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새로 나온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샀다.
이 책은 내가 어렸을 적, 애독한 책인데, 지금 책은 새로운 번역본이다.---- 모두 알겠지만, 신 번역본은 언제나 옛 판본보다 못하다. 신판본이라고 해서 잘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책머리에는 마크 트웨인이 멋대로 꾸며놓은, 병공서(兵工署:무기 제조창) 장의 포고문이 한편 추가되어 있었다. 그건 구 판본에서는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그 포고문에 이렇게 쓰여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감히 이 책에서 무슨 꾸밈, 도덕적인 메시지 등등을 찾아내는 자는, 모두 체포하여, 추방하거나 총살한다.
마크 트웨인은 배짱이 셌다. 만약 현재 우리나라 작가들이라면 감히 어느 누가 포고문을 흉내 내어 쓸 수 있겠는가?
또 어느 누가 감히 자기 책 속에서 문화의 원류 혹은 구성을 허물 수 있는 것을 찾아내면, 누구든지 체포, 추방, 총살 시킨다고 하겠는가?
나는 그부터 일차로 총살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각종 철학, 더욱이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모두가 물밀듯이 문학의 영역으로 돌격해 오고 있다.
작가는 모두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노마님의 요강(아무 때나 분풀이할 수 있는 상대)이 된다.
심지어 그들 자신이 가진 철학 또는 인류학 상의 자기가 창작하게 된 근거에서부터 정말 불쌍해 보인다.
여기서 영화<패왕별희>에서 장풍의가 연기한 배역, 곤장을 맞아 엉덩이에서 불이 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 떠오른다. "잘도 때리십니다. 스승님 건강 조심하십시오."
철학자는 말한다. 존재하니까, 바로 합리적인 것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다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원인이 있다. 다시 말해서, 비평 역시 작가들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나는 글 쓰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보면 언제나 숨이 막혀옴을 느낀다.
우리 고향에 이런 혈후어가 있다.
뱀이 밀짚모자를 쓰고 호리호리한 사람인척하면,---- 고향 사람들은 호리호리한 것이 최고로 이름다운 몸매라고 생각해서, 뱀까지도 그런 척한다고 했다. 문화 비평이란, 바로 작가가 머리에 쓴 밀짚모자를 벗겨서, 그들이 기어 다니는 동물이라는 본색을 폭로하는 것이다.
소위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문화 ---- 이것은 일종의 특수한 혼돈으로, 모두들 각종 추악한 심리 상태를 지니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심리상태는 결국 드러나게 되는데,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작품을 쓰는 것이다. ---- 만약 이런 질책이 성립하려면, 작가들은 올바른 것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불량배들이다.
나는 감히 '나도 작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몇몇 작가들도 이유 없이 작가임을 불평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학력을 보면, 나는 당연히 비평하는 쪽에 서야 하고, 비평을 받는 쪽에 서면 안된다. 만약 나의 문학 사업의 근원이 ---- 글을 쓰는 것 ----이라면, 여기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과거에 나는 이과 공부를 했다. C. P. 그린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문학가의 문화이고, 과학은 과학자의 문화이다.
나는 과학 문화에 대해 비평하는 데는 아직 흥미가 없고, 그것에 흥미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아무도 과학을 비평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자, 특히 철학자는 언제나 수학, 물리학을 들먹이며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조금 지도하기도 했다.
정작 수학자, 물리학자는 가만있는, 실제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수학 물리학을 들먹인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내가 대학원생 때, 어떤 저명한 여류 인류학자가 통계학에 대하여 비평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복잡하고, 높고 깊이 있을 게 뭐 있어요?"
확실히 여사는 "구조 해체(解构)"를 수학의 한 분파로 생각했을 것이다.
수업 시간 전에, 우리 교수가 이 비평을 모두에게 반복해서 읽어주자 스승 제자 할 것 없이 한꺼번에 폭소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 문학가는 이렇게 웃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수학자가 웃는 것은 만약 어떤 사람이 연산할 수 없으면 공식으로 규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당신이 후기 현대 철학을 좀 더 많이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유 없이 수학에 대하여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말을 문학가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어쩌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경우가 생겼을까? 모두들 그 원인을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문학은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지만, 수학은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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