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명한 우진(牛津) 대학 출판사에서, 중국 대륙 여성 사회학자 이은하 박사의 새로운 책, < 출산과 중국 촌락 문화>를 출판하였다.
이은하가 중국 농촌의 출산 문화를 연구할 때, 제시한 새로운 관점은, 전통문화의 본질이 촌락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남북 모두에 있는 하나의 현상은 바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연 촌락에 많다. 이것은 경작 및 생활 방식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
그 외에, 중국 농촌의 주거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적어도 외국 농촌과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ㅣ
이런 현상이 출현하게 된 것은, 농촌에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막힌 담장이 없고, 당신의 일을 다른 사람이 모두 알고, 다른 사람의 일을 당신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의 공유이다.
만약, 인류학의 정보학파의 의견에 따른다면, 공유한 정보가 바로 문화이니, 촌락 문화의 존재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은하는 당초에는 "촌사(村社: 부락 공동체) 문화"라는 개념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촌사(村社)"라는 단어는 이미 쓰이고 있는데, 거기에 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 않겠냐?"라고 했다. 이건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은하가 "촌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 매우 애석했다.
나는 곰곰이 글자를 되씹어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촌(村)"이 어떤 뜻인지는 해석할 필요가 없고, "사(社)"의 뜻은 토지신이야."
이것은 그녀가 설명하려는 현상과 딱 들어맞았다. 농촌에서는, 삼고육파(三姑六婆:무당, 매파 등 천한 일을 하는 여자)가 토지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다 아니까 알릴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일개 자연 촌락은 그야말로 개인 정보의 초전도체인 셈이고, 촌락에서는 말 못 할 비밀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생로병사, 결혼, 장례, 시집 장가,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이 모두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가 주(主)가 되어 자기 식으로 행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외국 문화는 죄책감의 문화고, 중국 문화는 수치감의 문화다'라고 했다. 이런 느낌은 매우 예리하지만 단지 느낌에 불과하다.
죄책감은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의 앞에 있으면 죄인이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많은 사람이 당신을 보고 있으면, 어찌 수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정보 공유가 없다면, 수치감 문화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출산을 제외하고, 촌락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기가 주(主) 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조사가 그러하다.
이런 일들은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규율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 누구나 기꺼이 전통과 풍속대로 할 것인데, 이것을 문화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째서, 고통스러운 전통을 부둥켜안고 사는지, ,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매저히즘(피학성향)에 빠졌다고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와 거리가 멀다.---- 많은 세월을 사람들은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촌락 문화는 하나의 강제하는 힘이며, 개인의 의지로는 그와 대적할 수 없다.
이은하는 전통 관념과 종족(宗族: 부계의 일족) 의식 등등이 현재 농촌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들이 어째서 개인의 두뇌 안에 보존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들은 촌락 문화라는 반쯤 닫힌 궤짝 안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의미 있는 결론이다.
우리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반쯤 폐쇄된 니스호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 촌락에도 여러 문화 공룡이 남아있다는 것은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얘기하든, 현재는 공산당의 천하여서, 종족(宗族)과 공자 맹자 철학은 합법적인 권위가 없다. 진정한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은 촌락이다.
일을 할 때는 일정한 규율에 따라 해야 하고, 문제를 생각할 때는 당신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일정한 방식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융통성이 없어서도 아니고, 집안에 내려오는 규칙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한 떼의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해석이 훨씬 현실에 들어맞는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런 한 폭의 생활이 담겨있는 경치를 묘사했다.
어떻게 돈을 벌든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두들 말하려 든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는 당연히, 새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생겨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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