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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대로 산 돼지

인텔리의 불행(知识分子的不幸): 5/5 (完)

나의 국학(国学: 서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중국 고유의 역사, 문화, 풍속, 신앙, 제도, 예술 등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이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국학이란 단어에서 제일 겁나는 곳은 바로 국(国)이란 글자다. 이 글자가 꼭대기에 있는데, 누가 감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하겠는가?

이런 껍데기가 목을 받치고 있으니, 그것을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글자가 수천 년을 그렇게 덧씌워져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을 유혹하는 곳은 바로 이 국(国) 자인데, 이것이 제일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체의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눌러 버린 것이다. 그것은 사상 영역 안에 있는 일체의 생각에 대하여, 위세를 앞세워 교묘하게 억누르려는 불량분자들에게 막대한 유혹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역사학도 그랬었고, 철학도 그랬다는 데,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   만약 나의 이 글이 정당한 역사학자  철학자의 미움을 샀다면, 나는 깊이 사과하겠다 ----  하지만, 당신들은 당연히 그것이 몽둥이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요 문원(姚文元 1931~2005. 男, 강청 등 사인방의 하나로 반혁명 집단의 주범) 같은 유의 사상 불량배들이 계급투쟁이란 몽둥이로 무수한 사람을 때려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았는가?

현재도 어떤 사람은 다시 그럴싸하고 아름다운 몽둥이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그야말로 완벽하고 결점이 없다.

나는 그것이 사상 불량배 수중으로 떨어지면 하나의 흉기가 될 것을 걱정할 뿐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쓰일지도 걱정되었다. 이런 위험이 있음에 비추어, 나는 모두가 하느님 꿈을 꾸지 말고, 다른 성인의 꿈도 꾸지 말 것을 건의한다. 머리 위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무슨 아름다운 도덕이라 부르고, 무슨 선량함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가장 본분을 다한 고려를 하고 있다.

진지한 사색, 성실한 시비 판단, 이런 태도가 있으면, 적어도 선량하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구체적으로 말해서, 러셀이 말한 것처럼, 성공과 실패, 순조로움과 난관을 따지지 않고, 객관적 진리만을 추구한다면, 이것이 미덕(美德)이 아닌가?

지식은 그 자체가 일종의 선(善)이 아닐까? 과학 인텔리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인문 인텔리에게는 말다툼이 생겼다. 그들은 말했다. "이런 소박한 선악관(善恶观)은 상당한 죄업을 만들었다!"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잃게 했고, 과학은 또 세상을 사라지게 할 무기도 만들었다.

그렇다. 이런 생각도 옳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인문 인텔리는 사상 불량배에게 상당한 흉기와 시비(是非)가 뒤범벅된 연막탄을 만들어 주었다!

과거를 되짚어 보면, 깨끗하고 아무 죄 없는 인텔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인텔리들에게 잘 모르는 일은 참견하지 말고 내던져 두는 것이 좋다고 건의한다. 인텔리 자체의 이해(利害)에서, 문제를 고려하면  ----  이런 이해에서 출발하다 보면, 우리가 당연히 가져야 하는 어떤 도덕, 어떤 신념을 고려하게 된다. 일반 백성(우리 스스로를 포함해서)에게 이르게 되면, 당연히 어떤 이념을 주입시키게 되는데, 지도자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

나는 지도자가 위에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텔리로서 나의 신념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신념이 형성된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문학작품과 인문과학 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나아가 여행도 하고, 연애도 했는데, 이런 것들 중에 나의 신념 형성과 가치관 조성에 도움 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하나의 학문, 한 권의 책이 나의 가치관 형성에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그게 얼마큼 영향을 주든 간에, 나는 그것이 작용하기를 요구한다), 그건 배울 기치가 없는 학문이요, 볼 가치가 없는 책이다.

공개된 비밀이 하나 있는데, 어떤 인텔리든지 성공하려면, 자기의 철학과 자기의 신념이 형성되어야 한다.

톨스토이가 그랬고, 위너(1894~1964:다. 미국의 수학자, 제어이론의 아버지로 불림)가 그랬다.

지금까지, 나는 아직 내가 곧 죽는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무엇에 귀의해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 이곳을 내 일생 사업의 종결할 곳, 나의 정신의 묘지로 하겠다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기면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이 재미난 일을 생활에서 없애버린다면, 차라리 나를 거세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완벽한 신념을 갖고 있다면, 나는 매우 존중할 테지만, 그걸 나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별로 즐겁지 않을 것이다.

무식하게 비유하자면, 당신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일 수 없는데, 하물며 천하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어찌 내 아버지 일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은 반대를 불러올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늙어서도, 신념이 형성되지 않아, 자기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산다는 건 차라리 재난이다!

그러니, 사람은 반드시 보편타당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 신념에 압력을 주어, 그들의 뇌 안에 주입해야 한다!

이걸 더 이상 이데올로기라 부르지 못한다면, 무엇을 이데올로기라 부를 것인가.

만약 당신이 우리 교수님처럼 처음부터 다 갖추고 있다면, 나도 뇌가 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전부 어리석지는 않으니, 언제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도대체 누구에게 주입시켜야 하나? 얼마큼 압력을 주어야 하나? 다른  사람에게만 주입시키는지, 아니면 당신까지 포함시키는지?

이것저것 주입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모두 멍청이가 되지는 않을까?

과학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당신은 우리 십몇억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는 둥지를 소란스럽게 하는데, 도대체 어쩌려고....

※ 1996년 제2기 <东方 > 잡지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