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도덕 보수주의 및 기타(道德保守主义及其他) : 1/3

traveler-kim 2023. 9. 3. 11:30

<동방(东方)>의 사회윤리 자유토론 칼럼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일종의 특수한 책임감을 느꼈다. 나의 업무능력에 따라 사회의 도덕 수준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수도 있겠구나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중국의 인텔리로서 언제나 자기반성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전통을 나버릴 수 없었다.

나는 내 이전에 이 칼럼을 맡았던, 허 화 이 홍(何怀宏1954년 장시 성 출생 베이징 대 철학교수) 선생이 썼던 한 편의 토론 글 '전체사회의 도덕 수준이, 경제발전이 제고되는 것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글에서 결론을 "의문으로 남는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허 선생의 결론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결론은, 거의 '당연히 제고되고, 또 반드시 제고되어야 한다'이다.

만약에 허 선생도 그러했다면, 그의 글도 대다수 사람들의 글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결론을 냈을 것이다.

적극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결론이 좋기는 하지만, 그것이 꼭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편은 글을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결론을 이미 안다면, 그건 별로 재미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현재 문화계에 존재하는 일종의 "도덕 보수 주의" 때문에 대다수의 글들이 모두 이런 결론을 표현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도덕의 영역에서, 만약 보수적 입장에 서있지 않다면, 무턱대고 전체 사회의 도덕 수준을 높일 것을 고취시킬 리 없다.

예를 들어, 만약 송대(宋代) 유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 사회에서 과부가 개가 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처녀는 집안에 숨어 "아버지의 명령 혹은 매파의 말"만 기다리게 해야 한다. 그러면, 도덕 수준은 금세 매우 높아질 테니, 당연히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이  만약"54 운동"직후의 문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런 식의 도덕 수준은 높으면,  높을수록 문제만 만들어서, 이때는 그런 방면의 노력을 하되,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이 예에서 설명하려는 것은, 당신이 서둘러 전체 사회의 도덕 수준을 제고시키려고 할 때는, 어쩌면 벌써 사회윤리 방면에서 일어나는 변혁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변혁은 왕왕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게 되며, 실제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상, 현재 우리나라는 큰 부분에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변하고 있고, 이런 변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도덕 수준을 높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때, 도덕 수준 제고의 급박함은 사라지게 된다.

지난여름, 나는 타지에 가서 회의를 열었다 ----  그때, 나는 회의를 열어본 적도 별로 없고, 이 회의의 집단 급식도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참인데  ----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를 입은 한 남자 참가자가 눈에 들어왔다. 티셔츠 윗면에 거친 필적으로 영문 한 줄이 쓰여있었다.

Ok, Let's pee! (자, 쉬하자!)

말하자면 이런 구호란 사람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으로, 적극성을 가진, 고무시키는 어조라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따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pee(쉬하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내가 예상했고 틀리지 않았고, 그것은 오줌을 눈다는 뜻이었다. 문구 전체의 뜻을 알고 나서, 나는 이 말이 별로 사람을 충동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우리는 이미 남에게 오줌을 누라고 재촉할 연령이 지났고, 다른 사람에게 오줌을 누라고  고무시킬 필요도 없다.

내가 이 일을 꺼내는 것은, 어떻게 소변을 보나 하는 문제를 토론하자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분명히 알고, 그러고 난 다음, 그것이 적극과 분발이 필요한지 다시 결정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