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이은하의 <출산과 중국 촌락 문화> : 2/2 (完)

traveler-kim 2023. 10. 13. 13:32

 

이은하의 <출산과 중국 촌락 문화> 연구가 근거로 삼은 것은 산시(山西), 저장(浙江) 두 곳의 조사다.

그녀의 견해는  날카로웠지만, 유감인 것은 실증한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조사가 이 두 곳의 두세 군데 촌락의 각 110호 정도 되는 집이 아나라, 전국에 펼쳐 저 있는 100개 이상의 촌락, 천호 이상의 가정을 조사해서 완성시켰더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괜한 말다툼이나 비슷하다.

그녀는 인류학 방법을 썼는데, 이 방법에서 강조한 제일 좋은 자료는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통역을 통하는 것은 모두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인류학의 선배 권위자, 미드 여사가 사모아 현지에서 수년동안 조사했던 것도, 오직 전해들은 말만 들으면,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110호와 직접 이야기 했고, 그것도 착실히 했다면, 그건 잘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문헌에서 생각를생각을 찾아낸 다음, 조사에서 실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조사로 실증한 것이다. 이는 대단히 잘한 것이다.

사실 그녀가 명백히 논술한 현상은, 우리들 눈 앞에있는 것으로, 단지 우리가 보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북경 시내에는 촌락이 없고, 골목(胡同)과 대잡원(大杂院: 여러 가구가 한 마당을 두고 모여 사는 형태)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작은 단위의 이동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곳들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많지 않고, 무슨 개인적인 일을 하더라도, 전부 개인이 방법을 결정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유의 현상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닌데, 이책을 보면 촌락 문화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러셀이 말한 적이 있다. 사고 변별이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을 실증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마라. 실제로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려면, 반드시 사고 변별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 이치에 맞는 명언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녀는 이번에 이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관혼상제나 출산을 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를 모두 개인의 결정한다는 가설, 이런 게 근거가 있을까? ---- 개인의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

촌에서는 이런 것들은 별로 널리 행해지지 않았다. 널리 행해진 것은 모두가 좋게 말하는 그런 일들이었고, 거기서도 가장 좋은 것은 모두를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다른 가치 체계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복관이 이러하니 그밖의 다른 쾌락, 행복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서 조사를 끝내고, 저장 조사가 이직 시작되지 않았을 때, 이은하는 <21세기> 잡지에 한 편의 글을 써서, 이문제를 토론하였다. 글이 쓸데없이 길어질까 봐, 여기서 상세히 인용하여 말할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하면, 결론은 이렇다.

어떻게 말하든, 자기가 좋게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좋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은 다르다. 촌락 사람들은 후자가 훨씬 중해서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라도, 앞의 문제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촌락 문화의 실질을 쉽게 퍄악할 수 있다.

이은하는 촌락 문화를 인종의 부정적인 힘으로 보았다.

이런 문화에 속한 사람은 주의력의 전부를 눈앞에 있는 이 자연촌에 두고있기 때문에, 귀중한 재력을 모두 관혼상제 같은 일에 쓴다. 이렇게 되니, 삶의 의미는 촌사람들의 부러움이나 갈채를 받는 것으로 변했고, 생활 동력의 개선이 결핍되게 되었다.

이  문화에서는, 인간관계의 비중이 너무 커서, 개인이 소멸되는 지경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관점에 반대할 수도 있는데 ---- 그는 아마,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장점이라 말할 것이다.

이 방면에서, 나는 이은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중국의 촌락 문화와 낮은 수준의 생활은 그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촌락 문화를 포기하고, 도시에 가서 생활하는 것은 무수한 농민의 꿈이다 ---- 그것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라, 우리는 촌락 문화를 찬양할 수 없다.

이은하의 연구 작업은 소박하다.

학자로서, 그녀는 기고만장하지 않았고, 말의 수식이 화려하지도 않았으며,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거나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하여 증명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하나하나 분명히 하고, 하나하나 알아낸 것인데, 혹 이렇게 알아낸 것을 사람들이 천박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표면상으로 보아, 연구 작업의 내용이 매우 많더라도, 예를 들어, 테마가 사람들의 중시를 받고, 일년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얼마나 많은 학술서를 쓰더라도, 이런 것들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발견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