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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대로 산 돼지

인텔리의 불행(知识分子的不幸): 1/5

 

초서(1342~1400: 셰익스피어 이전의 영국 대표 작가)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무사가 중범죄를 짓자, 국왕은 왕후에게 그의 처벌을 일임했다. 왕후는 그에 게에게 문제를 하나 내고, 대답할 것을 명했다.

"여자의 제일 큰 염원은 무엇인가?"

무사는 그 자리에서 답을 할 수 없었다. 왕후는 그에게 대답할 기한을 주고, 기한이 끝날 때까지 대답을 못하면 그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무사는 천애 절벽 끝에 가서 대답을 구했다. 그래서 끝내 대답을 찾아내어, 자기 머리를 목 위에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만약에, 답을 찾지 못했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 답이 과연 정답이 맞는지, 전체 귀부인들의 토론을 거쳤다고 한다. 답은, "여자의 제일 큰 염원은 바로 누군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오늘날이라면, 여권 주의자들은 아마, 이와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세기에는, 이 답은 만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도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인텔리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정답도 갖고 있으며, 내 딴에는 전 세계 인텔리들의 질문이라도 견뎌낼 것이라 여긴다.

답은 이렇다. "인텔리는 반(反) 이성(不理智)의 시대에 사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소위 반 이성의 시대란, 바로 갈릴레오가 죄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며,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인정한 시대이다.

또한, 라부아지에(1743~1794 : 현대 화학의 창시자, 프랑스 화학자)가 단두대에 올랐던 시대이며, 츠바이즈(1881~1942: 오스트리아 작가, 작품: 모르는 여인에게서 온 편지)가 음독자살한 시대이며, 라오셔(老舍: 1889~1966: 북경 출생 만주족 저명 작가, 대표작 "찻집". 홍위병의 폭력을 참지 못하고 북경, 태평호에 투신자살, 1978년 인민예술가로 복권)가 태평호에 뛰어들었던 시대이다.

나는 인텔리의 장점은 남을 이치에 맞게 설복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텔리가 만약 이치를 무시한다면, 장점은 없어지고 단점만 남게 되어, 살아있는 의의가 없어, 죽느니만 못하다.

덴마크 왕자 햄릿이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인텔리가 만난 이런 시대는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불운한 시대가 언제 지나가려나'였다.

만약, 이해에 지나갈 수 있다면, 사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다면 더 이상  끌 필요가 없게 된다.

라오셔 선생이 자살한 시대, 그때 나는 이미 철이 들었고, 적지 않은 인텔리를 알았다. 비록 당시 어린애였지만, 입이 무거워, 그들과 같이 대화하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내가 알기로는,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좋은 시절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해에 죽은 인텔리는 피살되지 않았다 해도, 틀림없이 좋은 시절을 만날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는 좋은 시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  당연히 세월이 좋게 바뀌거나, 다시는 인텔리라는 유형에 속하게 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내 대답에 대해 자신감이 넘친다. 이일을 가지고 천하 사람들과 감히 내기를 걸 수도 있다.

인텔리의 최대의 불행은 바로 이런 반(反) 이성이다.

다음 문제로 우리는 반 이성을 얘기해 보자.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  대하여 나는 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걸로 내기를 걸지는 않겠다. 이유는 상대방이 지고도 돈을 떼어먹을까 봐서이다.

이런 반 이성은 결국 가치관 혹은 신앙의 영역에서 기원한다.

아주 먼 옛날은 아니다. 어떤 외국 소설가에게, 그의 작품이 어떤 신앙에 위배된다고 해서 그를 살해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이름을 숨기고 숨어버렸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어찌 보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언제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쓴 소설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면, 그건 반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이 명령은 취소되었고, 이 소설가는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부커 상(영어로 작품을 쓰는 영연방 소설가 상)까지 노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각종 신앙에 대하여, 나는 결코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확고한 신앙인에 대하여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광신(狂信)이 가져오는 편집과 반 이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한 편의 노래 가사가 있는데 이 의의를 잘 설명해 준다.

대해를 뛰어넘으니, 해면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고산을 뛰어넘으니 벌판에 시체가 나뒹군다.

천황을 위해 한 목숨 바치리.

죽으면 돌아가겠지.

이것은 일본 군가의 가사다. 그중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은, 천황에 대한 광신이 가장 반 이성적으로 죽음을 바라도록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텔리가 노래에 나오는 풍경에 대하여 원망이 극에 달한 것 외에 더 이상 다른 평가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다른 광신의 노래가 있는데 가사는 아래와 같다.

무산계급 문화 대혁명

그거 좋지

그거 좋다니까 그거 좋지

그거 좋지....

여기 나오는 네 개의 "그거 좋지"라는 의심할 나위 없이, 어떠한 이치의 가능성도 근절시켜 버린다. 광신 때문에 사람이 이치를 따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 개인은, 이치에 닿지 않는 주장은 시체가 나뒹구는 벌판보다 더 엉망이고, 이치에 닿지 않은 주장이 다다를 곳은 틀림없이 시체가 나뒹구는 벌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대혁명" 때, 죽은 사람이 적지 않았고, 전 인민의 지식수준은 크게 퇴보하였다.

※ 라부아지에 : 1743~1794: 프랑스 화학자 

연금술에서 화학을 독립 학문으로 만든 인물로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산소의 발견, 질량보존의 법칙 발견, 현대 미터법을 주도한 인물이며 당시 알려진 33개의 원소로 주기율표도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러시아인 멘델레예프가 이를 보완 63개의 원소를 배열 주기율표를 완성)

세금 징수원이었던 관계로 프랑스 대중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원성의 대상이어서 공포정치 시대에 불법 징세 죄목으로 체포되어 50세에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화학 실험에 썼다고 하며, 다이아몬드를 태운 일화로 유명하다.

* 그는 28세 때 15살 적은 친구의 딸 (당시 13세) 마리 안과 결혼했는데, 괴팍한 부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처지의 친구 딸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부인과 금슬이 매우 좋아 같이 실험을 하며, 연애를 했다는 말까지 있다. 그의 부인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고를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그의 업적을 세상에 알렸다.

* 그의 조수였던 듀폰은 미국으로 가서  화학 회사를 설립했는데, 바로  세계 굴지의 기업 듀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