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강폭이 넓어지며 한강 바로 옆길을 뛰는데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멀리 안양천과 만나는 곳에 하얀 텐트가 조로록 서있는 것이 보이는데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동화같은 환상적인 풍경이다.

이곳에는 언제나 수많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바로 6km  지점.

0.5km 못미친 곳에서 출발했으니 여기가 주행거리로 쳐서 6.5km지점이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서인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간혹 뛰는 사람만 스쳐갔다.

여기까지 오면 그저 무심해진다.

이제 반환점도 멀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반환점을 향해 뛰는 수 밖에없다.

 

강변길을 달리며  강건너를 보면  난지도 하늘공원이 보인다.

여기는 강폭이 넓어 강건너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서 생각에 잠긴다

대안, 나룻배..

만해 시인의" 나룻배와 행인"을 떠올린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강건너 보이는 하늘공원, 노을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가양대교가 있다.

7.5km에서 다리 진입지점이 보이고 조금 더 가서 다리를 살짝 지나면 8km 지점이 나온다.

이제 거의 종착점이 가까워 오는데 여기서 1km를 더가면 9km자점에는 화장실이 있고 벤치도 몇개있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목재를 써서 잘 꾸며 놓았다.

 

우리는 매주 이곳을 지나는데 언제나 섹스폰을 부는 아저씨가 아침마다 구슬픈 멜로디를 조용히 흘러가는 한강을 향해 뽑아낸다.

보기에 60을 넘은 은퇴한 아저씨가 못된 마누라에게 아침부터 쫏겨나 구슬피 섹스폰을 불어대는 것이 물고기들을향해 하소연이라도 하는듯 청승맞다.

그런데 오늘 1월1일은 그아저씨가 안보였다. - 어디 가셨나?

 

조금더 달리면 다시 조그마한 쉼터가 나오고 공항철도가 지나가는 마곡철교의 회청색 다리가보이고 그너머로 오렌지색 아취 다리 방화대교가 보인다.

양화대교를 바라보며 조금 더 달리면 10km 지점이다

여기가 왔던 곳으로 되 돌아가야하는 반환점이다.

이제까지 10.5km를 달려 왔으니 돌아가면 21km 하프 마라톤 거리다.

 

겨울에는 늘 여기까지 계속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오기 때문에 춥고 또 이른 시간이라 해가 뜬지도 얼마 되지 않아 몹시 춥다.

하지만 여기서 몸을 돌리면 그 순간부터 천국이다.

바로 바람이 등뒤에서 부니 춥지도 않고 시간도 어느정도 낮에 가가워졌으니 공기도 따듯해 지고, 무엇보다도 동쪽에서 뜬 태양 빛을 쏘이며 달린다.

나는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향하는 그순간 겨울에서 갑자기 봄이되는 것을 느낄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 쏠레 미이요, 오쏠레 미요~~

법정스님 말씀마따나 다 버리는 순간 그대로 지옥에서 극락이 되는가보다.

오늘은 날이 흐려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쪽 하늘이 환하다.

 

편안히 왔던 곳을 되짚어 달려간다.

어느때 컨디션 좋을때는 벌써 돌아가야하나 하는 아쉬움마저 느낄 때도 있다.

 

안양천과 만나는 6km지점(목동 들어가는갈림길) 의 환상적인 하얀 텐트가 아물아물 보이는 곳(7km 지점)부터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달리는 주로가 금새 하얗게 변했다.

이렇게 상서로운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임진년 새해 부터 좋은 일이 있으려나보다,

 

편안하게 여의도 경계를 넘었다.

거리 표지가 나타나는데 2.5km지점이니 앞으로 3km만 더 뛰면 오늘의 마라톤 숙제는 끝난다.

나는 여의도로 되돌아 올때마다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든다.

마치 먼곳에 나가 갖은 풍상을 다 겪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기분이다.

 

다시 원효대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출발은 같이했으나 올때는 각각 따로 따로 도착한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여기서 따뜻한 옷을 걸쳐 입고 가까운 강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잠시 중년 남자들의 수다를 즐기다가 헤어지는 일.

 

이런 매주 반복되는 일과를 어김없이했는데 별다른 느낌은 없다.

걍 오늘이  2012년 1월1일 새해 첫날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