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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대로 산 돼지

문화 논쟁 (文化之争): 3/3 (完)

 

이제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기로 하자.

러셀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과 사람은 불평등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지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식의 차이 때문에 권력이 생겨난다.

세계 모든 사람이 무지하다고 가정하고,  어떤 전지전능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고대의 성현과 현대의 과학자를 상호 비교하면, 지식을 탐구하는 열정은 서로 비슷하게 갖고 있다. 성현 중에서, 특히 주희(朱熹: 1130~1200, 宋代 이학의 집대성자. 주자라고 불림)를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지식을 구하는 열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첫째가는 사람이었다.

과학자와 성현의 차이점은, 과학자는 지식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증명도 같이 구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증명은 지식인들을 다 이해시켰고, 그들은 이 때문에 권력을 상실했다.

그것과 비교해서, 성현들은 자기들만 빼어나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들 자신은 매우 빠르게 모두 알고  모두 깨닫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바꿔 말해서 "내성(内圣: 깨달음이 성인의 경지에 이름)"의 경계에 다다랐다. 오직 이런 지식과 깨달음이 과연 믿을만한 것인지는 문제가 되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내성과 외왕( 外王: 왕도를 펼침)은 언제나 하나로 연결된다. 만약 성현이 내성에 급급했다면, 그건 외왕을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아무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의 내심의 세계의 잘못됨을 추측해서 하는 말 이기는 하다.

다행히, 주희의 말이 증거가 된다. 그도 인정했지만, 자신이 사물의 도리를 파고들어 지식을 명확히 하려고 한 것은(格物治知), 집안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잘 다스린 다음, 세상을 평정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였다.(齐家治国平天下)

현재, 만약 내가 유가(孺家)의 도덕철학과 윤리학이 전혀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또한 근거가 없다. 나는 심지어 이런 것들이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지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지식에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이런 지식을 따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것을 이용해서 승려의 권력을 약탈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을 발명한 사람들을 말하자면, 공자(기원전 551~479), 맹자(기원전 372~289)를 가리키며 주희(1130~1200)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무고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력을 획득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더욱 이런 권력을 즐기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도 여전히 어떤 사람이 이런 지식의 부흥을 통하여 이런 권력을 획득하려 한다면, 그들에게 맹자의 말을 해주고 싶다.

"수치를 모르는 수치야말로, 정말  수치스러운 것이다.(无耻之耻无耻矣).

당연히, 어느 사람은 '국학(国学: 중국 고유의 학문)을 부흥시키려는 것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진흥시키기 위함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제일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고, 나아가 자기의 소임을 위하여 세상을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나는 기껏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이렇게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자기를 알리려는 것은 나의 풍격이 아니다."

동시에 나는 승려의 권력이 또 문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승려의 권력이 적나라하게 포악하게 구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 이는 나도  인정한다. 허위는 원래부터 폭력보다는 낫다.

하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20세기 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간절히 바랄 이유가 있다.

당연히, 나의 이런 갈망에 대하여 다시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니까 당신도 여기 어울려! ----  이후에는 나는 때때로 흐느끼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 승려(僧侶)의 권력 : 본문에서 서양의 승려라는 표현은 가톨릭 수도자를 말한다. 중세 서양에서는 교회와 교황의 권력이 매우 컸으며, 본문에서 말하는 승려의 권력이란 가톨릭교회의 권력을 통칭하여 승려의 권력이라 표현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도 고대의 통치자들이 유학 경전을 받들어,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따라서 유학 인텔리들을 숭상하게 되었고, 이들의 정치적 위세가 높았다. 본문에서도 이를 지적하여 유학자들이 승려의 권력을 약탈했다고  표현하였다.

*참조. 바이두(百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