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정치위원이 말했다. "아주머니, 당신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와 같이 대대본부로 갑시다."
모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요. 죽더라도 우리 집 온돌 위에서 죽을 거예요."
장 정치위원이 손을 휘두르자 한 떼의 병사들이 모친 주위를 에워쌌다. 모친이 소리쳤다. "주여, 저희들을 굽어 살피소서."
우리 집 식구들은 쓰마집안의 거실 옆, 쪽방에 갇혔다.
문 앞에는 보초가 섰다.
이웃하고 있는 거실에는 가스등이 환하게 켜 있었고,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을 밖에서 한바탕 콩 볶듯, 총소리가 들려왔다.
장 정치위원은 유리 남포등을 들고, 느긋하게 들어왔다.
남포등 유리 구멍에서 뿜어 나온 검은 연기가 매위서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남포등을 자단목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고급 가구용 목재) 탁자 위에 놓고 우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왜들 일어서 있어요? 앉아요, 앉아."
그는 벽을 둘러싸고 있는 자단목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머니, 당신 둘째 사위네 집은 정말 겉치레가 심하네요."
그는 자신이 먼저 의자에 앉으며 약간 빈정거리는 시선으로 우리를 보았다.
큰 누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장 정치위원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화난 듯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장 정치위원님, 신(神)을 불러내는 건 쉽지만, 신을 돌려보내기는 어려운 거예요!"
장이 웃으며 말했다. "신을 가까스로 불러 냈는데, 뭐 하러 도로 돌려보내요?"
큰 누나가 말했다. "엄마, 앉아요. 엄마가 여기 앉아계시기만 해도 그들이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예요."
장 정치위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앉으세요."
모친은 샤자오화를 안고, 벽 모퉁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와 여덟째 누나는 모친의 옷자락을 잡고 의자에 바짝 붙어서 일어섰다.
쓰마 집안의 도련님은 여섯째 누나의 어깨 죽지 위에서 고개를 꼬며 입에서 침이 흘렀다.
여섯째 누나는 졸려 죽겠는지 몸이 꾸벅꾸벅 흔들렸다.
모친이 그녀를 끌어다 앉히자, 그녀가 눈을 번쩍 뜨며, 잠에 곯아떨어진 소리를 냈다.
장 정치위원이 권련 한 개비를 꺼내 담배 끝을 엄지 손가락 손톱에 놓고 잠시 가만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졌는데 성냥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성냥을 찾지 못하자, 큰 누나는 고소하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그는 남포불 앞으로 가, 입에 담배를 물고 등불 위쪽에 대고 뻑뻑 빨아들였다. 불꽃이 남포 안에서 위아래로 솟구치며 끌어당겨졌고, 담배 끝이 빨개지면서 밝게 빛났다.
그가 머리를 들고,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며 입술을 꼭 다물자 콧구멍에서 두 줄기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을 밖에서 '쾅, 쾅'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진동으로 창문의 나무 격자가 '덜그럭 덜그럭' 거렸다.
여기저기서 화광이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소리가 이따금은 어렴풋이 들렸다가 이따금은 이상스럽게 분명히 들렸다.
장 정치위원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도전하듯 라이디를 쏘아보았다.
라이디는 엉덩이 아래에 무슨 뾰족한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갸웃거렸고, 그 바람에 의자 다리가 흔들거리면서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그녀는 얼굴색이 창백해졌고, 의자 팔걸이의 두 손이 계속 덜덜 떨렸다.
"샤 여단장의 기병중대가 우리의 지뢰 진지로 돌진해 왔어요."
장 정치위원이 애석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아까운 수십필의 말."
"당신... 당신들 상상이에요..." 큰누나는 두 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짚고 일어섰다.
그때 한층 밀집된 폭발음이 그녀를 의자에 눌러 앉혔다.
장 정치위원이 일어서서 여유롭게 쪽방과 거실 사이의 바둑무늬 격자 칸막이 벽을 두드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거 전부 적송(赤松) 아니야? 쓰마 집안의 대 저택에 얼마나 많은 목재가 소모된 거야?"
그는 고개를 들고 큰 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많은 목재가 들었겠소? 대들보, 들보, 문창, 바닥, 나무 칸막이, 탁자, 의자, 긴 의자...."
큰누나는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를 비비 꼬았다.
