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P. 스노우(영국 과학자, 작가)의 <두 문화>를 읽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사례는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가령, 스노우는 인텔리를 과학 인텔 리와 문학(인문) 인텔리의 두 종류로 나누고, 거기에 더하며, 세상에는 두 가지 문화가 있는데 하나는 과학 문화이고, 하나는 문학(인문) 문화라고 하였다.
그는, 현재 인텔리가 하는 일마다 반드시, 그 둘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노우의 책과 단지 조금의 관계가 있다.
그것은, 나는 두 문화를 함께 합쳐야 하며, 인류의 앞날이 거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다지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이 두 문화 활동을 창조하는 것은 ---- 인류의 사색으로, 거기에 정말 인류의 앞날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유르스나르(1903~1987:프랑스 여류 작가, 대표작, 환상의 낙원 등) 여사는 아드리안의 입을 빌려 말하기를, 한 사람이 작품을 쓰거나 계획할 때는, 성별을 초월하고, 심지어 인류까지 초월한다 ---- 당신도 작품을 쓰거나 계획할 때, 바로 사색에 잠기지 않는가?
사색에 인류의 앞날이 달려있다. 이 때문에 사색하는 사람은 현세의 인류를 초월할 수 있다.
이 말은 지나치게 간단하지만, 대단히 잘한 말이다.
실제로, 창작과 계획마다 모두 인류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많이 볼 수 없지만,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어떤 일이 떠올랐는데, 얼핏 보면 주제와 많이 멀다.
1980년대, 미국은 한 계획을 채택했다.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라도, 최단 시간 내에 에이즈를 정복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계획이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을 뿐이라 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탁월한 치료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말해주는 것은, 끝없이 돈을 퍼붓는다 해도, 반드시 획기적인 발견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상, 어떤 천재의 발견도 모두 금전이 직접 작용한 결과는 아니었다.
금전, 권력, 이런 것들은, 요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고, 또 인류 생활의 한 면이지만, 또 다른 면도 있다.
천재의 발견을 말하자면, 우리는 천재, 영감, 우연한 영민함, 순간적인 기지 등등을 말한다. 이런 일들은 결코 어떤 사람이 돈이 있거나, 승진을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오직 가쁘게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침묵 속의 사색이 인류가 생활하는 또 다른 일면이라는 것이다.
암을 정복하려던 것을 예로 들면, 과학자는 묵묵히 과학을 생각하며, 과학을 만들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치료법이 발견되고, 이 문제가 철저히 해결되는 것이다.
어떤 기간을 정해놓고, 얼마든지 돈을 쓰라 한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과학 기술에 대하여 말하자면, 자금과 설비도 물론 중요하지만, 천재의 생각이 여전히 중요한 동력이다.
하나의 발견 또는 발명으로 많은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으나, 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필요한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색은 하나의 대문이다. 현 세에 없는 것과도 통하고, 현재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곳까지 통한다.
과학의 예로 보면, 이런 이치는 너무나 명백하다.
과학 인텔리는 자기가 하는 일이 인류의 일을 뛰어넘는다고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인문 인텔리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
문학예술을 예로 들면, 우리는 그것이 사회를 향하고, 생활을 향할 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민족 문화 등등을 선양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말을 하면 할수록 역할은 작아진다.
문학예술 등등은, 물론 현세의 사람들이 감상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현재에도 여전히 공연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영국의 관점에서 출발했는데, 오늘날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학의 성과는 여러 가지를 현재 인류가 이미 써먹고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써먹지 않는 것들도 꽤 많다.
만약, 사람들이 써먹지 않는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과학은 과학이라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한번은 수학 교수가 강의 도중 말했다.
"내가 현재 가르치는 수학은 어쩌면 당신들이 일생 동안 써먹을 데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지식들은 좋은 것이니, 당연히 여러분도 알아야 한다."
이 교수님의 도량은 높고 원대해서, 나는 평생 탄복하고 있다.
이런 도량은, 중국 인문 인텔리 가운데서는 매우 보기 힘들다는 말도 아울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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