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인텔리의 불행(知识分子的不幸): 3~4/5

traveler-kim 2023. 8. 15. 16:49

신앙으로 말하자면, 나와 교수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노인네는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유학(儒学)을 옹호하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나에게, 건강만 허락한다면, 매년 한 번씩 이스라엘에 가겠다고 했다 ---- 그는 유태교에 대해서도  역시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유태교 식으로 할례를 했는지 어쩐 지는, 같이 목욕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신앙 애호자라는 것이다.

그는 나의 생각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무신론자에 마키아벨리 주의자로 생각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그것을 결코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말하자면, 보통 사람은 모두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그와 다르다고 선을 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담하게도, 도의, 신앙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노골적으로 이해(利害)만 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인텔리는 그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이해를 따졌지만, 이는 바로 이지(理智. 이성)에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 역시 마키아벨리 주의자는 되지 않았다. ---- 나는 묵자(墨子. BC 468-376,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학자. 모든 사람이 격의 없이 사랑을 나누고 이익을 나누면 태평성대가 된다고 주장)의 문도(门徒  제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우리 민족 범위 안으로 선을 그은 것은, 주로 만일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교수님의 학문은 대단히 크지만, 말도 못 하게 천진하다. 반면에, 나는 학문은 별거 없으면서, 교활 간사하다.

이점을 그도 감탄했다.

그의 했던 말은 이렇다."대륙에서 온 학생들, 여러분들은 이런 좋은 과정을 거쳤으니,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다."

내가 묵자를 숭배하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사고의 맥락이 주도면밀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작은 구멍으로 상이 맺히는 원리(小孔成象: 카메라의 원리)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빛이  직선으로 퍼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된다. 주자(朱子)가 밝음, 어두움의 두 가지 기운밖에 몰랐던 것에 비하면, 묵자는 백배는 더 우월하다  ----  애석하게도, 완비된 실험 기록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 밖에도, 미적분(微積分)의 비교적 오래된 한 가지 방법을 이용하여 무한대를 논증했으니(실제는 겸애(兼爱: 묵자가 주장한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설)가 가능함을 논했다), 그는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

이 방면(과학)에서는 공자 맹자, 정이, 주희를 한데 합해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둘째, 그는 드러내놓고 이해(利害)를 따졌다.

내가 경탄한 것은 그의 바로 이런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겸애 무등 차(兼爱无等差: 차이를 두지 말고 모두를 사랑하라) 사상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감정을 너무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어찌 말하든, 묵자는 나의 배짱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그가 있음으로, 나는 감히 내가 중화민족의 열성분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한학자들이 내가 완전 서양 물이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겁내지 않게 되었다.

묵자의 문도(门徒. 제자)로서, 나는 이성(理性)은 윤리의 첫 번째 준칙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이성은 모든 인텔리의 생명선이다. 이해(利害)를 따지더라도 그것은 제일 앞에 놓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나는 이성의 정의를, 인텔리에게 유익하고, 절대 해롭지 않은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  당연히 다른 정의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정의에는 반드시 나의 정의가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제일 큰 죄악은 전쟁 중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현대에는, 인텔리의 가장 큰 죄악은 자기의 사상을 가두는 감옥을 만드는 것이다.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은 대지의 풍요를 멸절시키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만드는 것은 사상의 풍요를 멸절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죄가 훨씬 큰 죄라고 생각한다 ----  올리브 유가 없어지면  고작 샐러드를 먹지 못하게 되겠지만, 사상이 없으면, 인간은 죽은 것이다.

신앙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성에 종속되어야 한다. ----  만약 그것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대등한 정도라도 되어야 한다. 만약에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  네가 너의 이데올로기를 만들면, 나는 말을 안 하면 된다.

제일 안 좋은 것은, 어떤 과격한 견해가 주재하는 이성인데, 이들 중 총명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방법까지 생각해 낸다.

우리가 말하는 불행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중국의 인문 인텔리 중에는, 천하가 자기 책임이라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백성들의 신앙의 대상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기괴한 점은, 그들은 목사나 신학자가 되려고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까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중국 말로는 하느님이라  하지 않고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애석한 것은, 백성들은 꼭 무언가 믿어야 하는데, 그걸 어느 정도로 믿게 되면, 그가 하는 말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사람을 미안하게 한다.

미안하게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자신도 백성이다. 그러니 잘 못하게 되면,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먹게 될 수도 있다.

중국 인텔리는 이 대목에서, 여태 몰랐다. 그 바람에 자주 자신을 해쳤다.

이 방면의 예를 하나 든다.

단지, 무엇이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먹는다는 것인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든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

아버지 친구분이 있었는데, "문화 대혁명" 전에 소년원 학교 교장이셨다. 그는 줄 곳 24 효(二十四孝 : 元代 곽거경이 편집한 고금 24명, 효자들의 효행을 기록한 책)를 교본 삼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늘 백가지 착한 일 중에서도 효(孝)가 으뜸이라고 하면서, 노래오친(老莱娱亲: 늙은 초나라 사람, 노래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 곽거매아(郭巨埋儿: 가난했던 위나라 효자 곽거가 부모를 잘 모시기 의해 아이를 파묻으려 땅을 파는데, 하늘이 감동했는지 땅에서 금덩이가 나왔다)에서 시작해서, 계속 가르치다 보니, 와빙구어(卧冰求鱼: 진나라 왕양이 한겨울에 계모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고기를 잡으려고 얼음 판에 옷을 벗고 누워 구멍을  만들었더니, 하늘이 아 것을 보고 감동했는지, 얼음 구멍에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까지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그는 자기 딴에는 기막힌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문화 대혁명"이 왔다.

학생들은 그를 얼음판으로 끌고 가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보았는데, 당신 부친이 오늘 병이 나서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 옷을 벗고 얼음판에 누워서, 우리에게 와빙구어를 직접 실연해 보시오--- 아버지 친구는 이때 지병이 생겼고, 건강이 완전히 훼손되었다.

그 학생 녀석들은 당연히 나쁜 건달 패들이었지만, 아버지 친구도 당초에 너무 오싹하게 말했던 것을 후회했다.

만약, 그 오싹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에게 두드려 맞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절묘한 방법을 그에게 실천시킬 생각을 했겠는가?

그는 오히려 머리를 혁대로 두드려 맞기를 바랐을 테지만, 어찌 그것까지 바라겠는가....

나는 결국 웃기는 말을 해서 그를 위로해 드리려 했다.

"큰 아버지, 그놈들에게 할고료친(割股疗亲: 宋代, 효성 깊은 구 씨의 모친이 중병이 들었는데, 한의사가 인육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여,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썼다)까지 말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랬다간 그놈들이 큰 아버지 살을 떴을 텐데, 그럼 어쩔뻔했어요?"

그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그는 24 효 이야기만 들으면, 바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