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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5장 (1/3)

중국 명대 청자

 

 

상관 집안의 일곱 명 딸들 ---- 라이디, 자오디, 링디, 샹디, 펀디, 니엔디, 치우디 ---- 은 한줄기 어렴풋한 향기에 이끌려, 그녀들이 살고 있는 동쪽  곁채에서 나와 상관루스가 있는 창 앞에 모였다.

일곱 개의 머리카락들이 헝클어지고, 엉킨 머리들이 서로 닿으며, 빽빽이 한데 모여, 창 안을 살펴보았다.

그녀들은 모친이 온돌에 기대고 앉아 한가하게 땅콩 껍질을 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한줄기 어렴풋한 향기는 분명히 모친의 창문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벌써 열여덟 살이 된 라이디가 제일 먼저 모친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모친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아랫입술에 흐르는 피를 보았다.

또 모친의 무섭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뱃가죽과 방안 가득 날아다니는 파리들을 보았다.

모친의 땅콩을 까는 손이 왔다 갔다 하며, 한 개씩 한 개씩 땅콩을 으스러뜨려 부수고 있었다.

상관 라이디는 오열하며 엄마를 불렀다.

그녀의 여섯 동생들도 그녀를 따라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일곱 여자 애들의 얼굴과 뺨에 가득 달렸다.

제일 어린 상관치우디가 큰 소리로 울면서, 벼룩, 모기에 물려 얼룩얼룩한 반점 투성이인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굼뜨게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상관라이디가 얼른 쫓아가, 어린 동생을 끌어당겨 품 안에 끌어안았다. 치우디는 큰 소리로 울면서, 주먹을 휘둘러 언니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

"나 엄마한테 갈 거야.... 엄마한테 갈 거야..." 상관치우디는 울면서 소리쳤다.

상관라이디는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뜨겁게 솟아올랐다.

그녀는 동생의 등을 두드리며, 구슬렸다.

"치우디  울지 마라....  치우디 울지 마.... 엄마가 우리들에게 작은 동생을 낳아  줄 거야. 엄마가 하얗고 포동포동한 작은 동생을....,

방 안에서 상관루스의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라이디야 .... 동생들 데리고 거거라.... 애들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 설마 너도 모르지는...."

방 안에서 "와르르"하는 소리가 울리며, 상관루스가 울부짖었다.

다섯 동생들이 창 앞으로 몰려들었고, 열네 살 된 상관링디가 울면서 소리쳤다. "엄마... 엄마...."

상관라이디는 동생을 내려놓고, 전족하느라 동여매었다가 나중에 도로 푼 작은 발을 날려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식된 문턱이 그녀의  발이 걸리며, 그녀는 비틀하다가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풀무 위로 넘어졌다.

풀무가 기울어지면서 쓰러져, 닭모이가 들어있는 청자  바릿대가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급히 일어났고, 키 크고 덩치 큰, 할머니가 향연(香烟)이 휘감고 있는 관음보살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온몸을 떨면서, 풀무를 바로 세우고 난 다음, 되는대로 청자 조각을 긁어모았다.

미치 그렇게 하면 깨진 바릿대가 원래대로 복원되거나 자기의 죄가

가벼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모는 바닥에서 급히 일어나더니, 살찐 늙은 말처럼, 몸이 흔들리며 머리를 와들와들 떨더니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연달아 났다.

상관라이디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추러들었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조모가 때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조모는 그녀를 때리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얇고 하얀 큰 귀를 비틀어 쥐고 그녀를 끌고 와 가볍게 밖으로 내쳤다.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정원 한가운데 푸른 벽돌로 된 통로에 넘어졌다.

그녀는 조모가 허리를 굽히고  바닥의 청자 깨진 조각을 관찰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소가 강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 같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조모는 여러 개의 깨진 자기 조각을 주운 다음 허리를 펴더니 가볍게 자기 조각을 쳤다. 낭랑한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조모 얼굴의 주름살은 촘촘하고 깊이 파였고, 양쪽 입아귀는 아래로 쳐져서  턱으로 바로 통하는 두 줄의 굵은 주름과 함께 연결되어, 턱은 마치 나중에 설치한 얼굴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상관라이디는 내쳐진 김에 통로에 꿇어앉아,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 나를 죽도록 때리세요."

