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道德)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어왕>은 하나의 도덕 글이다. (나는 그것이 그저 도덕 글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도덕 소설"에서는, 작가는 도덕적 사고 변별을 하고, 또 인물에 대하여는 도덕 평판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비록 <어왕>을 좋아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도덕적 사고 변별 때문에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스타피예프의 붓 아래, 그가 각별히 사랑하는 시베리아의 자연환경은, 어슴푸레하게 하느님이 만든 태초의 형상을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런 믿음은 찬미해야 마땅하나, 애석하게도 어떤 때는 편향된 정도가 지나쳐서, 작가는 다른 지방에서 시베리아로 온 사람에 대하여, 자연환경을 소중하게 아낄 줄 모르는 "도시인"으로 여기고, 이유 없는 반감을 품었으며, 단어와 행간(行間)에는 이교도를 토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 배어있다.
사람(人)
도덕 글에서, 작가는 사람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다.
이런 가치 판단은 찬양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살육의 도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정의로운 사람의 머리에는 월계관을 씌워주지만, 불의(不義)한 사람에게는 도덕의 형틀을 내놓고, 능지처참시키면서, 제멋대로 즐거워한다.
작가가 이런 특권을 행사할 때, 인간 본성의 비열한 일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
실제 생활에서, 사람이 혼자 죽게 되면, 변명과 참회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도덕 작가가 어떤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면, 흔히 그에게 변명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모든 장점이 박탈되고, 모든 결점은 과장되며, 그를 짐승만도 못한 지위로 내 몰뿐이다.
비평가들은 비록 <어왕>을 도덕 글의 하나로 분류하지만, 내용에 지나치게 맹렬한 살기는 없다. 두툼한 책 속에서, 작가는 오직 "고가 골체프"라는 사람만 산 채로 베었는데, 살해 방법이 그리 악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고기 도둑 코만 체프 같은 부류의 인간을 작가는 크게 비난했지만, 그렇다고 도살용 칼을 들지는 않았다. 이점이 과거 소련 작가 중에서 특히, 대단하다고 하겠다.
아스타피예프는 진정한 대작가로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비판하고, 백성의 고단한 질곡을 불쌍히 여기는 기개를 거의 갖추고 있다.
뛰어난 단락(精彩段落)
이 책에서 제일 뛰어난 장(章)은 "어왕" 1장이다
물고기 도둑, 이그나치이치가 강 위에 낚시를 드리워 놓자,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화골금장( 花骨锦掌: 무협소설 녹정기에 나오는 무공, 오랜 기간 음독 내공을 쌓은 자가 상대를 부드럽게 공격하면, 공격받은 자는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두 시간 후 골격이 솜같이 부드러워지면서 곳곳이 절단되어 죽는다고 하는 독(毒) 무공이다) 어왕(鱼王)이 낚시에 걸려들었다.
낚시를 끌어당길 때, 이그나치이치(이 불한당)는 실수로 늘어놓은 낚시가 엉키면서, 물속으로 떨어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게 된다.
이 순간, 이 불한당은 자기가 평생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비열했던 한 가지 사건 - 그를 사랑했던 아가씨를 능욕했던 일 - 이 떠오른다.
"그는 시키는 대로 절대복종하는 아가씨를 강기슭, 절벽 위에 세워놓는다. 그는 그녀를 고개를 돌려 강물을 보게 하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두꺼운 바지를 끌어내린다. 바지에는 굵은 실로 뜨개질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단추가 달려있었는데, 바로 그 단추가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그에게 남긴 것이다."
우리도 그 두꺼운 바지와 그 단추를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쉬음이 깊이 숨어 있을까!
작가의 어질고 후덕함은, 그 불한당에게도 이런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비록 그가 그 아가씨를 물속으로 차 넣었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 다시 이 일이 떠올랐고, 그렇게 자기의 죗값을 치렀다.
"너는 이 여인이 너에게서 떠나가게 했다. 그녀를 떠나가게 한 것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그 이전에 너는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너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온 천지에서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자주 여인들을 짓밟고, 그녀들을 모욕하는 인간들을 위해."
악행을 저지른 데 대하여, 상대방의 용서를 구함으로써 벗어나야지, 망각으로 끝내버리면 안 된다. 스스로 양심의 질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그런데, 이런 양심이 불한당의 신상에 출현한 것이고, 그래야 사리에 맞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강 위에 드리운 낚시는 도덕 법정(法庭)의 판결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연출한 무대였다.
이두가지가 문학의 무게이며, 함께 놓고 논하면 정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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