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여행

돈황 (막고굴, 옥문관, 양관 )

 

실크로드 답사기 (돈황 : 천년의 타임캡슐 막고굴,옥문관,양관을 돌아보다.)

2010.08.06 07:05 | 여행이야기(travel) | 나그네

http://kr.blog.yahoo.com/traveler200801/1270 주소복사

5월 20일 새벽 3시경 깜깜한 새벽 유원역에 도착하니 김영수씨가 알선한 중국인 가이드가 봉고차를 갖고 마중나와 있었다.
그를 따라 돈황까지 벌판을 3시간 가량 달려서 오늘 우리가 묵을 4성급 호텔(일박 180원)에 가서 오랫만에 공중화장실이 아닌 제대로된 샤워시설에서 간단히 샤워를 했다.
행복, 사치, 온갖 문자을 다동원해도 이렇게 개운한 행복감을 표현하기 부족했다. 마치 거지가 하루 아침에 왕자가 된 느낌 이다. 중국인 가이드에게 오늘 가야할 곳을 막고굴, 옥문관, 양관으로 말하고 오늘 일정이 끝나면 돈황 야시장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일행이 8명이나되어 차 빌리는데 부담도 없고 호텔도 저렵하게 이용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때 실크로드를 몰랐으나 돈황은 알았다.
집안과 가까이 지내는 아주머니가 내가 한참 독서열에 빠져있던 중학시절 돈황이란 책을 권해서 열심히 탐독했던 기억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스토리를 말하자면  중앙아시아 변방의 소수민족출신 군인 -하급무사-의 일대기로 
그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생하다가 군인으로 출세하고 사랑하고 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당시의 보물들을 돈황 막고굴에 감춰 놓음으로  적군의 노략질에서 완벽히 보존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만일 그 소설대로 보물을 보전한 것이라면 막고굴 유물은 천년후 후세사람을 위한 타임캡슐이다.
오래 보전해야할 중요 문물들을  요즘은 밀봉 포장해서 땅에 묻지만 옛날엔 건조한 사막지대에 밀봉해서 벽으로 위장해 감춰놓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 중국 유선방송 채널을 보면 대돈황이란 드라마가 연속극으로 방영되는데 시대배경은 청나라 말에서 근대롤 넘어가는 혼란기에 돈황 유물을 빼돌려 팔아먹으려는 무리들에 대항해서 어느 역사 의식있는 화가가 무진 애를 쓴다는 스토리다.
아마  돈황 유물을 애써 지킨 조선족 화가 이낙연을 모델로 만든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쨋거나 1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보물을 훔쳐가려고 갖은 꾀를 쓰고 또 그것을 지키려고 안감힘을 쓰고 하는 일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인간은 남의 것을 탐하는 본능이 있는가보다. 

돈황은 세계 열강의 노략질 대상으로 전락되어 독일,프랑스,일본등 보물 사냥꾼들이 벽화를 떼내가는가하면 귀중한 문서는 헐값에 노략질해서 여러나라에 여기저기 흩어져 버렸다고한다.
보물 노략질꾼들은 역사학자라는 점잖은 타이틀을 달고 무식한 현지인들에 접근해서는 대개 아주 적은 돈으로 농부나 도굴군에게 값을 치루고 엄청난 보물들을 가져가서 나중에 문제가 되면 정당한 대가를 치룬 구입임을 주장한다고한다.

미로의 비너스상도 프랑스가  그리스 작은 섬에서 그것을 발견한  농부에게 푼돈을 치루고 군함을 동원하여 몰래 반출해 간 것이라하며, 우리나라 강화도에선 프랑스군인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훔쳐가서는 어물어물 이리저리 핑게를 대며 안돌려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어이없게도 오타니 콜렉션이라해서 일본 강점기에 일본인 도굴꾼 오타니가 돈황에서 훔쳐온 보물을 총독부에 기증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돈황 유물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막상 꿈에 그리던 돈황에가서 막고굴을 전문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았는데 너무 보존만 신경쓰다보니 별로 본게 없다.
굴마다 문을 잠가놓고 안내인이 문을 따 주면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게 몇군데 안된다.
만일 개방된 굴을 모두 보려면 천 위안도 넘게 돈이 든다고 하는데 아마추어 관관객들이 그렇게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 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여간 수년전에 가본 운강석굴에 비해 너무나 볼 것이 빈약했고 사진은 아예 카메라째 맡기고 들어가야 하는 식으로 운용하고있어 본 것도 빈약, 사진도 빈약. - 명성과 입장료에 비해 본것이 별로 없었다..

돈황의 한국어 안내인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학자풍의 중국인으로 한국말이 능숙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여러 굴을 걸으며 생각해 본다.
 
돈황 보물이 과연 한족의 것일까?
내 얕은 소견에 돈황은 토번 즉 장족의 땅이었던 만큼 토번이나 중아아시아 변방 소수민족의 보물이지 결코 한족의 것은 아닐거란 생각이들었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말로만 전해오던 우리니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장경동에서 1900년에 발견되었고  조선족 문화 애호가인 이낙연이 고향 길림성에서 5000km도 더 떨어진 먼 곳 돈황 유물 보존을 위해 애쓴 일들이 마치 무슨 사연이 있는 듯,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도착한 돈황 시내풍경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막고굴 가는길. 보이는 곳이 막고굴의 일부 일텐데 관람은 아예 생각도 못한다. 안내인이 데리고 가는 몇몇 곳만 볼 수 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막고굴 입구. 표를 사고 안내인을 기다리던 곳.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막고굴 안내 비석.
조성연대는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700개의 석굴을 조성하고 1900년 장경동에서 중요한 문서와 자료들이 발견되었다고 써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막고 굴 관람 통로로 들어가는 입구. 관람 전에 카메라 비슷한 것은 모두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막고굴 전경 - 여기 까지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이후 카메라가 없기때문에 눈으로만 볼 수밖에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시내 돈황 박물관 - 의외로 무료 관람. 천마 (기와를 탁본 뜸)와 연화무늬가 6천 km도 더먼 우리 것과 거의 비슷하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돈황 박물관 전경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돈황 시내 중심가.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옥문관 가는 길. 아직 사막지대가 아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옥문관 입구가 멀리 보인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옥문관.  사막에 생뚱맞게 서있는 커다란 진흙무더기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옥문관 너머를 서역이라 했다는데 보이는 것은 일직선으로 난 지평선 밖에 없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돌출 부분이 최전방 초소 흔적 이라고 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양관은 돈을 들여서 치장해 놨는데 영화 촬영을 위해 요즈음 성벽을 세웠다고 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영화 셋트장.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공성무기들. 모두 요새 만든 것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양관.  요새 만든 것이 아닌 유일한 것. 이상하게 보러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영화셋트장만 관광객이 와글와글.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서역 전망대. 회랑에서 서역땅을 멀리 바라볼수 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서역 땅을 배경으로 찍은 증명사진. 꼿꼿이 세운 비석 옆에 큰 돌 두개를 좌우로 배치해 놓았는데 재밋으라고 했는지?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잘 배치해놓은 망가진 마차와 정자가 영화의 한장면 같다. 영화 셋트장인 만큼 그럴싸하게 배치해놓았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돈황 야시장. 화려하고 볼게 많았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중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막도시 쿠처 (천산대협곡)  (0) 2011.11.09
투루판 (화염산, 천불동, 교하고성)  (0) 2011.11.09
명사산과 가욕관.  (0) 2011.11.09
란주와 병령사  (0) 2011.11.09
시안 - 병마용,화청지,진시황릉  (0) 201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