"너를 죽도록 때리라고?" 상관뉘스는 만면에 슬프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너를 죽도록 때린 들, 이 바릿대가 도로 온전해지냐? 이건 명조(明朝) 영락제 때 자기인데, 너희 고조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거다. 값으로 치면 노새 한 마리 값은 되지!"

상관라이디는 바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너도 시집갈 때가 되었어!" 상관뤼스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런데, 꼭두새벽에 일은 안 할지언정, 무슨 요사스러운 짓이냐? 네 어미는 천한 목숨이니 죽을 리 없어."

상관라이디는 얼굴을 가리고 소리 내어 울었다.

"집안 물건을 깨 놓고 뭐 잘했다고?" 상관뤼스는 볼만스럽게 말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 저 밥이나 축내는 동생들을 데리고 교룡하에 가서 새우라도 잡아와라. 소쿠리 하나 가득 잡지 못하면 들어오지도 마라!"

상관라이디는 황망히 일어나서, 어린 동생 치우디를 안고, 집 문을 뛰어 나갔다.

상관뤼스는 닭 떼라도 쫏아내는 것처럼 니엔디 등을 문밖으로 쫓아내더니, 가는 버들가지로 엮은 목이 긴 새우 소쿠리를 상관링디의 품에 던져 주었다.

상관라이디는 왼손에는 상관 치우디를 안고, 오른손으론 상관니엔디를 끌고, 상관니엔디는 또 상관샹디를 끌고, 상관샹디는 또 상관펀디를 끌고, 상관링디는 한 손은 상관펀디를 끌고 한 손은 버들가지 새우 소쿠리를 들었다.

상관 집안의 일곱 딸은 네가 끌면, 내가 끌고 하면서, 하염없이 훌쩍이며 햇살이 환하고, 서풍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골목을 따라 교룡하 큰 둑을 향해 출발했다.

손씨네 큰 고모 집 정원을 지나가면서, 그녀들은 강렬한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그녀들은 손씨네 집 지붕 위 굴뚝에서 끊임없이 하얀 연기가 나는 것을 보았다.

다섯 명의 벙어리들이 개미같이 장작과 건초를 나르고 있었고 검은 개들은 문 앞에 엎드려 시뻘건 혀를 늘어뜨리고,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들이 높은 교룡하 둑에 올라가니, 손씨네 정윈 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다섯 명의 땔감을 나르던 벙어리들이 상관네 집 딸들을 발견했다.

그중 제일 큰 벙어리가 거뭇거뭇 짧은 수염이 난 윗입술을 들어 올리고 상관라이디에게 미소를 지었다.

상관라이디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얼마 전에 강으로 물을 길러 갔을 때, 벙어리가 오이 한 개를 자기 물통 안에 던져 넣어준 정경이 떠올랐다.

그때 벙어리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모호하고 교활해 보였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은 처음으로 이상하게 쿵쿵 뛰었으며, 피가 얼굴로 치솟아 거울같이 고요한 강물에 비춰보고, 자기 얼굴이 온통 빨갛게 변한 것을 보았다.

나중에 신선하고 연한 그 오이를 먹었는데 오이 맛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녀는 눈길을 위로 돌려 교회당의 색깔 있는 종루와 통나무를 세워  만든 전망탑을 보았다.

황금 원숭이처럼 날렵한 남자가 탑 꼭대기로 뛰어 올라가며 고함쳤다.

"여러분들, 일본 기마대가 벌써 현성을 떠났어요!"

탑 아래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탑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탑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 불시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아래로 숙였는데 손은 난간을 잡고 있었다.

탑 아래 있는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 같았다.

대답을 마쳤는지 그는 다시 허리를 펴고, 빙  돌아가며 두 손을 나팔 모양으로 만들어 입가에 대고, 사면 팔방을 향해 일본인이 곧 마을에 들어온다는 경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