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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대로 산 돼지

적극적 결론(积极的结论) (四) - 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 표지)

 

이제 불혹(40 세)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자, 나는 내에게 제일 알맞은 일은 집안에 숨어서, 글을 쓰는 일이란 걸 알았다. 이것은 한편으론 나의 성격이 군중과는 별로 맞지 않고, 다른 한편은 나는 시종 낙관과 긍정을 동경해 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앞에는 두 가지의 논의할 영 맥이 있다. 하나는 성실히 대처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유머감이 필요하다.

최대한의 긍정과 낙관은 뒤에 있는 유머강의 영역에 있다.

나는 소(牛) 토마토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엮기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믿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내가 머리가 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고, 하지 않고, 나도 옳고 그름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말리려는 것이다.

만약 "진실"이라는  영역을 나에게 설명하라고 한다면, 만약 옳으면 나도 옳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절대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는 것이다.

< 성경 >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면, 위선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당연히 나에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나도 입을 닫을 것이다.

세상에 오직 두 개의 영역만 있다고 가정하면, 나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는 성실하게 일을 할 수 있. 고, 또 유머감도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그밖에 제3의 영역이 있다. 나는 거기서 발생한 일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럽다.

친구가  자기가 쓴 책을 보내 주었다. 밀란 쿤데라(체코 소설가 1929.4~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에 관한 책인데, 쿤데라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 있었다.

"구 소련,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맹. 나는 거기에서 진실과 유머 두 방면에서 오는 도전을 느꼈다."

만약에 쿤데라가 사람들에게 글자의 의미를 가르치는 거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 말은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특별한 비유적인 의미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염려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유적인 의미가 없다면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이 말이 웃기는지 안 웃기는지는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에게 맡긴다.

그밖에, 책에는 자주 "어떤(某种) 주의(主义)"라는 언급이 있었다. 그 말은 특별한 비유적 의미도 없고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그 친구와 얼굴을 마주 보고 그게 무슨 말인지 가르쳐 달라고 하니, 그녀는 화가 나서 목이 메었다.

원고 안에, "구 소련"이란 단락은 매우 길면서도 미묘한 운치가 넘쳤지만, 압력을 받아 글이 이렇게 짧아졌다고 한다. 기왕에 삭제되어버려서 나도 인용할 수 없다. "어떤 주의"라고 쓴  것은,  원래 "독재주의"였는데, 모두 그렇게 편집되어 바뀐 것이라고 한다.

나의 다른 한 친구는, 편집해서 바꿀 수 없도록, 독재주의(极权主义)라는 말을 아예 전제주의(全体主义)라고 고쳐 썼다. 그래서 "독재국가"는 바로 "전체 국가"가 되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렇게 멋대로 꾸며대면 무엇이라도 생겨날 수 있다.

영어로 보면, 이건 그대로 맞는 말이지만, 중국어로 보면, 전체라는 말은  모두 문맹 퇴치 대상으로 사라져야 한다.

당연히, 이런 수정과 생략은 진실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유머감도 없다.

내가 쓴 원고도 어느 때는 비판을 당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진실도 아니고 , 웃기지도 않는다.

이 밖에 세 번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善: 착함)"이다. 선은 대단히 좋은 것으로 이론상,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나 자신도 젊었을 때는 그랬고, 나는 하나의 기묘한 신세계를 만났다.

현재 젊은 사람들에게 소위 기묘한 신세계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역사적 각도에서 문제를 보았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다른 개념을 같은 개념인 양 사용했다. 이것이 우리 세대 사람들의 품행이다.

사실 역사상으로 보면, 이 세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매우 실망했다. 나는 대단히 적극적 결론을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새로운 것은 낡은 것보다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등(东)은 서(西) 보다 적극적이라고 하는 것처럼 의미 없는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시내 서쪽 구역에 살았는데, 괜히 동쪽 구역에 사는 사람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나는 지금 40세이니, 막 태어난 아기에 비해서, 당연히 적극적인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젊었을 때, 모든 일을 옳다, 그르다 하는 이분법으로 가를 수 있기만 하면, 또 주요 방면에서 이걸 찾아낼 수 있다면, 매우 총명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현재 나는 다른 것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총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점에서 내가 총명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

기묘한 신세계에 대하여도 결론을 내자.

나는 이것이 "전진(前进) 중의 곡절(曲折)"이고, 또한 몇몇 나쁜 인간들이 뒤에서 장난쳤다는데 동의한다.

불교신자들은 아수라가 있다고 믿고, 기독교 신자들은 사탄이 있다고 믿으며,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악인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전략적이고, 역사적인 각도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각도에서 보았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괴상한 결론을 내렸다.

내가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든, 그건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기묘한 신세계란 나에게는 바로 "운명"이다. 나는 운명이 나쁘다고 원망하지 않았고, 운이 매우 좋다고 믿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적극적인 결론이다.

이런 운명을 갖고 있었으니, 나는 언제나 참지 못하고 바보처럼 하하 웃었고, 게다가 내가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 대단히 안 좋은 것이다. 유머감을 없애버린 후, 과거의 세월에서, 나는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말썽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비로소 이성(理性)의 궤도(轨道) 안에 있게 된다."

< 중국 청년  연구 > 잡지, 1994년제4기에 게재

 

 

* 전진 (前进) 중의 곡절(曲折) : 중국 헌법 제정 시, 일부에게 좋은 것보다, 정부와 인민을 지켜주어야 좋은 것이라는 이념을 설명하며 사용한 말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밀란 쿤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