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춘천 마라톤의 패인(敗因)
10월 29일,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 풀코스를 완주했다.
하지만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70이 넘어 마라톤 풀코스를 뛰면서, 완주만 하면 다행이지 무슨 더한 욕심이 있겠으랴만, 내가 마음속으로 정한 완주 목표는, 5시간 초반(10분) 이내인데, 결과는 5시간 38분으로, 30분이나 차이가 났으니 당연히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 마라톤 결과를 실패로 간주, 패인을 분석, 기록하기로 했다.
나의 마라톤 르네상스 계기.
정강이뼈 골절 사고 후, 만 1년이 지난, 22년 7월 말, 나는 치료 결과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갔다.
나를 치료해 준 의사는 두 발을 뻗고 있으라 하더니 다치지 않은 발목과 다쳤던 발목을 동시에 이리저리 꺾어보면서 내게 물었다.
"아픈 데 있어요?"
"없는데요."
"변형도 별로 없고, 두발의 굽힐 수 있는 각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그냥 지내세요."
"철심 안 빼도 되나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뛰어도 돼요?"
"네, 뛰어도 괜찮아요."
이후, 나는 나름대로 재활 운동을 시작했는데, 주로 매일 5~6km 걷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천히 3km를 달려보았다. 다리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일 년 이상 달려본 적이 없다가, 갑자기 달려서 그런지 숨이 매우 가빴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 거리를 조금씩 늘려나가다가, 5km, 8km, 10km까지 연습 거리를 늘렸다.
그러면서, 하프마라톤 대회에 세 번 참가하였다.
2022, 10월 23일 춘천마라톤 (하프), 2시간 35분 25초,
2023, 2월 23일 아! 고구려 마라톤(하프) 2시간 21분 02초
2023, 9월 17일 선사마라톤(하프) 3시간 10분 13초.
선사 마라톤 대회는 주최 측 진행 미스로, 주로(走路) 안내자가 모두 철수해 버려, 피니시 라인을 못 찾는 바람에 3시간을 넘겼다. 그렇지 않았어도, 날씨도 덥고, 워낙 지쳤기 때문에 3시간 안에 들어왔을지는 알 수 없다.
"하프코스를 3시간 넘기다니..."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이건 마라톤을 그만 접으라는 얘기다.
대회 뒤풀이 때, 남산 목요 달리기 회원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풀코스에 한번 도전해 보자."
그러다가, 23 춘천마라톤 대회 공고가 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풀코스를 신청했다.
2019년 3월 17일, 동아 마라톤을 뛴 이후, 실로 4년 만에 도전하는 풀코스다.
우선, 9월 27일, 인터넷에서 나이키 러닝화를 구입했다.
마라톤 르네상스를 맞으러 갈 무장(武裝)이 완비된 것이다.
첫 번째 패인(敗因), 준비 부족
10월 29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첫 지하철을 타고 춘천을 향했다.
상봉역에서 차를 갈아탔는데, 지하철이 붐비기는 했지만, 앉아서 갈 수는 있었다.
이윽고 8시 조금 넘어 남춘천역에 도착했다.
역은 대회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다. 나는 화장실부터 갔다 왔는데, 화장실 옆 휴게소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와글와글 모여, 떡이니, 김밥이니 마구 먹고 있었다. 다들 제 것 먹기에 바빠서 아무도 나에게 먹어보라는 사람이 없었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삼천 명을 먹였다는 나눔 이야기) 정신은 하나도 없는 탐욕 인간들 같으니!"
문득 어제저녁 라면 하나 먹고, 새벽에 빵 한 개 먹고 온,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연료를 채우지 않은 자동차인 셈이다.
"내 탓이오." 동시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도 떠올랐다.
다 내가 미리 준비했어야 할 일인데 누구를 원망하랴!
결과는 출발 후, 20km를 지나서 나타났다.
아픈데도 없는데, 힘이 없어 38km까지 그냥 걸어간 것이다.
두 번째 패인(敗因), 연습 부족
9월 17일, 선사 마라톤을 위한 준비 훈련은 거의 없었다.
