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잡지 제1기에 실린 왕 리씨웅(王力雄 : 1953~, 작가, 사회 이론가) 선생의 대작 <타락에의 갈망(渴望堕落)>을 보니 매우 재미있었다.
나는 왕 선생의 몇몇 관점들에는 동의하나, 나는 본질적으로 왕 선생과 대립된 입장에 있고, 왕 선생의 태도에는 계속 반대하고 있다.
나는 왕 선생의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 직필(直筆) 풍격을 좋아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의 그런 근엄한 필치를 흉내 낼 수 없다.
一, 인텔리의 죄목. 1, 신성모독
왕 선생이 말한 것처럼, 현재 일부 인텔리들은 도덕 직무를 포기하고, 전통 가치관의 속박에서 벗어나, "건달패"가 되어 가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언어가 거칠고 속되며, 이상(理想)을 버렸고, 후안무치하며, 신성(神聖)을 모독했다.
나는 인텔리의 언어는 분명히 점잖아야 하며, 관심 가지는 일도 당연히 일반 대중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인텔리 지엽말단에 해당하는 일이고, 인텔리의 다른 진정한 직책은 과학과 문화에 대한 공헌에 있다.
그런데 이런 공헌은 도덕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심지어 '과학과 도덕은 근본적으로 관계가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찰스 다윈은 기독교 사회에 진화론을 제기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부도덕하다고 했다.
우리는 방관자로서,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의 과학 이론은, 옳다 그르다만 말할 수 있을 뿐, 도덕을 내세워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성직자라면, 필연적으로 다윈이 신성을 모독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머릿속이 신성으로 가득 찬 교조적인 사람은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해야지, 인텔리, 적어도 일류 인텔리가 되기에 부적합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학자로서, 과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면, 거기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스승 한 분은 중국인의 과학에 대한 인식은 초보적 단계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과학자를 홍수나 사나운 짐승같이 여겼다. 그들은 전봇대를 뽑아버리고, 철로를 훼손(의화단의 소행) 했으며, 과학을 계속 마술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몇 가지 학문을 배우는 것은 배(船)를 튼튼하게 만들고 대포를 잘 쏘게 하려는 것이라 여겼다.
나중에 와서는, 중국인들은 과학을 신성한 종교로 보았으며, 그 앞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어른이 성공한 역사학자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과학이란 부단한 연구 과정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지막에 체득한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텔리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일생 동안 종사할, 일이란, 부단한 연구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머리 숙여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로서, 뉴턴의 만유인력을 신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로소 상대성 이론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인텔리로서 말한다면, 지식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하자면, 진실, 신뢰, 완벽, 여기서 그칠 뿐이다.
게다가 지식이란 것은 더욱 신성시 할 것이 없다.
그러니, 인텔리의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신성을 모독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를 보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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