"커다란 삼림 하나의 목재를 소비한 거요!"
장 정치위원은 가슴 아픈 듯 말했는데 마치 그의 눈앞에 가상의 삼림이 마구 남벌되어 어지러워진 정경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은 조만간에 따져봐야 할 거요." 그는 실망스럽게 말하며, 삼림을 남벌한 것을 기억 너머로 던져버렸다.
그는 큰 누나 앞으로 와서 두 다리를 A자로 벌리고, 오른손을 허리에 붙여 팔꿈치가 예각이 되게 뻗뻗하게 폈다.
"당연히 우리는 샤우에량과 죽기 살기로 매국노 질을 하는 자들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소. 그는 영광스러운 항일 이력이 있어요. 우리는 그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여, 서로 동지라고 부르게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소.
샤씨 마나님, 잠시 후에 우린 그를 잡을 건데, 당신이 그를 잘 설득시켜 주시오."
큰 누나는 힘없이 몸을 의자 등에 기대며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그를 잡을 수 없어요! 그런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의 미국제 지프차는 말(马) 보다 빨라요!"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겠소?"장 정치위원이 말했다.
그는 예각 팔을 내리고, 두 다리의 자세도 바꿨다.
그는 담배를 한 가치 꺼내 상관라이디에게 주었다.
라이디의 몸이 본능적으로 뒤로 움츠러들자, 그는 담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장 정치위원 얼굴에 나타난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심오한 미소를 보았다. 그녀는 괜히 주눅이 들어, 한 손을 내밀어 담배에 찌들어 노랗게 된 두 개의 손가락을 펴서 담배를 잡았다.
장 정치위원은 손에 있는 반 가치의 담배를 입가에 놓고 담뱃재를 불어 불꽃이 활활 타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빨개진 담배꽁초를 라이디에게 보냈다.
라이디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장정치위원을 한번 보았다.
장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라이디는 정신없이 담배를 물고,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입에 문 담배가 장 정치위원의 손에 있는 불꽃에 닿게 했다.
우리는 그녀가 입술로 담배를 뻑뻑 빠는 소리를 들었다.
모친은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여섯째 누나와 쓰마 집안의 도련님은 잠이 반쯤 깨어있었고 샤자오화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담배연기가 큰 누나의 얼굴에 솟구쳤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몸 뒤로 젖혔다. 그녀는 가슴이 피폐하여 움푹 들어갔다. 그녀의 담배를 낀 손가락은 축축해서, 마치 막 물속에서 건져 낸 두 마리의 미꾸라지 같았다. 담배꽁초의 불은 빠르게 그녀의 입 가까이까지 타 들이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입가에는 몇 가닥의 깊은 주름이 있었으며, 눈 주위에는 두 덩어리의 자색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장 정치위원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천천히 사라졌는데, 마치 뜨거운 철판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사방에서 중앙으로 수축되며 바늘 크기의 한 점으로 모여서 쌩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손에 있던 거의 손가락 끝까지 타 들어간 담배꽁초를 던져버리고 발끝으로 비볐다.
그런 다음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옆 거실에서 그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샤우에량을 사로잡아야 해. 그가 만약 쥐굴로 들어간다면 그를 파내야 되는 거야. 알았어?"
이어서 수화기를 전화기에 놓는 찰카닥 소리 났다.
모친은 마치 뼈가 뽑힌 것처럼 의자에 맥없이 앉아있는 큰 누나를 불쌍히 바라보았다.
모친은 그녀에게 가까이 가서 그녀의 담배로 까맣게 찌든 손을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큰 누나는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모친의 다리를 안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입술을 들먹이자, 기괴한 소리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막 소리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녀가 웃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곧바로 그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눈물 콧물이 모친의 다리를 적셨다.
그녀가 말했다. "엄마, 사실 나는 한시도 엄마와 동생들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모친이 말했다. "후회하냐?"
큰 누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모친이 말했다. "그게 좋다.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거야. 후회하면 하나님이 노하시지."
모친이 샤자오화를 큰 누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애를 보아라."
큰 누나는 샤자오화의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엄마, 만약 그들이 나를 총살시키면, 이 애는 엄마가 길러주세요."
모친이 말했다. "그들은 너를 총살시키지 않을 거야. 이 애는 네가 꼭 기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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