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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이야기

마라톤의 전과정

마라톤은 힘들고 고통스런 운동이다.
오죽하면 그 좋아하는 술도 풀코스 대회 1주일을 앞두고서부턴 딱 끊고 누가 술 먹자고 할까봐 슬슬 피하고 혹 마지못해 술자리에 갔을 때는 상대방이 누구이든 "마라톤 대회가 임박해서 술을 먹을 수 없으니 양해 바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 풀코스 대회에서 너무 고통 받을 걸 생각하면 술 정도는 조금 참는 편이 훨 낫다.

꽤 운동이 되긴 되나보다.
마라톤 시작한지 얼마안되어서 부터 슬금슬금 체중이 줄기 시작 하더니 허리띠가 혁대 마지막까지가고 그래서 혁대를 잘라내고나니 이번엔 옷 들이 죄 안맞기 시작해서 모든 옷들이 위,아래 할것 없이 큰 형에게 얻어입은 옷 같아진다.
그런데 살이 빠지는 순서가 얼굴부터 빠진다고 하던데 과연 얼굴이 쭈글쭈글 늙어 보인다며 어디 아프냐고 주위에서 그런다.

일단 대회에 나가 뛰기 시작하면 체념상태.
이왕 나왔으니 완주는 해야겠고 거기다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시간 기록 단축도 욕심나고...
하여간 죽기살기로 뛸수밖에 없는데, 처음 3-5km 갈때는 숨도 가쁘고 무지 힘 들다가 이후 8-10km 정도 가면 어느틈엔가 고통이 봄눈녹듯 사라져버리고 편안히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다가 20km 쯤 가면 힘이 좌악 빠져서 "이제 절반 왔는데 어휴 남은 거리를 무슨 수로 뛰나 ?" 걱정이 태산인데 이런 상태로 치약의 마지막 부분을 짜내는 심정으로 젖먹던 힘을 다하다 보면 어쨋든 35km 정도까지는 오게 된다.

마의 35km
- 이 장면에서 마라톤의 벽, 인간의 한계...등등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모든게 짜증나기 시작하면서 길에서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에게 마저 화가 나며 이렇게 뛰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정말 나훈아는 너무 내맘을 알아준다.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차츰 걷는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악마의 유혹에 빠진다. 내가 뭐 이나이에 운동선수도 아니고...어쩌구 저쩌구... 달리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아!

35km에서 42.195km에 오기까지. (7.195km 마지막 질주)
마의 35km에서부터는 체력의 싸움이 아니라 정신력의 싸움이다.
너무 너무 힘들어 그저 다왔으니 포기하지 말자는 말만 되뇌이며 달리는데 히안하게 나중에 이때의 시간 기록을 보면 그렇게 힘들게 뛰는데도 속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 같아서는 거의 걷는 수준으로 뛴 것 같았는데 불구하고. (물론 훨씬 속도가 처지는 사람도 많다.)
서브스리주자(SUB-3 : 2시간대 풀코수 완주자)에게 이때를 잘 넘기는 요령을 물은적이 있는데 그역시 - 너무 힘들어 뛰고 난후에 기분 좋게 쉴 것만 생각하면서 고통을 참는단다.
다른 방법은 없다. 억지로 무언가 기막힌 생각을 해가며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애쓰며 질주하는 수 밖에.

결승선을 통과.
우선 "물. 물. 난 목마르단 말야."
비로서 서서 물을 마신다. 달리지 않고 서서 여유롭게 마시는 물은 정말 시원하기도 하다.
아무데나 털석 앉아 본다. 연도에 앉아서 박수를 치던 사람들처럼 나도 앉을 권리가 있다. 더이상 뛸 곳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다소간 센치멘탈한 생각도 드는데 처음 풀코스를 힘들게 달리고 결승점을 통과할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단 중년 사내들도 많다. 물론 순수한 감성의 아줌마들은 더 눈물이 앞을 가렸겠지만....

이제 게임은 끝났다.
대개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집에 자랑스럽게 전화를 건다. "나 끝났어. 그럼 물론 완주 했지."

그리고 미친 친구들끼리 의논한다. "다음 대회는 어딜 나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