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ROTC 소위 임관후 배속된 부대에서 만난 전설적인 술꾼 K대대장 이야기다.
부대회식때면 당당한 체격의 상관 K대대장은 늘 물컵 (사기컵으로 소주 반병 용량)에 소주를 딸아 끝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며 우리들 햇병아리 소대장들에게 름름한 술꾼의 자세를 과시하곤했다. "자 한잔 들어!. 쭈욱. 젊은 친구가 찌끔찔끔 그게 뭐야. 쭈욱 남자 답게 마셔봐." 이말에 속아 처음엔 객기로 "에라 모르겠다. 삼수갑산을 가도 먹고죽자."하고 분위기에 따라 멋도 모르고 마셨다가 여러명이 인사불성이 되거나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어질듯한 두통속에 벌벌 기며 생 지옥을 경험했었다. 회식 다음날 아침이면 더욱 말짱하게 새벽같이 연병장에 나타난 대대장은 "요새 젊은 놈들은 도대체 공과 사를 구별할줄 모른단말야..." 그러면 우리들은 큰 죄나 지은듯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천하 무적 술꾼 대대장님을 우러르게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도 자주 반복 되니까 엄청 스트레스로 되돌아 왔다. 감히 대대장과는 술을 대작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술자리도 지겹기만할뿐 정말 재미 없었다. 회식자리는 모두들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앉았는 가운데 대대장 술실력 자랑에 기죽어하는 자리였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 육군소위중에도 기백있는 같은 사단에 배속 되었던 동기생 친구가 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도전자의 증명된 공인 소주기록 - 앉은 자리 9병. 우리 대대는 아니지만 소문을 듣고 불쌍한 동기생들을 구원하고자 대대장과 겨루기 위해 회식자리에 우연인척 합류 했다. 그때 그시절 분위기상 감히 "한번 겨뤄 봅시다."할순 없고 "대대장님. 제가 한잔 따르겠습니다." 하며 물컵에 가득 소주를 채우니 대대장도 금방 눈치를 채고는 주욱 단숨에 들이 키고는 "그래 내잔도 받게."그래서 동기생 녀석도 호기롭게 소주 한컵 주욱 ---. 이렇게 시작된 술 겨루기는 숨막힐듯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 되었다. 한컵 두컵. 세컵. 네컵....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열대여섯 컵째 우리의 희망 동기생 녀석의 혀가 꼬부라지더니 자꾸만 술컵을 들고 어물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이친구가 안간힘을 쓰며 넘어지려는 자세를 바로하고 간신히 한잔 비우고 대대장 술잔에 다시 소주를 붓고나면 기다렸다는듯이 대대장은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널름 마시고는 "."어이 내잔 받아." 그러면 부쌍한 우리의 동기생 녀석은 꾸물꾸물 컵을 입에 대고 괴로운 표정이 역력해지면서 똥 먹은 표정이 되곤했다.
애시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동기생의 최고기록 소주 9병이라야 우리들은 경외스럽게 생각하지만 기껏 학교 앞 음식점에서 푸짐한 안주에 장시간 노가리를 풀면서 그것도 온종일 9병을 마셔봤댓자 우리 대대장처럼 야전에서 김치 한조각으로 소주 두어병 정도는 게눈감추듯 하는 생활로 단련된 야전 소줏꾼과 갓 대학생을 벗어난 아마추어 술꾼 동기생 녀석이 무슨 진검승부 대적을 한단 말인가?
"좌우간 이러다가 친구 하나 잡겠다" 싶어 급히 누가 찾는다느니 하면서 얼렁뚱당 핑게를 대고 그친구를 회식자리에서 빼내어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인식한 우리들은 더욱 주눅이 들었고 이후 감히 대대장에게 도전하는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제대 회식날. 대대장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절대 술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하며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말했다.
그의 경험담. 군생활에 바빠 몇년에 한번씩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술에 곤드레 만드레 취했었단다. 어느 휴가때 고향에 내려 갔는데 역시 술에 잔뜩 취해있으려니까 그의 부친께서 마흔도 넘은 장성한 아들이 몇년만에 집에 왔는데 차마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은 못하고 묵묵히 돼지고기를 주전자에 담은후 거기에 소주를가득 부어놓고는 "내일아침 이걸 열어보라"고 하시더란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술이 덜 깬 상태로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고기가 술에 퍼져서 죽같이 되어있어 깜짝 놀랐단 말을 하면서 K대대장은 절대 술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인생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다고 하며 떠나가는 우리들에게 두번 세번 강조했다.
제대후 4-5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동네 목욕탕에서 우연히 K대대장과 절친했던 전임 대대장을 만났다. 반갑게 K대대장 소식을 물으니 간단히 대답했다. "그친구 대령달고 얼마 안있다 저세상 갔어. 그때 나이 마흔 일곱이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