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과학과 사도(邪道) : 1/2

traveler-kim 2023. 4. 2. 14:12

아인슈타인 (너무 못 그려 죄송합니다)

 

나는  역사책에서, 1930년대 말, 독일에서 많은 과학자가 학교에서 그들, 독일의 화학, 수학, 물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글을 읽었다.

어떤 독일 학자는 이를 두고"과학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는 국제성을 띠고 있다고 했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과학은 또 다른 항목의 인류가 창조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종족성(种族性)과 혈통이란 조건에 따른다. 이것은 분명, 의미심장한 말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종족성의 기준인가'이다"라고 했다.

화학과 수학의 종족성을 조사해 본 적은 없으나, 물리학의 종족성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한다.

고전 물리학은 아리안족이 창조했다. 뉴턴, 갈릴레이 등등, 은 모두 아리안 족이다. 게다가 대다수는 북구 혈통이기 때문에 이 학문의 과학이 발달된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모두 유태인이 연구해낸 것이다. 그래서 사악하니, 모조리 말살시켜 버려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유태인이기 때문에, 그와 그의 상대성이론은 "독일 물리학"의 철천지원수다 ---- 어떤 순수 물리학자 가 공언하기를 누가 상대성이론을 칭찬한다면 그건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덧붙여 "독일인이 영원히 힘없는 노예의 지위로 전락한 것"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아인슈타인이 만약 독일인의 손에 잡혔더라면 그는 분명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도 이것을 알고, 진작 미국으로 도망쳐 목숨을 지켜냈다.

독일 수학과 화학의 내용이 무엇인가? 나는 확실히는 모르나, 그것은 나치 과학자들은 매우 즐겁게 했고, 유태인 과학자들은 매우 달갑지 않게 했을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욕먹는 것은 언제나 달갑지 않은 일이 아닌가?

생물학 영역에서, 과거 유전학은 자산계급의 그릇된 이론, 정도로 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무산계급의 생물학 ----  바로 리센코(1898~1976 소련 생물학자. 단계별 발육 이론으로 정통 유전학설을 비판)의 신성학파다. 이 학파의 학설을 학교 다닐 때 한번 들은 적이 있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지만 유전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잘못된 풍조는 종전 소련에서 전해졌고, 우리의 큰형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가르쳤지만, 믿을 수 없이 왜곡된 것도 가르쳤다.

그 시대에 몸담았던, 유전학파 사람들로선 기분 좋았을 리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불쾌해 했다.

나의 어떤 스승은 내가 어렸을 때, 현대 언어학에 흥미를 느껴, 자주 새로 나온 영문 서적을 보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알은척하면서 말했다.

"당신 그렇게 계속하면 자산계급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소. 우리 언어학은 한 소련인 언어학자가 논한 언어학 문제의 소책자를 신성한 기초로 삼는데  ---- 당신은 이 기초를 위반하고 있소."

나의 스승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했으며, 나중에 정신병원까지 갔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미친척하며 화를 피하는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가 정말로 놀라서 미쳐버린 것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그가 이일을 말하면서, 겁이 나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스승은 나중에 빈곤해져서 매우 어려우졌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다시 한참 지나서, 그는 안절부절 하지는 않게 게 되었지만, 그는 한창 좋은 때를 그대로 흘려보내고 만 것이다. 그에게 이런 일들이 당연히 기분 좋을 리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고, 현재로서는 꽤 오래전 일이다.

상대성이론, 유전학, 그밖에 사회학과 인류학, 이런 것들은 모두 더 이상 사악한 학문이 아니니, 우리는 과거처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아직도 확실치 않다. ----  설령 문외한들에게 박해받는 과학자라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진정 과학 영역 내에서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과학자라고 인정할 수 있다.

 

 

※ 아인 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독일 뷔르템베르크, 쿨름 시에서 탄생

           독일 뮌헨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

1900. 독학으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 입학. 졸업 후 반유태인 감정으로 취직을 못하고 가정교사 전전하다가 베른에 있         는 특허 사무소에 참사관으로 취직.

1905. 독일 물리학 연보에 특수 상대성이론 논문 발표.

1914. 베를린으로 이주.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서 연구, 강의.

1933. 유태인 박해가 심해지자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감.

1955. 미국 프린스턴에서 76세에 사망

         사망 시 독일어로 무언가 말했으나, 독일어를 모르는 가정부가 안아듣지 못하여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고 함.

※그는 루스벨트에게 원자탄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썼으나, 직접 원자탄 개발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후에 원자탄의 피해를 보고 원자탄 사용을 반대하는 과학자 집단에 참여하였다고 함.