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개인생활>과 여성문학 (<私人生活>与女性文学).1/2

traveler-kim 2023. 11. 12. 16:00

《개인 생활≫ ;표지

 

이정(李静)이 나에게 여성 문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는 여성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불행히도 그 작품들은 중국 여성문학 가운데 대표 작품이 아니었고, 진정한 대표작은 단번에 찾아지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천란 (陈染: 1962년생 여성작가)의 히트작 <개인생활>을 추천했는데, 이 책은 잘 팔리는 책으로 소문났으며, 여성문학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고 했다.

비록 대표작이 아니라 해도 이 책이 여성문학인 것은 맞다.

이 책을 읽은 다음, 갑자기 며칠 전 신문에서 한 편의 여성문학 작품에 대한 평이 떠올랐다.

'이런 유의 작품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엿보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성문학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는 잠시 덮어두고, 이런 비평 자체는 근거가 없다. 다른 사람을 엿보고, 더구나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인다면 분명히  위선자일 것이다.

엿보는 눈으로 보지 않아야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나는 이 기준에 따라 평가하려 한다

<개인 생활>은 재미있는 책으로, 한 여인의 성장(成长) 과정을 그렸다.

만약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책은 주로 그녀의 성별(性别: 젠더) 의식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유사한 소재의 책으로, 내가 전에 한번 본 민안치(闵安琪)가 영문으로 쓴 <홍두견(红杜鹃)>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역시 재미있는 책이다.

둘을 비교해 보면, 나는 <홍두견>을 훨씬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책의 시대 배경이"문화혁명"이기 때문인데, 내가 살이 온 경력과 비교적 가깝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젊은이들은 <개인생활>을 훨씬 더 좋아할 것이다. <홍두견>은 영어로 쓰여서, 국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책에는 젠더의식의 형성, 심지어 여성 동성애가 쓰여 있으며, 이런 것들이 여성 문학의 특징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두 권의 책은 재미있긴 하지만, 좋은 소설이라 할 수는 없다.

<개인 생활>의 전반부는 후반부에 비해 잘 썼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이력을 조리 있게 그렸고, T 선생과의 애환이 섞여있는, 감정의 갈등을 깔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이 재미있다.

책의 후반부는 깊은 혼란에 빠져드는데, 주인공은 심지어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 일부 일인칭으로 이런 줄거리를 표현하였는데,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야기 하나 듣고, 나중에 이야기한  사람의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뜻밖의 서프라이즈이다.

보통 상황에서, 청중들에게 후회를 느끼게 하려면, 정말 미쳐서 하는 말을 많이 들려주어야 되지 않을까?

다행히, 이야기가 끝날 때, 주인공은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 독자들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  이렇게 독자들을 대하는 것은 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작가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어떻게 진지하게 작품을 대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 이것이 책 전체에서 제일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로서의 <개인 생활>은 부족하다.

만약 <개인 생홯>이 남성 작가가 쓴 책이라면,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파악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여성 문학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는 남성 중심주의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고, 나도 여성 문학은 읽어도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의 의견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 주인공의 성(性) 경험을 썼는데, 나는 잘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면의 묘사 자체가 문제가 있고(그런 묘사는 진염 수준에 완전히 다다르지 못했다) , 감정의 맥락도 확실하지 않다.

책을 끝내면서, '주인공은 욕조에 비친 자진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라고 썼는데, 내가 이해하기는 주인공의 감정의 줄거리는 나르시시즘이다. 그래서 앞에서 힘들게 묘사한 선정적인 장면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말같이 생각되었다  ----  나르시시즘의 느낌과 모순이 된다. 나는 이런 묘사들을 모두 빼버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것들을 모두 빼버리면 책 판매에는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잘 쓰려면, 그것이 잘 팔릴 건지 안 팔릴 건지 신경 쓰면 안 된다.

<개인 상활>에는 여성 동성애가 나온다.

<홍두견>에도 역시 동성애가 나오는데, 여주인공과  여성 정치 지도원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 성행위를 하려고 하나,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쟁하면서 전쟁을 배우기로 하자"  ----  그 당시 사람들은 미쳤던, 바보든, 그들의 기세를 모두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이런 필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비교할 때, <개인 생활>에서는 화과부와 가요요가 벌이는 그 행위는, 읽어도 뭔지 모르게 쓰여있다. 졸렬한 장면 묘사에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모를 감정을 뒤범벅해 놓아, 중학생이 쓴 글 같아 보인다.

게다가 <개인 생활>에 나오는 이성애 묘사는 동성애 때보다 훨씬 못하다.

예를 들면, 주인공은 가요요와 T 선생이 처음 성관계를 가질 때, "인인통(阴阴洞: 어두운 동굴)이라는 곳에 갔다고 묘사했는데, 이 지명(地名)은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흑송림(삼장법사가 요괴를 만난 소나무 숲)"이라고 서명된 저질 볼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얼핏 묘지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음식점이다.

그 일을 하기 전 먼저 십도(十道) 요리(중국의 각지의 유명한 요리)라도 먹고 나서 해야 한단 말인가? 거기엔 원숭이 다리도 포함되어 있는데...

일을 치르고 나서, 또 일단의 철학 사변(思辨)을 써놓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는 어쨌든 이렇게 쓴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