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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대로 산 돼지

유치한 상태를 벗어나자 (摆脱董稚状态): 1/4

죤 개그넌

 

이은하(李银河)가 번역한, 존개그넌(JohnH Gagnon 1931~2016)의 <성(性) 사회학> 책  제17장 "성 환경"에서 그는 미국의 성적 내용이 포함된 작품, 검열제도의 변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하였고, 그 때문에  그 장은 가장 주목받는 장(章)이 되었다.

미국은 2차 대전 전까지 "외설 작품"에 대하여 최고로 엄하게 검열하면서, 진정한 외설 작품에 대하여 탄압을 그치지 않았다. 여기 해당된 작가들의 예를 들자면, 헤밍웨이, 레마르크의 작품들 중에도 금서로 지정된 작품들이 있었을 뿐만 하니라, 심지어는 레프 톨스토이의 "도학(道学)"조차도 금서 명단에 올랐다.

1920년대, 미국의 금서 명단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스>, 로렌스의 <연애 중인 여자> 등등도 올라있었고, 라파리스의 <아라비아의 밤>과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역시 겨우 발췌본으로 출간될 수 있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마침 내가 들고 있던 국내 출판 <서부전선 이상 없다> 역시 발췌본이었는데, 허겁지겁 줄여놓은 티가 역력했다.

이런 유사점은 단순한 재미에서뿐만이 아니다. 전에 우리들은 국내의 간행물과 영화 TV에 지나치게 민감한 내용들이 있었을 때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중국과 외국은 정서가 다르고, 사회제도가 다른 것에 원인을 돌렸다.

만약 미국의 1930년대와 현재의 중국을 비교해 본다면, 새로운 단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 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은 외설 작품 검열을 천천히 상승시키는 추세였다. 한쪽에서는 성(性)을 주제로 한 작품을 결사적으로 억제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고전문학 가운데서도 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끊임없이, 대량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연방 정부에서 각주, 시정부에 이르기까지, 놀랄 만큼 방대한 금서 명단이 만들어졌다.

난처해진 것은 상술한 작가들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희극 역시 겨우 발췌본을 통해서 청소년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성경>에서는 <아가> 서를 빼 버렸고,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도 외설적인 내용을 빼 버렸다. 그 결과, 이이들이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규제를 받는 것은 간행물 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TV, 역시 검열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영화, TV에서는 창녀, 장시간의 성애 표현이 금지되었고, 나체, 마약, 혼혈아, 성병, 출산과 성직자에 대한 조소 장면이 금지되었다.

당시 엄격한 검열제도에도 나름대로 이론이 있었다. 이 이론은 일제의 성에 대한 공개적인(비 유책성) 토론조차도 모두 성적 활동의 범람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에는 성 지식을 성행위의 전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성 충동은 너무나 강대하며, 자극받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표출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이 이론과 서로 보완적인 다른 이론은, 성(性)은 위험하다, 사람은 충동에 약하다, 반드시 성을 억제시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같은 것들이다.

이런 관점과 시대 조류 하에서, 문학작품에 대해서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점은  정말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청소년의 범죄와 외설 서적, 에로 비디오테이프는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몇몇 학부형들은 이이들이 성 관련 간행물을 보는 것이 학습에 영향을 준다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성적 내용이 들어간 간행물, 비디오테이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관점은 과학적 훈련이 결여된 사람이 제기한 것으로, 혼란스럽고 불명확한 곳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 미국에서는 이 이론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설이지만, 반드시 검증을 받아야만 성립될 수 있다고 하였다. 거기다 그것은 또 입증되기 힘든 가설로, 정의가 불분명하며, 검증 방법을 설계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나는 간행물에서 통계 숫자들을 보았는데, 상당히 많은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퇴폐"간행물  혹은 외설 테이프를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론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유효한 이론을 세우려면, "퇴폐"간행물을 본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질렀어야 한다.

확률 이론상 이것은 두 가지 다른 검증할 수 없는 확률이며, 확정된 관계도 없을뿐더러 상호 대체도 충분치 않다.

학부형들이 아이들이 성 관련 간행물을 보면 학습에 지장이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이런 인과 모형을 제기하였다 ---- "어떤 간행물을 본다 > 그 결과 학습에 영향을 받는다."

경험 많은 사회학자들은, 하나의 믿을 수 있는 인과모형을 세우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데 모두 동의한다.

앞에서 기술한  학부형의 원망을 예로 들면, 먼저 증명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가 우선 어떤 간행물을 보아야 하고, 그러고 나서, 성적이 떨어져야 한다.

그다음, 당신이 증명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아이가 어떤 간행물을 보는데 영향을 끼친 요소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학습이 영향을 받아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이 두 가지 일에 영향을 주는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아이의 성숙이다.

그래서 앞에 말한, 학부형의 원망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영양도 좋고, 성(性) 적인 성숙도 빠르다. 성 지식에 대한 수요도 그들의 부모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우려를 조성하는 한 가지 원인이다.

만일 학부형이 아이들에게 영양가 없는 찐빵과 짠지만 먹인다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성 성숙 기를 늦게 오도록 할 테니까)

이상의 논술에서 설명하려는 것은, 외설 작품이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작용에 대하여 대중이 상식적인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과 전문가가 만들어내는 결론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전문가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