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학문 연구를 하는 일과 학문 연구를 하는 사람에 대하여 흥미를 가졌지, 학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모든 과목을 이렇게 공부를 했지만, 성적은 뜻밖에 모두 A를 받았다. 단 한 과목만 예외였는데, 그것이 바로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 과목이었다. 내가 배우던 시절에는 종이에 구멍을 뚫는 펀칭까지 해야 했으니 얼마나 재미없었겠는가?
이 학과에는 유명한 사람의 재미있는 일화도 없었다. 기껏 이 학과의 창시자인 튜링 선생이 동성애자였고, 그것이 발각되자 자살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에 흥미가 없었고, 받은 점수도 모두 C였다.
하지만 현재, 나는 자주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관련 책자를 사보기도 하고, 최신 기술 진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용할 때 쩔쩔 매는 일은 없다.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쓰는데, 남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익숙하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이유 덕분에 , 나는 프로그래밍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드시, 어떤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대하여 흥미를 갖는다는 것과 학문 자체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 작은 글은 내 심리 변화 과정을 쓰려는 것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일이 이 과정에서 연관되어, 그것도 쓰기로 했다.
"문화 대혁명" 한창때, 내 형이 오랫동안 보지 못한 동창을 보러 갔다.
그의 방으로 들어가서, 형은 깜짝 놀랐다.
방 한쪽 벽면에 거대한 세계지도가 꽉 차게 걸려있었던 것이다.
동창은 파란색 중국 두루마기를 가 걸치고, 발에는 까만 천 신발을 꿰차고, 손에는 빨간 연필, 파란 연필을 들고 흔들면서, 집안을 천천히 거닐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무엇에 취해서 그랬는지, 형의 출현을 보고도 알지 못했다.
형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람은 당시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만약 빨강 파랑 연필만 안 들었더라면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위대한 영도자가 안원(安源: 강서성의 파업이 났던 광산촌)에 갔을 때의 그림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형은 꾹 참고 기다렸다가,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뭐 좀 물어보자-----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는 노인네처럼 형을 무시하더니 다시 두 바퀴를 더 돌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쉿! 난 지금 세계혁명의 전략 문제를 구상하는 거야."
나중에 형이 집으로 돌아와서 얼굴이 벌게져서 이일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우리 두 형제는 포복절도했는데, 어찌 웃었던지 나중에는 배가 아팠다.
러셀과 프레이저는 논리학을 연구했다. 그들은 논리학 자체에 흥미를 가졌으며, 논리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것은 바로 모주석(毛主席: 모택동)이 혁명사업에 투신하고, 혁명 자체에 흥미를 갖고, 중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 것과 같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이런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업적을 남기게 되며, 사람들은 매우 흥미를 가지게 된다. 만약 문제 자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면, 그건 상당히 요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정말 전도유망한 사람은 유명 인사가 흥미를 가진 것에 대해 흥미를 갖고, 나아가 그 위에 성취를 이루어 낸다. 기껏 유명 인사에 대한 흥미가 아닌 것이다.
옛날 어떤 서생(书生: 선비)이 있었는데, 자칭 소동파의 숭배자라고 부르짖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소동파의 시를 좋아하시오, 아니면 그의 서예를 좋아하시오?"
서생이 대답했다. "모두 아니오. 나는 동파육(东坡肉)을 좋아하오... 동파육을 잘 익히면, 기름지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정말 맛있어요."
동파육을 숭배하다 보니 소동파를 숭배하게 되었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다.
* 1996년 제20기 < 삼련생활 주간 > 잡지 게재.
※ 동파육(东坡肉) : 중국 절강성, 사천성 요리로, 돼지고기에 각종 양념과 소흥주를 넣고 쪄서 만든다.
원래 있는 요리를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설과 소동파가 지방관으로 가서 만든 요리라는 설이 있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소동파 이름을 따서 동파육이라 부른다.
※ 문화대혁명: 1966.5~1976.12까지 중국에서 벌어졌던 사회, 문화, 정치의 대 변혁.
중국 역사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수천만명이 굶어죽자, 세력이 약해진 모택동이 다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 모임인 홍위병을 선동,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홍위병은 문화 유물을 파괴하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무수히 반혁명 세력으로 몰아 처단하였다.(베이징에서만 1772명 살해). 이후 홍위병이 몇 개의 파벌로 분열되어, 서로 간 갈등이 점점 커지자 1976년 7월, 모택동은 공산당 지지 기반에 해가 될 것을 우려, 군대에 홍위병 진압을 지시했다.
11976년 모택동이 사망하자, 화국봉이 문혁의 주역들을 체포하였고, 문혁도 종말을 고했다. 한 인간의 권력욕이 빚은 미증유의 재난이며, 中國의 비극이라 하겠다.
※ 본문에서 형의 동창이 보인 기괴한 행동은 文革이 한참 진행될 때, 기고만장했던 홍위병의 한 단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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