8월 중, 8km 두 번, 10km 세 번 합계 56km를 뛰었고, 9월에는 8km 두 번, 12km 한번, 합계 28km를 뛰었을 뿐이다.
그러니 선사 대회에 나가서 12km 지점부터 퍼져버린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연습을 시작한 다음부터는 연습 강도가 정말 달라졌다.
10월 들어서만, 대회 전까지 8번에 걸쳐 15km 두 번, 20km 세 번, 24 km 두 번, 30km 한번, 총 168km를 연습한 것이다.
그전에는 인덕원 교에서 5km를 왕복, 기껏 10km나 달렸을 뿐이지만, 10월부터는 새 러닝화도 마련했겠다, 연습 거리를 대폭 늘렸다.
처음 가보는, 늘어난 1 km마다, 나는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서 거리 지점을 기억했다.
인덕원교에서 4 km 지점은 학의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지점이니, "안양천 광장"이라 하고, 거기서 1km를 더 간 조용한 5 km 지점은 아늑한 곳이니 "바빌론의 강가"라고 하고, 다시 1km를 더 간 6km 지점은 아파트 앞에 콘크리트 교각이 죽 늘어져 있으니 "문어다리 아파트", 7km 지점은 "노라리 다리"(늘 다리 밑에 잔뜩 사람들이 모여 바둑, 장기를 두며 논다), 8 km 지점은 그저 조용한 다리가 있으니 "고요의 다리"라고 지었다. 또 거기서 500m 지나면 꽃이 많이 피어있는 광장이 있어 "플라워 가든", 9km 지점은 황량한 벌판에 주차장이 있으니 "벌판 주차장", 10km 지점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그냥 "광야(廣野)"라고 지었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달리다 보니, 지루하지 않아 좋았고 달리면 달릴수록 그곳 지형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고, 정감이 갔다.
한데 달리기 속도는 언제나 km당 7분 40초에서 8분 20초 사이였다.
스피드가 더 빨라지지 않으면, 그 속도로는 풀코스를 5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없다. 속도 또한 연습 부족이라 할 수밖에.
고목나무에도 새싹이 튼다.
이번 대회 기록은 하프까지는 2시간 26분, 완주 기록은 5시간 38분 59초다.
출발 시 화장실을 갔다 오니 내가 속한 D 그룹은 이미 출발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최하위 그룹인 F 그룹과 함께 출발했다. 20km까지는 7분 페이스로 잘 갔으나, 평소 7분 30초 페이스 이상 달려본 적이 없던 터라 무리가 되었는지, 20km 지나서부터 다리가 무거워지면서 속도가 확 떨어졌다. 이후 걷다 뛰다 했는데 대부분은 걸었다고 하는 게 맞다.
춘천 댐을 향해 올라가는 25km에서부터는 F 그룹 주자들 대부분이 걸었다. 나 역시 힘 없이 그들과 같이 걸었다.
나중에 구간 기록을 계산해 보니 20km에서 35km 구간의 속도는 km당 9분 20초였다.
맥없이 걷다가 38km 지점에서 문득, 이렇게 모처럼의 기회를 그냥 날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있는 힘을 다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38km에서 42.195km, 피니시 라인까지는 수많은, 아니 주로(走路)에 있는 모든 참가자를 제치고 뛰었다. 공식 기록 35km~40km 소요 시간 41분 46초, km당, 8분 12초 페이스로 빨라졌다. 38km부터 7분대 페이스로 뛴 결과이다.
나중에 공식 기록을 보니 40km~42.195km 쇼요 시간 15분 51초, km 당7분 12초 페이스를 기록했다.
이 구간을 나는 마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청새치처럼 파도를 뚫고 돌진했다.
최후의 2.195 km, 마지막 구간이라 비 맞은 빨래처럼 지쳐서 걸어가는 숱한 군중 속을 뚫고 달리는데, 정말 이무기가 용이되어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희망을 본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고목나무에 새싹이 돋아났다.
대회 후, 며칠 쉬었다가, 10km 지점, 광야까지 왕복 20 km를 뛰어보았다. 총 소요시간 2시간 20분, km당 7분이 나왔다.
"맞아! 이젠 스피드 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